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하루키 라이브러리 담당자는 안동 권씨

곽아람 기자 2023. 10. 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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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도쿄 와세다 대학의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를 찾았습니다. 하루키가 기증한 책과 음반 등을 바탕으로 설립된 곳이죠. 라이브러리 담당자가 건넨 명함에 ‘権慧’라 적혀 있었습니다. ‘権慧’의 일본어 발음은 ‘켄에’이지만, 명함 뒷면 영문 표기는 ‘QUAN Hui(추안 후이)’라는 중국식. 어떻게 된 일일까요?

“할아버지께서 1926년 경북 안동에서 만주로 이주하셨어요.” 권혜(37) 박사가 유창한 한국어로 말합니다. 하얼빈에서 태어나 칭다오에서 자랐다는 권 박사는 다렌의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으로 유학 왔답니다. 부모님이 바빠 조부모 손에서 컸다는 그의 한국어에서 경상도 억양이 묻어납니다.

와세다대학교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 조교인 권혜 박사. /도쿄=곽아람 기자

중국의 ‘안동 권씨’ 소녀를 일본 유학가도록 추동한 힘은 바로 하루키. “고등학교 1학년 때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을 읽게 되었는데, 고독에 대한 묘사, 그리고 와타나베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언젠가는 일본어 원작으로 읽고 싶어 대학에서는 일본어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중국에서도 하루키가 인기 있을까, 싶었지만 한국 다음으로 하루키 작품이 많이 번역된 곳이 중국이라는군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노르웨이의 숲’이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권 박사는 대학 3학년 때 후쿠오카의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왔답니다. 그후로 일본어 원작으로 하루키의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중국어로 읽었을 때와 느낌이 너무 달랐다는군요. “중국어 번역은 아주 화려하고 고풍스러웠지만, 원작은 현대적이고 문장의 흐름이 더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사촌오빠에게 한국어로 번역된 하루키 작품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한국에서는 ‘노르웨이의 숲’의 제목이 ‘상실의 시대’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읽어보니 중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른 감동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원작보다 왠지 더 큰 슬픔을 느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상실의 시대'. /문학사상사

‘같은 작품이지만 번역과 언어가 다름에 따라 독자에게 주는 감각도 다르구나, 왜일까?’. 이 의문이 그를 무라카미 하루키 연구자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마침 도쿄대학의 중국 문학 연구자 후지 쇼죠 교수가 동아시아의 무라카미 문학 수용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지요. 도쿄대 대학원에 입학했고, 후지 교수의 지도 아래 ‘동아시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의 번역과 수용’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80년대 말기 부터 지금까지 하루키의 작품이 중국어권, 한국에서 어떻게 출판·번역 되고 또한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 왔는지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습니다.”

와세다 대학의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 조교로 임용된 건 2020년 봄. 일본 대학의 ‘조교’는 우리의 조교수와 유사한 지위인데요. 학부생들에게는 일본 현대문학이 중국어권에서 어떻게 번역되고 수용되었는가를 주제로 하는 ‘중국 문화론’을 가르치고,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전후(戰後) 일본문학’ 수업에선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다 사야카 등 작가의 작품에 대해 강의·토론한답니다.

와세다 대학의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 /도쿄=곽아람 기자

하루키 라이브러리에 취직함으로써 권 박사는 진정한 ‘성덕’(성공한 덕후)이 되었죠. 그는 “2018년에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연구 센터이자 전세계에서 번역된 하루키 작품을 읽을 수 있는 무라카미 라이브러리가 곧 창립된다는 뉴스를 듣고 너무 기뻤다”면서 “과장해 말하자면 ‘그곳은 나를 위한 최고의 연구장소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전까지 연구할 때 제일 어려웠던 점이 하루키 작품의 각 판본을 입수하는 일이었거든요. 특히 1990년대 한국어 번역본은 중고서점에서도 입수할 수 없어 국립중앙도서관에 복사하러 간 적도 있었어요. 1988년의 노병식 선생님 번역의 ‘노르웨이의 숲’(삼진기획), 1989년 정성호 선생님 번역의 ‘개똥벌레’(성정출판) 등 번역본 복사본을 중요한 연구자료로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어로 번역 판본을 읽을수 있는 무라카미 라이브러리에서 일한다는 건 맛있는 도넛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양사나이’가 된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공채 소식을 듣자마자 지원해 운 좋게도 합격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 1층 전시실 벽. 하루키가 그린 양 사나이 그림이 있다. /도쿄=곽아람 기자

그가 라이브러리에서 담당하고 있는 일은 무라카미 하루키 저작연보 데이터베이스 작성, 무라카미 문학에 대한 강연과 토크 기획, 라이브러리 홈페이지에 실리는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을 만나다’ 칼럼 섭외 및 편집 등. “처음 라이브러리 건물에 출근했을 때는 너무 신이 나서 도넛이 주위에 가득한 양사나이처럼 밤이 깊어도 집에 가기 싫었어요. 제가 정리한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연보가 건물1층에 게시됐을때, 그리고 세계의 무라카미 번역가, 연구자, 무라카미주의자를 알게 돼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 때, 그리고 무라카미 문학에 관한 연구회를 건물 안에서 개최할 때 너무 즐겁고 보람찼습니다. 가끔 하루키님과 아내 요코님을 만나서 수다 떠는 것도 저에게는 ‘소확행(小確幸·작지만 확실한 행복)’이자 ‘대확행(大確幸·아주 아주 크고 확실한 행복)’입니다. 두분 모두 너무 친절하시고 젊은 연구자를 많이 응원해 주십니다.”

올해 안으로 박사논문 등을 정리해 출판하고, 빨리 교수가 되어 정년퇴직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 관장이 되는 것이 권 박사의 꿈이라고 하네요.

권혜 박사가 정리한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의 무라카미 하루키 연보 앞에서 한 남성이 하루키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도쿄=곽아람 기자

권 박사와 나눈 여러 가지 이야기가 인상 깊었지만, 그 중 뭉클했던 건 그의 할아버지 이야기였습니다. 가난을 피해 3살 때 만주로 이주했다는 권 박사의 할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그에게 고향 안동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답니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꼭 기억하거라, 너의 고향은 경상북도 안동군 풍천면 구호동이라’ , ‘너는 안동권씨 36대라’…. 하지만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는 아마 안동의 하늘, 공기 냄새, 풍경의 그림자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2000년 초기 까지도 한국행 비자를 발급받는 것도 아주 어려웠고, 친척과의 연락도 두절되어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마음 속에 항상 품고 있었던 고향 안동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제 한국어에 경상북도 억양이 있다고 한국인 지인들이 말하는데, 그 때마다 왠지 기쁘게 느껴집니다. 할아버지의 향수(鄕愁)를 확실히 계승하고 있구나, 싶어서요. 언젠가는 제 뿌리를 찾아 안동에 가 보고 싶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한·중·일 관계란 외교적으로는 복잡하지만 문학의 세계에선 단지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이유 만으로 하나가 될 수 있겠구나, 권혜 박사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하루키는 올해도 노벨문학상을 놓쳤지만 뭐, 어떻습니까. 그는 산문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후세에 남는 것은 작품이지 상이 아닙니다. 이 년 전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을 기억하는 사람도, 삼 년 전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기억하는 사람도 이 세상에 아마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하지만 한 편의 작품이 진실로 뛰어나다면 합당한 시간의 시련을 거쳐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그 작품을 기억에 담아둡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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