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배후엔 이란이…? 바이든 ‘중동 빅딜’, 전쟁 위기 키웠나

이본영 2023. 10. 1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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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충돌]이스라엘-사우디 ‘관계 정상화’ 시도 좌초 위기
중국 견제 위한 삼각협력 빅딜 구상 비판 직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일 미사에 참석하려고 워싱턴 성삼위일체성당에 도착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면충돌로 미국의 중동 정책이 큰 패착에 직면하자 조 바이든 행정부의 ‘빅딜’ 집착이 상황을 꼬이게 만들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미국이 8일(현지시각)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 항공모함 전단을 이스라엘 근해로 보낸 가운데, 미국 유력 언론은 이란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움직였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이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사태 확산을 원치 않는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9일 한 행사 연설에서 “중동은 지난 20년간 어느 때보다도 조용하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정책이 큰 성과를 내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로부터 불과 8일 뒤 이스라엘에서 반세기 전 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 이후 최악의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이 금세 ‘허언’이 되는 동시에 미국의 중동 정책이 큰 위기에 놓였음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하마스의 이번 공격으로 미국이 ‘빅딜’이나 ‘메가딜’로 부르며 공을 들여온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 협상이 좌초될 위기에 놓이게 됐다. 미국은 사우디를 설득하기 위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1953년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뒤 처음 민주화되지 않은 국가와 안전보장조약 체결까지 추진했다. 미국이 이렇게까지 사우디에 공을 들인 것은 미·이스라엘·사우디의 ‘3각 협력’ 구도를 만들어 △이스라엘 안보 강화 △이란 견제 △중국의 중동 지역 영향력 차단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려고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구조를 만든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번 충돌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과 팔레스타인에 동조하는 ‘아랍’의 대립이 도드라지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약속한 뒤 8일 항모 전단을 이스라엘 근해로 파견하고 탄약 등 무기 제공에 나섰다. 이에 견줘 사우디 정부는 휴전 촉구 성명에서 이스라엘군을 “점령군”으로 표현했다. 또 자신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정당한 권리 박탈”의 결과를 경고해왔다고 밝혔다. 다른 아랍국들도 ‘아랍의 대의’를 상징하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등을 돌리기 어렵게 됐다. 상황이 미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상황이 악화되자 미국 내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추진한 야심 찬 ‘중동 평화’ 구상이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 행정부는 아브라함 협정(2020년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바레인의 관계 정상화 협정)으로 아랍국들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정상화하려 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시도를 이어받으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외교적 대업 성취에 골몰해, 정착촌 건설 등을 밀어붙인 이스라엘의 극우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않아 팔레스타인의 불만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이번 충돌로 미국 시민 1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것도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뼈아픈 대목이다.

앞으로 이번 사태의 향방을 결정할 핵심 변수는 미국 중동 정책의 핵심 ‘표적’인 이란의 움직임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은 8일 하마스 및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익명의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해 2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이번 공격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또 이란혁명수비대 장교들이 8월부터 하마스와 함께 공중·지상·해상을 통한 이스라엘 침투 계획을 짰다고 덧붙였다.

이란은 하마스에 대한 분명한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도 개입 의혹은 전면 부인했다. 주유엔 이란대표부는 8일 성명을 내어 “팔레스타인이 취한 단호한 조처는 70년간 이어진 불법적 시온주의 정권이 자행해온 억압적 강점과 극악무도한 범죄들에 맞선 전적으로 합법적인 방어”라면서도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대응에 관여되어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란 국영 텔레비전은 앞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 등과 한 통화에서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방어권”을 지지했다고 전했다. 미·이스라엘·사우디의 3각 협력이 실행되면 이들과 모두 적대적인 이란이 가장 취약해진다. 그 때문에 이란이 하마스를 움직여 이번 공격에 나섰을 것이라는 의혹 제기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도와 이란과 그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을 견제하기 위해 8일 항모 전단을 동지중해로 이동시켰다. 미국은 최근 이란의 위협에 대응한다며 중동 지역 기지들에 F-15, F-16, F-35 등 전투기를 증강 배치하고 있다. 이란의 공식 부인에도 이란혁명수비대가 이번 공격에 깊숙이 개입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이스라엘의 집요한 보복이 있을 수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규모 지상병력을 투입해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희생이 커질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이란 개입설’에 대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이란이 공격을 지휘했거나 공격 배후에 있다는 증거를 아직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란과 하마스는) 분명히 장기적 관계를 맺어왔다”고 말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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