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 보궐선거 승리가 총선 독배 될 수도 있을까
축구경기 해설자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지금은 일방적으로 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축구는 흐름의 경기거든요.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90분 내내 똑같을 순 없어요. 일단 잘 버텨야 해요. 버티면 분명히 기회가 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그 기회가 왔다.
경제처럼 정치에도 주기와 흐름이 있다. 지난 20여 년의 주기를 보면 이렇다. 1997년에 첫 반전이 일어나 민주개혁 진영의 우위가 10년간 지속됐다. 이 기간에 정부 수립 이후 첫 평화적 정권교체가 일어났고, 정권을 재창출했으며, 처음으로 국회 다수당을 차지했다. 2007년부터 10년은 보수의 반격이었다. 제18대 국회에서 민주당 의석은 81석까지 밀렸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했음에도 이기지 못했다.
한동훈 장관이 아무리 “과정일 뿐” 말해도
2016년, 촛불이 판을 다시 뒤집었고 정권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주기가 짧았다. 결정적 국면은 검찰개혁을 둘러싼 ‘추미애-윤석열 싸움’이었다. 2020년 12월 당시 어느 칼럼에서 필자는 “촛불 이후 처음,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썼다. 이후 그 흐름이 이어져 지난 대선에서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박빙의 승리를 거뒀다. 2017년 대선에서 이긴 민주당이 지방선거와 총선에서도 큰 승리를 거둔 것처럼, 2022년 대선에서 이긴 국민의힘은 그해 지방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이 기세라면 총선 결과도 여당에 유리한 듯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흐름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을 언급하며 직접 이념 전쟁에 나서고,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서 정부가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홍범도 장군을 모욕하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과도하게 옹호하는 모습은 국민의 역린을 건드렸다. 이명박 정부인지 윤석열 정부인지 알 수 없는 무리한 인사도 계속됐다.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 후보자는 판사들에게 이미 낙제점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며 기존 흐름이 완전히 멈췄다. ‘추-윤 싸움 이후로 처음,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영장이 기각된 다음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구속영장 결정은 범죄 수사를 위한 중간 과정일 뿐”이라고 말했다. 납득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구속영장의 당사자가 독립적인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다. 인격적으로는 단지 한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지만, 실질적 차원에서는 헌법적 독립기구의 역할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의 동의’라는 별도의 절차도 존재한다. 이 절차로 지난 1년간 얼마나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국력을 소모했는지 생각하면, 국무위원이 쉽게 할 말은 아니다.
형식적 절차를 넘어서 정치적 문제도 있다. 체포동의안이 제출된 당사자는 보통의 국회의원 한 명이 아니라 국회 다수당이자 제1야당의 대표다. 국가나 정부의 선출·임명직이 아닌 특정 정당의 대표라는 것이 어떤 고려 사항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관점과 태도는 정치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헌정적이지도 않다.
우리 헌법은 제1장 총강의 제8조에서 대한민국의 정치가 정당에 기반을 둔 민주정치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정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하기도 한다. 또 정당의 강제적 해산은 헌법재판소 판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런 헌법이 있는 나라의 법무부 장관이 국회 다수당이자 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대해 ‘단순한 범죄 수사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나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다.
검찰총장처럼 검찰 두둔하는 법무부 장관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수사 자체만 놓고 봐도 법무부 장관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야당 대표가 아니라 한 개인에 대한 수사라고 해도 그렇다. 압수수색이 30여 회니 300여 회니 하는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수십 혹은 수백 차례의 압수수색을 하고 2년 가까이 많은 검찰력을 투입해 수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는데 기각당한 것이다. 판사는 이례적으로 긴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에 따르면 세 가지 혐의 가운데 둘은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고, 세 가지 모두 증거인멸 우려는 없다.
