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문닫은 유치원 전국 550곳… 신설은 16곳뿐
서울 광진구 중곡동 ‘아이조아 유치원’은 지난 4월 폐업했다. 민태혁(65) 원장이 20년 전부터 운영한 곳이다. 한때 반을 나눠 가르쳐야 할 만큼 원생들이 많았다. 그런데 2015년 이후 아이들이 급격히 줄더니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최근 2년간 적자에 시달렸다. 막판엔 아이들 20~30%가 베트남, 몽골 아이였다. 같은 건물 1층서 아내가 운영하던 어린이집도 올 2월 문을 닫았다. 민 원장은 “(유치원) 원장들은 다들 언제 그만둘까만 걱정한다”면서 “40년 전 애들이 좋아서 시작한 후 평생 유치원을 해온 건데, 이제 다들 애도 안 낳고 애를 좋아하지도 않는 사회가 된 것 같다”고 9일 말했다.
‘저출생 쓰나미’가 닥치면서 산후조리원, 유치원, 초등학교 순으로 문을 닫고 있다. 최근 산후조리원은 산모 10명 중 8명(2021년 보건복지부 조사)이 이용해 출산 필수 시설로 꼽힌다. 전국 산후조리원은 2016년 612곳이었지만 올해 469곳으로 7년 만에 23%가 사라졌다. 업계 관계자는 “엄청 비싼 조리원도 있지만, 경영 악화로 폐원하는 곳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인터넷 맘카페에는 “출산 예정일이 코앞인데 예약한 산후조리원이 갑자기 문을 닫는다는 연락이 왔다”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산후조리원이 아예 없어진 지자체도 많아 인근 도시로 ‘원정 조리’ 가는 산모들도 있다. 지자체들이 나서 ‘공공 산후 조리원’을 만들고 있지만 서울 송파구 1곳, 경기 2곳 등 전국에 18곳뿐이다. 매달 지자체가 조리원 입소를 신청받는 날 아침이면 현장서 줄을 서거나 인터넷에선 ‘오픈런’(매장이 열리는 순간 입장)까지 벌어진다.
저출생 직격탄으로 유치원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사립 유치원은 전국적으로 2016년 4291개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줄어 작년엔 3446곳에 그쳤다. 최근 3년간 550개가 문을 닫았고 신설은 16곳뿐이다. 시골뿐 아니라 서울 같은 도심도 저출생으로 폐원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성동광진교육지원청 이헌구 과장은 “서울도 아이가 많이 줄어서 성동·광진 지역에서만 올 상반기에 유치원 4곳이 폐원했다”면서 “교육지원청이 유치원 폐원 절차를 도와주는 컨설팅 사업을 하는데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에 딸린 공립 병설 유치원은 ‘폐원’은 잘 하지 않고 아이들이 적거나 없으면 ‘휴원’을 한다. 경기도는 휴원한 병설 유치원이 2021년 43개에서 2022년 58개, 2023년엔 89개로 2년 만에 두 배로 폭증했다. 부산도 작년엔 1곳뿐이었는데, 올해는 4곳이나 휴원했다.
‘학생 없는 초등학교’도 갈수록 늘고 있다. 전국 초등학교 6163개 중 올해 신입생을 단 한 명도 못 받은 초등학교가 전국 145곳으로, 전년 114곳보다 31곳 늘었다. 신입생이 10명이 안 되는 학교도 1587개(26%)에 달한다. 학생 없는 초등학교 문제는 지금까지는 비수도권에 집중됐지만, 앞으론 도심 지역으로 확산할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 들어 서울, 부산, 대구 등 구도심에서도 문 닫는 학교들이 등장하고 있다.
저출생 충격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내년엔 출생아 수가 처음 20만명대로 떨어진 2020년생들이 유치원에 입학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만 3~5세 인구는 2020년 127만8000명에서 내년 90만2000명으로 4년 만에 30%(37만6000명) 급감한다.
전문가들은 산후조리원, 유치원, 초등학교의 문을 닫게 한 저출생 충격이 앞으로 대학, 연금 등 각종 사회 시스템까지 빠르게 확산할 것으로 우려한다. 문을 닫으려는 대학들도 줄을 잇고 있다. 연금·건강 보험료를 내야 할 인구도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린이집, 유치원 폐원 등 ‘인프라 붕괴’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지역·국가 소멸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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