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광장] 시장경제 속의 사회주의 의료

나현욱 세종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 2023. 10.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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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욱 세종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

변호사의 법률서비스와 의사의 의료서비스는 모두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전문 서비스다. 두 분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공통점은 면허와 자격을 통한 진입장벽이 있다는 점,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도 최소한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형사 사건의 '국선변호인' 제도와 의료비용에 대한 '의료급여' 제도가 있다는 점 등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어떻게 정하느냐인 듯하다. 변호사는 사건의 난이도, 중대성, 의뢰인의 사회경제적 지위 등을 고려하여 수임료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변호사의 경력이 많거나 승소율이 높으면 갓 수습과정을 마친 변호사에 비해 훨씬 높은 수임료를 받는다. 소송의 성공보수를 따로 정하기도 한다.

반면, 의사는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국민건강보험을 강제적으로 적용토록 하는 '당연지정제'를 택하고 있어 모든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료기관으로 강제 지정된다. 이는 의료의 공공성을 지켜주고 의료 소비자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 '급여' 항목에 대한 모든 가격을 정부에서 일률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여러 문제점을 낳는다.

모든 의료기관이 의료 수가로 정해진 비슷한 진료비를 받는다. 같은 상급종합병원(3차 병원)이라면 지역이 어디든 치료를 잘하건 못하건 큰 차이 없는 진료비를 받는다. '의료질평가지원금'이라는 명목의 가감제 수가가 있기는 하지만 상급종합병원 내에서 그 편차가 크지 않다. 동일 의료기관 내에서는 모든 의사가 같은 진료비를 받는다. 경력 30년 이상의 세계적인 명의라도 이제 막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의사와 진료비는 똑같다. 환자들은 같은 돈을 내니 당연히 더 경험 많고 치료 잘하며 시설이 좋은 병원의 훌륭한 의사에게 진료받기를 원한다. 그로 인한 대형병원 쏠림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질환의 경중에 관계없이 환자당 받을 수 있는 진료비는 정해져 있으니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환자 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환자 측면에서도 건강보험 대상자라면 서민이든 재벌이든 같은 진료비를 낸다. 사람들은 흔히 부자들은 비싼 진료비를 내고 특별한 진료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고가의 병실료 외에는 모든 진료비가 똑같다. 대신 의료사고가 생기면 일실손해를 계산하여 배상금을 줘야 하기 때문에 연예인과 같은 고소득자의 경우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금을 병원이 부담해야 한다. 진료비는 의료의 공공성에 따라 사회주의 시스템에 의해 정해지지만 대한민국 법체계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소득이 많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그만큼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임에도 그것을 보완해줄 수 있는 위험수당은 없다.

진료의 난이도가 높은 환자에게도 그렇지 않은 환자와 똑같은 진료비를 받는다. 남들이 잘 찾지 못하는 드물고 어려운 병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여 진단했다 하더라도 진료비는 같다. 난이도가 높은 고위험 환자를 수술하더라도 진단명이 동일하고 수술 시간이 비슷하다면 수술 수가는 같고, 수술 재료를 많이 사용하면 재료비는 더 많이 받을 수 있지만 재료비에 대해 병원이 마진을 남기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쉬운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든 어렵고 힘든 환자를 진료하든 병원에 돌아가는 서비스 비용은 같다.

의료는 공공성을 가지며 저소득층이 최소한의 치료도 받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만 현재의 우리나라 시스템은 충분한 지불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평준화된 진료만 받도록 강제하고 있다. 시장경제체제 속의 사회주의 의료라는 다소 모순적인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어야 환자 쏠림, 박리다매식 진료, 고위험 고난이도 환자 기피 등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도입된 1989년과 비교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5배 이상 증가한 상황에서 양질의 서비스에 대한 적절한 보상시스템이 건강보험제도 내에서도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나현욱 세종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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