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는 철수·샤넬은 매장 확장...샌프란시스코는 망하는 중인가, 아닌가
미국을 대표하는 대형마트인 타깃이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매장 한 곳의 운영을 21일 중단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타깃은 "우리 매장이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작업·쇼핑 환경이 모두에게 안전할 때만 성공할 수 있다"며 절도 증가 등 안전 우려를 매장 폐쇄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대형 약국 체인 CVS와 스타벅스도 이달 말 샌프란시스코 매장을 철수할 예정이다. CVS는 시내 매장 한 곳을, 스타벅스는 무려 7곳의 문을 닫는다.
유명 소매업체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매장을 빼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선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철수 소식이 별로 새삼스럽지 않아서다. 최근 3년간 노드스트롬, 홀푸즈, 오피스 디포 등 미국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명 소매업체들이 줄줄이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떠났다. '샌프란시스코 엑소더스'란 평가까지 나왔다.
'둠 루프'(Doom loop·파멸의 고리). 요즘 샌프란시스코의 상황을 설명할 때 자주 소환되는 말이다. 악순환을 뜻하는 둠 루프는 1950년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던 디트로이트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쓰인 경제 용어다. 1970년대 들어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부상하며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큰 타격을 받았고, 그 결과 디트로이트의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아야 했다. 일자리가 사라지며 도시 인구가 가파르게 감소했고, 인구 감소는 각종 매장 폐업과 세수 감소를 불렀다. 사람이 빠진 자리엔 무질서가 횡행했다. 시간이 갈수록 악순환이 증폭했다.
지금의 샌프란시스코가 과거 디트로이트만큼 나쁜 상황인가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과장된 위기란 주장도 적지 않다. 분명한 건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7월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갤럽 여론조사에서 샌프란시스코가 "거주하거나 방문하기에 안전하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52%였다. 같은 응답이 70%였던 2006년에 비해 18%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미국 16개 도시 가운데 시카고(-20%포인트) 다음으로 큰 감소폭이었다. 사람들의 인식에 샌프란시스코는 '망해 가고 있는 도시'란 얘기다.
높은 임대료가 양산한 '홈리스', 거리를 점령하다
우버, 에어비앤비, 엑스(옛 트위터) 등 유명 기술기업이 생겨난 도시, 그래서 몰락이란 말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샌프란시스코가 이런 처지가 된 이유를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찾는다. 샌프란시스코는 특히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수십 년간 누적돼 온 도시의 문제가 팬데믹을 만나 폭발한 것이다.
주택 부족과 그로 인한 높은 임대료는 샌프란시스코의 고질적 병폐였다. 2010년대 들어 샌프란시스코는 기술 붐에 힘입어 일자리가 급증했는데, 주택 건설에 대한 시의 까다롭고 느린 절차 탓에 주택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샌프란시스코에 추가된 일자리는 37만3,000개였던 반면 신축 허가를 받은 주택은 5만8,000개에 불과했다. 공급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 됐다. 이 도시에 새로 유입된 이들은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전국 최고 수준의 집값을 감당하며 살거나, 보다 저렴한 지역에 살면서 매일 긴 통근 시간을 감수하거나.
이 같은 상황은 팬데믹 기간 도시의 급격한 공동화를 초래했다. 샌프란시스코의 기술기업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원격근무로 전환했고, 사무실 문을 닫았다. 2020년 1분기 4%에 불과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사무실 공실률은 2년 만인 2022년 1분기 23.8%로 치솟았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샌프란시스코에 살기 위해 거액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그 결과 2020년에서 2022년 사이 샌프란시스코 인구는 7.5%가 감소했다. 미국의 인구 5만 명 이상 도시 중 가장 큰 규모의 감소폭이었다.
도시에 사람이 뜸해지자 홈리스(노숙인)들은 자유로워졌다. 텐더로인 등 악명 높은 일부 구역에 몰려 있던 이들은 도심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동시에 팬데믹 기간 일거리가 끊긴 저소득자들이 점점 더 거리로 나왔다. 이들이 거주하는 텐트, 거리 곳곳에 쌓인 배설물,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마약 거래, 절도 범죄가 도시를 채웠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인은 약 7,750명. 이 중 약 3,000명이 밤에 안전하게 쉴 곳이 없었다.
