'노 메달에서 무려 안세영 배출' 韓 배드민턴 대반전, 어떻게 가능했나
40년 만의 '노 메달' 참사에서 배드민턴 여왕을 배출하는 등 메달 7개를 수확했다. 한국 배드민턴이 아시안게임에서 5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국 배드민턴은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을 금메달 2개(여자 단식·여자 단체), 은메달 2개(남자 복식·여자 복식), 동메달 3개(여자 복식·혼합 복식·남자 단체)로 마무리했다. 남자 단식을 빼고 6개 종목에서 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거뒀다.
금메달 4개를 비롯해 메달 9개를 거머쥐었던 2002년 부산 대회 다음으로 좋은 성적이었다. 안세영(삼성생명)이 여자 단체전과 개인 단식까지 2관왕에 올랐고, 남녀 복식 최솔규(요넥스)-김원호(삼성생명)와 이소희(인천국제공항)-백하나(MG새마을금고)도 은메달을 보탰다.
복식 간판 서승재(삼성생명)도 강민혁(삼성생명)과 남자, 채유정(인천국제공항)과 혼합 복식에서 동메달 2개를 합작했다. '킴콩 조' 김소영(인천국제공항)-공희용(전북은행)도 동메달을 따냈고, 남자 단체전에서는 이윤규(김천시청)의 맹활약으로 깜짝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사실 한국 배드민턴은 부산 대회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6년 도하 대회에서 '노 골드'에 그쳤던 한국 배드민턴은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대회에서는 겨우 금메달 1개로 명맥을 이었다.
그러더니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는 노 골드도 아닌 '노 메달' 수모를 겪었다. 1978년 방콕 대회 이후 40년 만의 참사였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이후 단행한 섣부른 세대교체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2008년 베이징올림픽 혼합 복식 금메달리스트 이용대(요넥스) 등 베테랑들을 대표팀에서 배제하면서 어린 선수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줄 선배들의 공백이 생겼다.
결국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들의 국제 대회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냈다. 당시 안세영도 첫 출전에서 1회전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하지만 지난해 김학균 감독 체제로 대표팀을 재편한 이후 달라졌다. 안세영이 특유의 체력을 바탕으로 한 수비에 공격력과 경기 운영 능력까지 갖추면서 최강으로 거듭났고, 이소희-백하나도 결성 1년 만에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랐다. 서승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강민혁과 남자 복식, 채유정과 혼합 복식 금메달을 따내는 등 경쟁력을 키웠다. 그 결과가 항저우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김 감독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분석력이 빛을 발했다. 장재근 국가대표 선수촌장은 "김 감독이 엄청 독하다"면서 "선수들이 새벽에 400m 트랙을 20바퀴씩 돌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아시안게임 전 미디어 데이에서 신혼인 김소영이 "주말이면 숨을 쉴 구멍을 좀 달라. 리프레시하고 돌아오고 싶다"고 간청할 만큼 선수들은 선수촌에서 거의 매일 혹독한 훈련을 소화했다. 김 감독은 역시 신혼인 성지현 코치에 대해 "외박 얘기를 하길래 스케줄을 봤더니 11월까지 꽉 차 있더라"면서 "역대 몇 년 동안 제일 길게 입촌해 있는데 외박 못 내보줘서 고개 숙여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전폭적인 지원도 힘이 됐다. 김 감독은 손완호, 김기정 등 지난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들을 선수촌에 초빙하는 특별 훈련을 요청했는데 협회는 따로 예산을 편성해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도 선수들의 영양 관리를 위해 화끈하게 지갑을 열었다. 김 감독은 "혹시라도 중국 현지 식재료가 이상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국내에서 공수해달라고 김택규 회장님께 말씀을 드렸다"면서 "그랬더니 흔쾌히 얼마든지 준비하라고 하시더라"고 귀띔했다.
이에 대표팀은 고깃값만 400만 원 등 1000만 원 가까운 식재료를 항저우 현지로 공수했다. 장재근 선수촌장은 "김 감독과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매일 밤 선수촌에서 전기 불판에 고기를 구워서 선수들을 먹이더라"면서 "각종 양념까지 모두 갖춰서 소불고기며, 삼겹살까지 다양하게 요리했다"고 귀띔했다.
체육회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장 촌장은 "배드민턴 대표팀이 정말 열심히 훈련하니 지원해주지 않을 수 없더라"면서 "고기 등 꽁꽁 얼린 식재료 공수는 물론 항저우 선수촌에 보관을 위한 냉장고까지 넣어줬다"고 말했다.
김택규 회장을 비롯한 협회 임원들은 현지에서 매 경기 중국의 일방적인 응원에 지지 않는 성원으로 선수들의 힘을 북돋워 줬다. 김 회장은 박병운 충남배드민턴협회장, 심용현 전북회장, 협회 최병주 공모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 김향림 부회장, 김종웅 전무, 한우구 사무처장 등 임원들에게 "목이 쉬지 않은 사람은 귀국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을 정도다. 안세영은 "중국 관중 응원보다 내가 득점했을 때 한국 관중의 응원에 더 힘이 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이런 힘들이 모여 한국 배드민턴의 부활을 알린 성적이 나온 셈이다. 김 회장은 9일 통화에서 정말 목이 쉰 소리로 "하도 응원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서도 "안세영뿐만 아니라 거의 전 종목에서 메달이 나올 만큼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뒀다"고 기뻐했다. 이어 "내심 금메달 3개도 기대했지만 2개면 목표를 완벽하게 이뤘다"면서 "향후에도 전폭적으로 대표팀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도 "안세영과 여자 단체전은 말할 것도 없고 남자 단체전도 뜻밖의 메달을 따냈다"면서 "남자 선수들의 선전에 여자 선수들이 정말 즐거워 했다"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여자 복식이야 걔네들(세계 랭킹 1위 중국의 천칭천-자이판)과 이기고 지고 하는 것"이라면서 "단체전에서 이겼으니 개인전에서는 질 수도 있다"고 격려했다.
또 김 감독은 "8일 정말 오랜만에 집에 들어갔는데 이제 전국체전 배드민턴이 사전 경기로 열리는 전남 화순에 내려가 대표 선수들을 점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여기에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협회, 부활을 이끈 한국 배드민턴의 힘이다.
항저우=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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