이에 대해 법 전문가 사이에서는 구체적인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의 법 상식, 법 감정으로 보기에는 어떨까? 그렇게 긴 기간 동안 많은 수사를 했는데, 결국 백현동 개발사업이나 대북송금 같은 떠들썩한 혐의는 소명도 되지 않았다. 위증교사 건은 그동안 별 언급이 없다가 갑자기 영장 청구에 들어갔는데, 소명이 됐음에도 구속할 사유는 되지 못했다. 보통 우리 국민이 자주 접하는 구속 사유는 ‘범죄가 중대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건은 혐의가 입증된다고 하더라도 ‘중대한 범죄’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야당 대표를 1년 넘게 들들 볶고, 정치를 사실상 중단시킬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동훈 장관은 ‘범죄 수사는 진실을 밝혀서 책임질 만한 사람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절차다. 동력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 이 사안은 이미 오래전에 정치화됐다. 이것은 이재명 대표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문제를 넘어선다. 애초에 구속 여부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면, 왜 빨리 불구속 기소를 하지 않고 국회에 체포동의안을 보낼지 말지를 저울질했단 말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 불구속 수사가 원칙인 사법절차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당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검찰은 잘못이 있는 셈이다. 이에 더해 법무부 장관이 마치 검찰총장처럼 일방적으로 검찰 수사를 두둔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이는 오만한 태도다.
우리 국민은 선거에서 진보적 선택을 하기도 하고, 보수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안정을 희구하기보다는 변화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웃 나라 일본과 비교해보면, 이런 기질은 민주주의에 더 적합하다. 그중에서도 우리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과 본능적 기질을 엿볼 수 있는 것은 ‘권력의 오만’을 매우 싫어한다는 점이다. ‘선거의 여왕’이었던 박근혜 대통령도 한 번의 공천에서 오만함을 드러내자, 국민은 여지없이 심판했다.
오만함에 대한 심판은 민주주의의 원리
‘오만함을 심판한다’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선거가 갖는 의미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느낌이 없지 않다. 또 우리는 선거가 정책 중심으로 치러져야 바람직하고, 정치적 태도나 감정에 따라 투표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정책적으로 형편없고 심지어 기만적이기까지 한데, 유권자 앞에서만 굽신거리는 정치인들을 곧잘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다. 오만함을 심판한다는 것은 제한정부와 민주주의의 원리다. 어떤 정당한 정부도 완전히 전제적인 권력을 누릴 수 없으며, 민주주의에서는 특히 그 권한이 주권자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기에,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권력분립이나 인사청문회 같은 현대 민주주의의 다양한 제도는 모두 이 원리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제임스 밀에 따르면 좋은 정치는 악한 사람조차 좋은 정치인이 되게 하는 시스템이다. 눈앞에서만 아첨하는 정치인은 그렇게 획득한 권력을 다른 곳에서 남용하기 마련이다. 정책적으로 무능하고 국정 운영 능력이 부족한 권력은 현대에 살아남기 어렵다. 다양한 지표를 통한 평가 기준과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만약 악한 자가 권력을 지속하기 위해 국민에게 겸손한 척하고, 권한을 남용하지 않으며, 정책적으로 유능하고, 인사에서 금도를 넘지 않는다면, 그 권력은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이 제한정부와 민주주의의 원리이자, 아리스토텔레스와 마키아벨리가 옹호했음직한 정치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향후 흐름에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지금 멈춘 흐름이 어느 방향으로 다시 흐를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보기에 야당이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 탓을 하고 자신을 되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야당의 오만함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이번의 구속영장 기각을 포함해 지난 1년 반 동안 정부·여당의 국정 운영이 오만하다고 판단한다면 힘을 좀 빼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한 지역에서만 치르는 선거이기 때문에 그 평가는 제한적이어야 한다. 특히 여당이 전임 구청장을 사면하고 공천하는 과정은 다소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선거에서 설사 야당이 이긴다고 해도 그것을 온전히 야당이 잘해서 얻은 승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보궐선거 승리가 총선 독배 될 수도
진짜 문제는 이런 것이다. 보궐선거의 승리가 이긴 쪽의 오만함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이재명 대표가 단식 이후에 말 그대로 ‘수박’(강성 당원들이 비이재명계를 부르는 멸칭) 들을 색출할지 아니면 통합 분위기를 만들어나갈지, 여당이 용산의 마이웨이에 대해 속도 조절을 하면서 검사공천과 이념선거를 제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야당이 승리하면 당내 분위기는 급격히 친명 일색으로 기울 것이다. 여당이 승리하면 대통령실의 행보는 더욱 과감해질 것이다. 어느 쪽이든 2024년 총선에서 유리한 방향은 아니다. 보궐선거 승리가 총선에서 독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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