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비 엇갈린 두 경찰물… 속도 살린 몰입감 vs 소재 못 살린 올드함
터져나오는 욕설 뒤 대여섯 발의 총성. 총을 쏜 이는 ‘강남연합’ 조직원으로 위장한 경찰 박준모다. 그는 조직 보스 정기철이 습격을 받아 목숨이 위험한 순간 사람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이 순간만큼은 두 사람은 한편. 기철은 준모를 정말 믿게 된다. (’최악의 악’ 중)
‘무빙’ 다음 타자로 디즈니+가 최근 연달아 내놓은 두 경찰물 ‘최악의 악’과 ‘한강’이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다. ‘오랜만에 진득한 액션 누아르’라는 평가가 나오는 ‘최악의 악’은 한·중·일 마약 거래 조직을 잡기 위해 경찰이 조직에 잠입해 수뇌부로 파고드는 언더커버(위장 첩보) 설정. 영화 ‘신세계’ 등 종전에 많이 나온 언더커버물과 유사하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막상 열어보니 ‘진부한 소재’를 뛰어넘는 배우들의 연기, 흥미진진한 심리전과 몰입감으로 호평받고 있다. 영화 사이트 IMDb 평점도 8.5로 높은 편이다.
반면 ‘한강’은 ‘신선한 소재’를 가지고도 각종 클리셰를 되풀이해 ‘올드하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국내 경찰물 중 처음으로 한강경찰대를 소재로 삼아 정재계가 연루된 범죄를 해결한다는 줄거리. 내로라하는 감초 배우들이 나오지만 발목을 잡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시청자 예상을 앞서는 ‘최악의 악’
‘최악의 악’이 시청자의 예상을 앞서는 수준의 속도감으로 치고 나간다면, ‘한강’의 전개 속도는 시청자가 한참 앞에서 기다려줘야 할 정도다. 12부작인 최악의 악은 현재 5부까지 공개됐고, 한강은 6부작 전체가 공개됐다. 중반부인 최악의 악 1~5편과 한강 1~3편을 비교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차이가 속도감이다. 최악의 악은 단 한 회 만에 정기철이 강남을 접수해 조직 우두머리가 되고, 경찰 박준모가 정기철에게 접근해 마주 앉기까지 내용이 담겼다. 세세한 과정들은 과감히 생략하고 시청자들을 숨 돌릴 새 없이 확확 끌고 간다.
반면 한강은 3편까지도 구체적인 범죄 윤곽을 알 수가 없다. 본격적 액션도 4편에 이르러야 등장한다. 코미디를 표방하기에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보려 하지만, 그렇다고 신나게 웃기지도 않다. “계란물 붓고 12초 후에 먹으면 돼” 같은 라면 끓이는 비법 전수, 주인공의 상반신 근육 자랑 등 온갖 곁가지를 그려내며 느릿한 전개를 보여준다. 시청자는 언제쯤 수사가 시작되나 기다리게 된다.
◇고민 없이 만든 악은 흠이다
영화 ‘신세계’ ‘헌트’ 제작진이 참여한 ‘최악의 악’은, 12부작 드라마지만 연출이나 연기의 무게감이 영화에 가깝다. 위장 수사라는 심리전 속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눈빛’ 연기에 호평이 많이 나온다. 조직 보스 역 배우 위하준이 만들어내는 절제된 카리스마, 경찰 역 배우 지창욱이 흔들리는 눈에 담아내는 폭발적 감정 연기가 볼거리다.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축적되는 감정에, 경찰의 아내가 보스의 첫사랑이었다는 스토리가 얹히면서 팽팽한 심리전을 보는 재미가 배가 됐다. 빌런마저 매력 있게 그려지고, 정작 속고 있는 것은 빌런이기에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선과 악’이 아닌, 제목처럼 ‘많은 악 중 누가 최악인가’라는 생각에 닿는다.
반면 한강의 악역은 조금 이상하다. 분노 조절을 못 하고 소리를 꽥꽥 지르고 물건을 던진다. 금두꺼비 뇌물을 건네고 무당에게 의존하는 등 한국 드라마의 진부한 요소들을 한데 모아놨다. 빌런이 이상하니 싸움 구경 할 맛도 안 난다.
◇감초 배우보다 나은 신선한 얼굴
‘최악의 악’은 경찰의 아내 ‘의정’을 비롯해, 조직의 칼잡이 ‘종렬’, 최측근 ‘정배’ 등 배역에 개성 있는 배우들이 출연해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반면 한강은 인지도 높은 ‘감초’ 배우들이 총출동했지만 시너지가 없다. 한강경찰대장 역 배우 성동일이 등장할 땐 국립공원 분소장으로 나왔던 드라마 ‘지리산’이 생각나고, 배우 최무성이 나올 땐 그가 출연했던 수사물 ‘비밀의 숲’이 떠오른다. 배우 김희원은 자꾸 음식을 만들어 예능 ‘바퀴 달린 집’이 겹쳐 보인다. 다만 ‘최악의 악’은 관람 등급 ‘청불’로 욕설과 폭력적인 장면의 수위가 세다. 전체 분량의 절반 이상이 남아 있기에, 중반부까지의 긴장감이 쭉 이어질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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