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엔 하지 중장 사무실… 1963년 ‘반도호텔’ 취업 임명장
임명장은 60년 세월에 빛이 바랬지만 타자기로 찍은 글씨는 아직 선명하다. 1963년 7월 23일 자로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던 경기 오산시 독자 이제원(88)씨를 ‘노무직 4급 요리 견습’에서 3급에 명(命)하고 일당을 80원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교통부 반도호텔 지배인의 직인이 찍혔다. 그때 반도호텔은 정부 소유였다.
이씨는 “화폐개혁(1962년) 직후여서 호텔에 취직하기가 어려웠던 때”라고 했다. 반도호텔이 철거될 때까지 근무하다가 다른 호텔로 전출했다고 했으니 이씨는 호텔 경력의 초반부에 반도호텔의 마지막 날들을 지켜본 셈이다. 반도호텔은 1938년 일본인이 서울 소공동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8층 규모로 지었다. 1974년 롯데그룹이 인수할 때까지 한국 현대사 주요 장면의 무대가 됐다.
해방 이후 미군정 사령관을 지낸 미24군단장 하지 중장의 사무실이 반도호텔에 있었다. 정부 수립기에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이 호텔에 드나들며 하지 중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9년 한국 정부는 호텔을 주한 대사관 건물로 미국에 증여했고 6·25전쟁이 끝난 뒤 다시 인수했다. 자유당 정권의 2인자로 통했던 이기붕과 4·19 이후 집권한 민주당의 장면 총리도 이곳을 집무실로 사용했다.
변변한 갤러리나 공연장이 부족했던 시절 반도호텔은 문화 공간 역할도 했다. 1956년 호텔 안에 문을 연 반도화랑은 한국 최초의 상업 화랑이다. 박수근과 이중섭이 자주 드나들던 미술계 사랑방이기도 했다. 그해 디자이너 노라노는 반도호텔에서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다. 그는 훗날 “남대문시장에서 물들인 미군복이 최고의 생활복으로 팔리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이제원씨는 “1963년 삼양식품이 처음 라면을 선보이면서 반도호텔 다이너스티 룸에서 시식회를 열었던 일이 기억난다”고 했다. 다이너스티 룸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지’의 작가 펄 벅이 1960년 한국을 찾았을 때 환영 칵테일 파티가 열렸던 곳이다. 지금 값싼 한 끼의 대명사가 된 라면이 고급 호텔 연회장에서 시식회를 열 정도의 신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제원씨는 “워낙 신기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라면은 지금까지도 삼양라면을 먹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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