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가 빚은 파국적 재앙

송승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안보전략센터장·대전대 교수 2023. 10.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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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국민들과 군·정보기관은 일개 준군사집단에 불과한 하마스가 육상(픽업트럭), 해상(수상정), 공중(패러글라이드)에서 입체적 다영역 작전을 선보이며 자국 영토로 쏟아져 들어오는 초현실적 상황에 ‘영화의 한 장면’ 같다며 망연자실했다.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를 가리켜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날”로 표현했다. 이란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하마스의 노림수는 이제 막 무르익기 시작한 사우디·이스라엘 평화 협상을 좌절시키는 것이다. 중국 중재로 이란과 데탕트에 들어선 사우디가 미국 중재로 이스라엘과도 국교 정상화에 성공한다면, 다른 아랍권 국가들도 이스라엘과 수교할 명분·정당성이 확보될 것이다. 그러면 중동판 NATO 같은 ‘반이란 연합전선’이 형성될 수 있다. 이란으로서는 악몽 같은 시나리오다. 그래서 이란과 공동 운명체인 하마스가 총대를 멘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최대의 관전 포인트는 ‘정보 실패’다. 세계 최고 정보기관으로 알려진 모사드(해외)와 신베트(국내), 그리고 중동 최강의 이스라엘군(IDF)은 하마스가 전면전을 도발할 것으로는 낌새도 채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정보 실패에 앞서 이스라엘은 네 가지 면에서 전략적 판단 착오를 범했다. 첫째, 주공 방향 오판이다. IDF는 북쪽의 헤즈볼라 공격에 대비하느라, 가자지구 주변을 거의 무방비 상태로 남겼다. 둘째, 2007년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전면전을 치르고도 이들이 ‘협조된 공격’을 벌일 수 있는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셋째, 2012년부터 가자지구에 10억달러의 원조를 제공해온 카타르의 재정 지원, 그리고 이스라엘 취업 허가를 간청하는 주민들의 염원 등으로, 이스라엘은 하마스도 ‘국경의 평온’을 바라는 유화적 입장에 있는 것으로 오판했다. 넷째, 무인 역량의 과대평가다. 이스라엘은 아이언 돔, 국경지대에서의 조밀한 카메라·센서·드론 감시, 페가수스 소프트웨어 같은 최첨단 무인 역량을 과신했다. 적의 능력 과소평가와 나의 능력 과대평가는 파국적 재앙을 초래하는 최고의 레시피다.

역사상 최악의 정보 실패 사례로는 단연 진주만 기습과 9·11 테러가 꼽힌다. 전자는 필요 정보의 부족, 후자는 정보 분석의 오류를 상징한다. 하마스 기습은 9·11 테러와 유사하다. 9·11 사후 분석에서 ‘점선 연결(connect-the-dot)’ 실패가 도마에 올랐다. 정보 부족이 아니라 정보 해석이 틀렸다. 일례로 빈라덴과 연계된 중동인이 상업용 제트기 조종을 배우려는 정보가 입수되었지만, 빈라덴이 아프간에서 수송기 운용을 원한다는 그릇된 결론을 내렸다. 이번에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국경 일대에서 하마스의 공격 예행연습 징후를 포착하고도, 단지 IDF 수뇌부의 셈법을 복잡하게 만들려는 수작으로 폄하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이스라엘은 9·11 사례처럼 동일한 ‘점선 연결’ 실패의 오류를 반복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정보 실패가 뼈아픈 상처를 남겼다. 대표적인 것이 임진왜란 직전의 정보 실패다. 동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쥐새끼·원숭이’로 깎아내리며 두려울 게 없는 인물로 평가한 반면, 서인은 그의 안광·담략을 거론하며 반드시 병화(兵火)가 닥칠 것으로 보았다. 국론 양분으로 전쟁에 대비하지 못했다. 6·25전쟁 직전에도 38선 일대에 병력 증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지만, 미 CIA는 독자적 의사결정권이 없는 김일성의 남침 가능성을 무시했다. 6·25전쟁 중에 맥아더 사령관은 웨이크섬에서 트루먼 대통령에게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보고했지만, 그 시점에 벌써 수십만명의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 장진호 주변에 매복하고 있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잭 레비에 의하면 인지적 편견, 정보의 복잡성, 제한된 자원, 정치적 압력 등으로 인해 “정보 실패는 불가피”하다. 그보다는 정보 실패의 가능성·부작용·후유증 최소화가 더 중요하다. 이를 달성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다. 일례로 ‘레드팀’은 생각불가한(unthinkable) 도발적 개념들의 제시로 ‘잘못된 전제의 오류’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확실하게 응징”할 것을 주문했다. 새로 취임한 신원식 국방장관도 “적이 도발하면 즉각·강력히·끝까지 보복”할 것임을 공언했다. 북한은 제2의 하마스처럼, 우리 군이 상상도 하지 못한 방법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에 전략적 기습으로 일격을 가하여 군통수권자·국방장관의 응징·보복 의지를 일거에 꺾어 놓을 궁리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나?”라며 우리 모두가 충격·공포에 빠지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 사례를 교훈 삼아, 북한 도발을 막는 억제력·대비 태세가 한 차원 격상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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