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00] 성채에 홀로 저항하는 작은 책
전시장에 붉은 벽돌을 질서정연하게 쌓아 올려 견고한 벽을 세웠다. 벽 없이 집을 지을 수는 없지만, ‘벽’을 비유적으로 쓸 때는 관계가 완전히 단절됐거나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을 만났다는 의미다. 위압적으로 관람객을 가로막은 이 벽은 글자 그대로 장벽을 마주한 듯 숨 막히게 답답하다. 그러나 이토록 거대한 벽체에 균열을 낸 존재가 있다. 윗면을 다시 보니 한가운데가 불룩 솟았다. 바닥에 깔린 한 권의 책이 벽체를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가 미완으로 남긴 유작, ‘성(城)’이다.
멕시코 출신의 호르헤 멘데스 블레이크(Jorge Méndez Blake·1974~)는 건축가로 교육받고 문학지의 편집자로 일하다 미술가가 됐다. 건축과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이 완벽하게 결합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미술관이었다. 그는 글을 쓰는 건 일종의 건축이고, 글을 읽는 건 새로운 창작이라고 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책이라는 작고 연약한 사물에 담긴 글의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카프카의 ‘성’에서 주인공인 토지 측량사 ‘K’는 성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의 분투는 마치 제아무리 걸으려 해도 납덩이처럼 무거운 발을 움직일 수 없는, 혹은 아무리 한참을 걸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악몽처럼 끔찍하다. 평론가들은 ‘성’이 억압적인 아버지, 비합리적 지배 체제, 혹은 권위적 종교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거대한 벽에 짓눌린 작은 책은 마치 성채에 홀로 저항하는 ‘K’를 보는 것 같다. 블레이크는 아무런 접착제 없이 벽돌을 쌓았다. 누구라도 섣불리 책을 빼내고자 하면 벽은 걷잡을 수 없이 허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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