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대리전’으로 번지는 중동전쟁
美, 항모전단 파견-전투기 증파
이, 가자지구에 지상군 투입할듯
이란, 하마스 배후 정황 드러나
로켓포 피격 현장서 대피하는 이스라엘인 가족 9일(현지 시간) 오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론 주택가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안고 대피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과 하마스 배후 세력 이란의 대리전 양상도 짙어지고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 지원을 위한 핵추진 항공모함 전단과 전투기를 급파했다. 이란이 하마스의 이번 공격을 승인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이란은 이를 부인했다. 아슈켈론=AP 뉴시스 |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틀째인 8일(현지 시간) 세계 최대 항공모함인 제럴드포드함과 5척의 순양함 및 구축함으로 구성된 항모전단을 이스라엘로 파견했다. 또 최신예 전투기인 F-35 등 전투기 25대 안팎을 증파하기로 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미국은 필요시 억지 태세를 추가로 강화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마스의 본거지이자 대대적 로켓 공격이 시작된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이스라엘은 자국과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에 인명 피해가 클 수 있어 그간 전면적인 지상전을 피해왔다. 수많은 사상자 발생은 물론이고 주변 아랍국가와의 확전을 각오하고서라도 대규모 지상군 투입이 불가피해졌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이란이 하마스의 공격 배후에 있다는 정황도 나타나며 전쟁이 미국과 이란 간 ‘강 대 강’ 대리전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웠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2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열린 이란 지원 무장단체 회의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 작전을 승인했다고 하마스와 헤즈볼라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들은 8월부터 격주마다 만나 이번 공격을 준비해왔다고 WSJ는 전했다.
이란은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방어를 지지한다”는 뜻을 거듭 강조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8일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과 그 지지자들은 이 지역 국가들의 안보를 위험에 빠뜨린 책임이 있다”며 이스라엘과 미국을 동시에 겨냥했다. 이란 국영통신사 IRNA는 라이시 대통령이 앞서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무장단체인 이슬라믹 지하드 지도자와 각각 통화해 이번 사태를 논의했다고도 전했다.
사상자는 연일 늘어나고 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측의 사망자는 9일 현재 1193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전쟁에서 희생된 이스라엘 민간인 수가 지난 20여 년 사이 희생된 규모보다 더 크다고 전했다. 부상자 수도 총 5050명을 넘어섰다.
美, 항모전단 파견-전투기 지원 착수… “이란, 2일 하마스 작전 승인”
[중동전쟁]
美-이란 대리전 양상 본격화
이, 지상전 앞두고 美에 무기 요청
바이든, 네타냐후와 이틀 연속 통화
가자지구에 지상군 투입이 임박했다는 관측 속에 이스라엘은 미국에 저고도 방공망 ‘아이언돔(Iron Dome)’ 요격 미사일을 비롯한 무기 지원을 요청하며 전면전 채비에 나섰다. 미국은 대규모 항모전단까지 급파하며 추가 지원에 착수했다. 이란 정부는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사전에 승인했다는 정황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그간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추진 등 ‘중동 데탕트(긴장 완화)’를 통해 친미 진영의 복원을 꾀해 왔다. 반면 이란은 중동의 ‘앙숙’ 사우디와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모두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미국과 이란이 각각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물러설 수 없는 대리전을 벌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이스라엘 지원하는 美, 하마스 돕는 이란
폐허 된 가자지구 건물 8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이 전날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건물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 보복 공세가 거세지면서 가자지구 주민 230만여 명 가운데 12만 명 이상이 피란길에 올랐다. 가자지구=신화 뉴시스 |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이날 해군 최대 항공모함 제럴드포드함과 순양함 5척, 구축함으로 구성된 항모전단을 이스라엘로 파견했다. 또 최신예 전투기 F-35를 비롯한 전투기 25대를 추가로 보내기로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이틀 연속 통화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상황에 대한 안보팀 보고를 받은 뒤 추가 무기 지원을 지시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미 의회는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사용할 수 있는 1억 달러(약 1350억 원) 규모 대통령사용권한(PDA) 추가 무기 지원 예산도 논의했다.
이런 가운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2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열린 이란 지원 무장단체 회의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 작전을 승인했다고 하마스와 헤즈볼라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들은 8월부터 격주마다 만나 이번 공격을 준비했으며 이란과 하마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사방에서 위협할 수 있는 다중전선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이란은 하마스의 공습을 두둔했다. 주유엔 이란대표부는 8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대응에 관여돼 있지 않으며 순전히 팔레스타인이 스스로 한 것”이라고 배후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70년간 이어진 불법적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이 자행해 온 억압적 강점과 극악무도한 범죄들에 맞선 전적으로 합법적인 방어”라고 발표했다.
● 미국발 ‘중동 데탕트’ 견제하려는 이란
미국의 발 빠른 군사 지원은 이란이나 다른 무장단체가 ‘판을 흔들 수 있다’는 오판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사태로 공을 들여온 중동 데탕트 구상이 타격을 받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조약을 맺은 이스라엘을 ‘철통 방어’하겠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 이란의 하마스 배후 지원 정황 등이 드러나며 이번 중동전쟁은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면 전쟁은 최소 수주 이상 지속될 가능성도 크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대규모 항모전단을 전진 배치하는 것은 이란이나 다른 무장단체들의 하마스 무기 지원이나 직접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조처다.
반면 하마스의 이번 공습 결정에는 미국 중재로 추진돼 온 사우디-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막으려는 전략적 목표가 주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비롯한 수니파 아랍권의 화해로 이른바 중동 데탕트가 이뤄질 경우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강경 투쟁 노선을 고수해 온 하마스는 입지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이는 이스라엘과 수니파 아랍권의 밀착이 자국 안보와 지정학적 입지를 위협한다며 예민한 반응을 보여 온 이란의 이해에도 부합한다. 이란이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최소한 간접 지원했다는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이유다.
국제사회의 확전 우려가 커지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8일 ‘비공식 협의’를 긴급 소집해 이번 사태를 논의했다. 안보리 협의를 앞두고 주유엔 이스라엘대사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대사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여론전을 벌였다.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이스라엘대사는 “이번 공격은 이스라엘판 9·11 사태”라고 강조했다. 반면 리야드 만수르 주유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대사는 “유혈사태를 중단하고, 봉쇄를 풀어야 할 때”라고 맞섰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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