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예금 증가세 꺾이고, 대기성 자금 급증
직장인 오모(42)씨의 수시 입출식 계좌엔 지난달부터 4000만원 넘는 돈이 쌓여 있다. 오씨는 지난해 9월 가입했던 지역 농협의 연 4%대 고금리 특판 정기예금의 1년 만기가 끝나면서 찾은 돈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오씨는 “금리가 더 오를 것 같아 은행 예금에 다시 돈을 넣지 않았다”며 “안정적으로 은행 예금 이상 수익을 올릴 곳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고(高)금리 시대 ‘재테크 필승 카드’였던 정기예금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 반면 이자가 적은 대신 수시로 돈을 넣고 뺄 수 있는 수시 입출금 통장 잔액은 급증세다. 최근 시장금리가 들썩이자 오랜 기간 돈을 묶어둬야 하는 정기예금을 선택하는 대신 최적의 투자처를 찾아 관망하는 투자자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기예금 줄고, 수시 입출금식 증가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정기예금 잔액은 842조2907억원으로 전달(844조9671억원)보다 2조6764억원 줄었다. 월별 정기예금 잔액이 줄어든 것은 지난 4월(-4149억원) 이후 5개월 만이다. 지난 5~8월에는 4개월 연속으로 월 평균 10조원가량 정기예금 잔액이 늘었다. 인플레이션 둔화 등으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기준금리가 정점에 가까워졌다는 판단 아래 투자자들이 뭉칫돈을 정기예금 통장에 넣으려 한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연 4%대 이자를 주는 정기예금 비율(신규 취급액 기준)은 지난 4월 0.7%에서 7월 12.2%로 늘었고, 같은 기간 연 3%대 이자 상품 비율은 92.4%에서 80.1%로 줄었다. 전체 정기예금의 12% 정도가 연 3%대 예금에서 연 4%대 예금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전 세계 금리 향방의 키를 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최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등을 통해 연 5%대 고금리를 상당 기간 유지할 것임을 내비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고금리 장기화 우려에 시장금리가 지난달 이후 연일 급등하자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넘게 현재 금리로 돈이 묶이는 정기예금의 매력이 떨어진 것이다. 이에 반해 수시로 돈을 빼고 넣을 수 있는 수시 입출금 잔액은 지난달에만 9조1747억원(580조2329억→589조4076억원) 늘었다. 시중은행 수시 입출식 통장은 이자가 연 1% 안팎에 불과하다. 하지만 좋은 투자 기회가 보이면 바로 돈을 빼서 쓰려는 ‘관망 수요’가 수시 입출식 예금의 증가를 이끈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에는 정기예금 만기가 끝나면 1년 단위로 재예치하지 않고, 1개월 정도만 맡길 수 있는 금융상품을 문의하거나 목돈을 일반 계좌에 내버려두는 고객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대기성 자금, 주식·부동산으로 흘러들 조짐
정기예금에서 돈을 뺀다 해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고금리와 글로벌 경기 둔화 등 우려로 주식시장의 수익률도 부진하고, 금리 상승에 따라 채권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채권 투자 심리도 불안해졌다. 하지만 이달 들어 투자 패턴이 조금씩 변화할 기미도 보인다. 주가가 어느 정도 바닥을 쳤다고 보고, 주식 투자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최근 2개월 연속(8~9월) 줄어든 국내 증시 투자자 예탁금은 이달 들어 지난 4일까지 2조2500억원가량 증가했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 개미들의 주식 잔액도 지난 8~9월 연속으로 감소했다가 이달 들어서는 3억2300만달러(약 4400억원)가량 늘었다. 금융업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보다 이자를 최대 연 1%포인트가량 더 주는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2금융권 정기예금 상품을 알아보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일각에선 대기성 자금이 최근 회복 기미를 보이는 부동산 시장에 흘러들 조짐이 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 들어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크게 완화되면서 집을 여러채 보유한 다주택자들도 추가 매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본인보다는 자녀 명의 주택을 추가로 사고 싶어 하는 수요가 늘어나는 모습”이라며 “부동산 시장 회복 기대감에 고금리 정기예금 등에 묶였던 자금이 대거 유입될 수 있어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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