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벼락출세-추락한 '닉슨의 히트맨'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리처드 닉슨의 러닝메이트로 1969년 미국 제39대 부통령이 된 스피로 애그뉴(Spiro Agnew, 1918~1996)가 73년 10월 10일 뇌물 수수와 탈세 등 혐의로 사임했다.
57년 공화당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지 12년 만이었고, 61년 첫 공직인 볼티모어 카운티 행정관 선출 시점부터 치면 단 8년 만이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처드 닉슨의 러닝메이트로 1969년 미국 제39대 부통령이 된 스피로 애그뉴(Spiro Agnew, 1918~1996)가 73년 10월 10일 뇌물 수수와 탈세 등 혐의로 사임했다. 57년 공화당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지 12년 만이었고, 61년 첫 공직인 볼티모어 카운티 행정관 선출 시점부터 치면 단 8년 만이었다. 그가 낙마한 지 불과 10개월 뒤인 74년 8월 9일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닉슨까지 사임했으니, 만일 애그뉴의 비리가 용케 은폐됐거나 조금만 늦게 드러났다면 그는 대통령까지 되었을 수 있었다. 닉슨-애그뉴 행정부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정·부통령 모두 수치스럽게 임기를 채우지 못한 유일한 정부였다.
그는 그리스계 이민자 아들로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유럽전선에서 3년간 복무하며 동성무공훈장을 탔다. 볼티모어대 로스쿨 출신 변호사로서 공화당원이 된 그는 의원 비서 등을 거쳐 카운티 행정관이 됐고, 66년 주지사가 됐다. 주지사 시절 그는 저소득층 복지와 인종차별 철폐 등 진보적 정책으로 상당한 지지를 얻었고, 인권 시위 현장 폭동과 무질서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함으로써 합리적인 보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닉슨은 법질서를 중시하는 완고한 반공주의자인 그를 러닝메이트로 발탁, 68년과 72년 선거에서 잇달아 승리했다. 반전 시위와 시민 인권운동으로 혼란스럽던 시대, 그는 닉슨의 궂은일들 특히 시위 비판과 시위대에 동조하는 민주당 좌파 정치인들에 대한 비난 등을 도맡아 했고, 시위대 폭력에 동조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겐 "국가적 마조히즘을 조장하는(...) 자칭 지식인이라는 뻔뻔스러운 속물군단"이라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는 ‘닉슨의 히트맨’이라고 불렸다.
벌금 1만 달러와 집행유예 3년 형과 함께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 그는, AP뉴스에 따르면 부고 기사조차 거의 보도되지 않았을 만큼 잊힌 존재가 됐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000명 모인 축제서 조준사격…하마스의 민간인 사냥
- 임영웅 "무명 시절, 한 달에 30만 원 벌면 다행...군고구마 팔았다" ('미우새')
- 군대서 헌혈하다 HIV 감염 확인했는데 3년 지나서야 통보한 질병청
- 이번 한글날도 되찾지 못한 '훈민정음 상주본'... 소장자 "내 명예회복 먼저" [한글날 577돌]
- "이준호? 아이고, 다시"... JTBC는 왜 그날 각성했을까
- 딸 안세영 투혼 앞 "기권해도 돼" 어머니는 더 말할 수 없었다
- "하마스 작전 배후는 이란… 8월부터 이스라엘 공격 계획"
- ‘중동 데탕트’에 존재감 잃을라…하마스, 이스라엘 기습공격 감행한 까닭은
- 처음 본 청년과 노인이 손잡고 "꺄악!"… 임영웅 '피케팅' 그날
- 이렇게만 관리된다면… 100만 인파 무탈히 견딘 불꽃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