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독립영화를 왜 지원해야 하냐고요?

경기일보 2023. 10.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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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석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

우람하고 선명한 근육을 자랑하는 보디빌더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들이 닭가슴살이나 단백질 보충제를 먹는 모습을 떠올린다. 단백질은 근육을 생성하는 기본이니 틀린 상상이 아니다. 하지만 보디빌더들이 단백질만큼이나 비타민을 비롯한 각종 영양소를 섭취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는 것은 자주 간과한다. 근육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혈관을 비롯한 다양한 신체 기관의 기능이 고루 활성화돼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이다. 뜬금없이 영양소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최근 영화계에서 이 정도의 상식이 흔들리는 듯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하겠다는 영화들까지 왜 정부가 돈을 줘야 하나. 좁은 문을 만들어 철저히 선별해야 한다.” 며칠 전 임명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후보자 시절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가뜩이나 최근 독립영화 등의 예산 지원이 대폭 삭감된 상황에서 영화인들로서는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요는 ①왜 정부의 돈을 써서 독립영화를 지원하는가, ②(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영화들 위주로 밀어주겠다는 것이다. 부디 청문회 과정에서 그가 조금이라도 생각을 바꿀 것을 바라지만 노파심에 말을 보태자면 영화를 비롯한 문화가 성장하는 메커니즘 또한 우리의 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봉준호를 비롯한 거장의 영화 혹은 한류 드라마의 세계적인 성공 뒤에는 독립영화, 혹은 다양성 영화라 부르는 작품들이 자리 잡고 있다. 눈으로 보이는 우람한 근육 뒤에는 그러한 근성장을 가능토록 영양소를 실어 나르는 혈관과 내장 기관, 미세한 협응근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독립영화를 공적 자금으로 지원해야 하는 까닭은 아이러니하게도 위에서 인용한 발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로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독립영화인들은 비유하자면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이 아니라 꺼끌꺼끌하고 밋밋한(때로는 쓴) 건강식을 만드는 사람들과 같다. 상업으로 성공하기는 힘들지만 공중보건을 생각한다면 국민들에게 꼭 권장해야 하는 음식들 말이다. 사람들이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만 먹는다면 사회적인 의료비 부담이 치솟을 테니 억지로라도 건강식을 먹도록 해야 하고, 그러려면 만성 적자에도 불구하고 건강식을 만들려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을 비롯한 많은 문화생산물의 역할은 꺼끌한 자연식처럼 사회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근육 운동의 고통이 근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꺼끌꺼끌한 건강식이 백세시대를 여는 것처럼, 예술은 지금 이대로 괜찮냐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다른 세계와 새로운 방식이 가능함을 환기한다.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독립영화 역시 지금껏 그 역할에 충실해 왔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영화계도 예외는 아니라고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 ‘K-무비’의 화려한 영화(榮華)는 독립영화를 가능케 하고, 독립영화가 가능케 한 사회의 건강함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말이다.

덧말. 쓰다 보니 체육과 건강에 관한 비유의 향연이 됐다. 문화와 체육과 관광을 한 부서에서 두루 살필 수 있는 저력을 갖춘 한국이니 이 정도 비유는 너끈하게 이해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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