시 당국이 노숙인들을 퇴거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지난해 말 미국 연방법원이 노숙인 텐트를 강제로 철거하는 작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노숙인 보호소 등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거처를 확보하지 않은 채 쫓아내려는 시도는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인권단체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팬데믹이 끝나고 기업과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천천히 돌아오고 있지만 거리의 사람들은 그대로 남았다. 노숙인과 악취가 샌프란시스코의 '뉴 노멀'이 된 것이다.
투표로 뽑은 진보 검사도 아웃... 흔들리는 '진보 아성'
샌프란시스코의 뉴 노멀은 주민들의 신뢰도 약화시켰다. 지난해 지역 언론 샌프란시스코 스탠더드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7명은 "샌프란시스코가 2019년보다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조사에서도 시민의 65%가 "처음 이사왔을 때와 비교해 삶이 나빠졌다"고 했다.
시민들의 박해진 평가는 '진보의 아성'으로 여겨졌던 샌프란시스코의 정치 성향에도 미묘한 변화를 불렀다.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선출직 공무원인 체서 부딘 지방검사장을 주민소환 투표로 해임시켰다. 진보 성향의 부딘은 부자들의 전유물인 현금 보석 폐지, 감옥행을 대체할 재활 프로그램 확대 등 개혁적인 공약을 앞세워 2년 전 주민들의 선택을 받았으나,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물러났다. 치안 불안이 커진 데는 그의 지나친 온정주의가 한몫했다는 게 주민들의 판단이다.
공화당은 이를 이변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지난 5월 쓰레기가 대량 방치된 샌프란시스코의 거리를 배경으로 1분 길이의 캠페인 영상을 찍어 올렸다. "좌파 정책을 받아들인 도시들은 시민들의 삶의 질을 파괴했고 사람들이 더 푸른 목초지로 탈출하게끔 만들었다"며 "리더십이 중요한 이유"라고 그는 주장했다.
"샌프란시스코를 진짜 위험하게 하는 건 '과장된 소문"
이 같은 정치 공세는 최근 다시 역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민주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위험성이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약 소지, 절도 같은 경범죄가 증가 추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살인, 강도 등 강력 범죄 발생률은 전국 최하위 수준이고, 팬데믹 기간엔 더 감소했다. 수년간 소매점들이 도심에서 잇따라 매장 문을 닫았지만 새롭게 들어선 곳도 적지 않다. 럭셔리 브랜드 샤넬은 현재 운영 중인 매장을 확장 이전하기 위해 도심 한복판 3층짜리 건물을 6,300만 달러(약 850억 원)에 매입했고, 생로랑·반클리프 앤 아펠 등도 매장을 신설했다. 이케아 역시 한 달 전 샌프란시스코 도심 한가운데 3층짜리 단독 매장을 열었다.
시민들 사이에선 자극적인 것을 찾는 언론 보도가 샌프란시스코를 위험천만한 도시로 낙인찍었다는 비판도 무성하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지난 4월 스타트업 창업자 보브 리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흉기에 찔려 사망한 이후 언론들은 '노숙인들의 불법 행위가 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집중적으로 쏟아냈다"며 "그러나 이후 가해자가 동료 기업가로 밝혀졌다는 사실을 전한 매체는 많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나빠진 여론만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치안이 정말로 악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누구든 '망한 것으로 알려진 도시'로 이사하거나 투자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샌프란시스코의 회복을 더 더디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로드니 퐁 샌프란시스코 상공회의소 최고경영자는 "이곳 사람들은 언론과 소문을 통해서만 도시 소식을 접한 외부인들에게 매일같이 '괜찮느냐'는 질문을 듣는 데 지쳐가고 있다"며 "좀비 도시가 됐다는 과장된 소문이 진짜 도시를 해치고 있는 주범"이라고 한국일보에 말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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