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해병대 훈련해야 성적 좋아진다는 체육회장

이영빈 기자 2023. 10.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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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이 끝날 무렵이었다. 지난 8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산 자리에서 별안간 “이제 정말 파리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 1월엔 국가대표 전원이 해병대 훈련을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웃으면서 한 말이라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판별이 어려웠다.

한국은 지난 국제 종합 스포츠대회들에서 연이어 부진했다. 8일 막을 내린 아시안게임에서 중국(금 201개)과 일본(금 52)에 이어 종합 3위(금 42)에 자리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금 49·3위)보다 금메달이 적다. 자카르타·팔렘방 대회는 한국이 1982년 뉴델리 이후 36년 만에 금메달 50개 미만을 기록한 첫 대회였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앞선 2021년 도쿄 올림픽 순위는 16위(금 6)였다. 2016년 리우 올림픽 8위(금 9)에서 수직 낙하했다.

순위보다 흘린 땀방울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대한체육회는 흘린 땀만큼 많은 메달을 수확할 고민을 해야 하는 단체다. 스포츠 과학 기술 향상, 생활 스포츠 인구 증가 등 다양한 방법론이 나온다. 그런데 대한체육회의 수장은 난데없이 해병대 훈련을 이야기한다.

<YONHAP PHOTO-2319> 취재진 질문 듣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항저우=연합뉴스) 유지호 기자 = 8일 중국 항저우의 그랜드 뉴 센추리 호텔에 마련된 대한체육회 스포츠외교라운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국 선수단 해단식에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2023.10.8 jeeho@yna.co.kr/2023-10-08 14:17:58/ <저작권자 ⓒ 1980-202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회장뿐이 아니다. 장재근 항저우 아시안게임 선수촌장은 대회 한 달 전부터 새벽 0시부터 5시까지 선수촌 내 와이파이 작동을 중지시켰다. 잘 시간에 핸드폰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밤잠을 충분히 자는 게 물론 더 좋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훈련한 뒤 새벽에 잠시 핸드폰을 봐야 더 잘하는 선수도 있을 것이다. 선수 체질대로 맞춤형 방법을 찾는 게 스포츠 과학이다. 과학 대신 진천선수촌은 전체주의를 택했다. 한술 더 떠 대회 한 달을 앞두고 새벽 훈련과 산악 구보를 부활시켰다. 선수촌장은 “태릉 시절에 가졌던 뜨거운 마음과 집념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쪽 분야는 북한을 따라갈 국가가 없다. 무엇이든 ‘정신력이면 못 할 게 없다’고 하는 나라다. 뜨거운 마음만으로 성적이 나온다면 북한이 모든 종목에서 우승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대회 내내 심판을 밀치고, 스태프에게 주먹질을 하는 등 행패만을 부렸다. 기량 향상 없이 정신력만을 강조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항저우(중국)=뉴스1) 신웅수 기자 =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국가대표 장재근 총감독이 8일 중국 항저우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10.8/뉴스1

일본은 아시안게임에서만큼은 한국보다 한 수 아래였다. 일본은 1994년 히로시마 대회를 제외하고 1986년부터 2014년 인천 대회까지 한국에 밀려 항상 3위에 머물렀다. 2008 베이징,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일본은 한국보다 순위가 낮았다. 일본은 정신력 강조 대신 2011년부터 5년 단위의 스포츠 기본계획을 만들었다. 2015년엔 스포츠·청소년국에서 격상된 스포츠청이 진두지휘하며 선수 육성 체계를 확립했다. 멀리 바라본 성과는 2018년부터 나왔다. 자카르타·팔렘방에서 한국을 앞질렀고, 도쿄올림픽에선 금 27개로 종합 3위에 올랐다.

그동안 한국은 선수촌 새벽 와이파이를 차단하고 산악 구보를 부활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해병대 훈련을 한다고 한다. 추운 겨울에 140㎏짜리 보트를 들고 뛰어야 할 선수들이 어떤 생각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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