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칼럼] 얼마나 더 여성을 모욕할 건가
김영희 | 편집인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직접 알지 못하지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박근혜 정부 첫 대변인직 하차 두달 만에 ‘낙하산’ 논란을 일으키며 꿰찼던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자리를 1년 이상 임기를 남겨둔 채 훌쩍 떠난 2015년 얘기다.
금박 은행나무 잎이 찍힌 고급스러운 봉투 안에 담아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여생의 삶을 즐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시작한 글은 “그런데 예기치 못했던 운명이 저를 또다시 뒤흔들어 놓았다. 주변 분들과 동네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됐고,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한 마지막 봉사를 하고 싶다는 강력한 소명을 갖게 됐다”는 반전으로 이어졌다. 민정당 여론조사기관 출신에서 중앙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16대 대선 전날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철회를 발표한 정몽준캠프 정치인, 박근혜 정부 대변인, 양평원장, 다시 서울 중구 국회의원 출마 예비후보로 나섰던 그의 변화무쌍 행보에 당시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비판하는 칼럼을 썼을 정도다.
진짜 ‘마지막 봉사’를 하고 싶어 또다시 예기치 못한 운명의 길을 걸으려는 걸까, 이해해보려고 했다. 비슷한 경로를 밟아도 남성은 ‘의욕’으로, 여성은 ‘욕심’으로 평가받는 사례를 수없이 봐왔다. 어떤 분야든 여성의 고위직 진출 증가가 그런 차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이유다. 그런 내게, 지난주 인사청문회는 허탈감과 심한 모욕감을 안겨줬다.
“아닙니다.” “아, 그런가요?”
5일 가장 기억에 남는 그의 대답은 이 두마디다. ‘개인정보보호법’과 ‘기업비밀’을 이유로 대부분 자료 제출을 거부한 채 모든 의혹에 ‘내가 아니라지 않냐’로 일관했다. 청문회 이전에도 몇차례 ‘주식파킹’ 의혹 해명이 달라졌지만 청문회 당일도 오전과 오후 ‘착오였다’며 달라진 디테일이 부지기수였다. 오죽하면 국민의힘 의원들도 옹호성 발언을 꺼렸을까.
야당의 주장에 과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과거 필리핀의 낙태금지를 언급한 것은 전체 맥락을 볼 때 억울할 수 있겠다 싶다. 위키트리 외에도 적잖은 매체들이 계정을 만들어 뛰어들었던 스팀잇과의 제휴를 ‘코인 투기’라고 하는 주장도 과도해 보인다. 그렇다고 “청문회에서 모든 재무제표를 공개하겠다” “모든 주식변동 상황을 공개하겠다”던 자신의 약속이 사라질 순 없다. 스팀잇의 위키트리 계정에서 누구나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코인 보유 사실도 청문회에서 소리 높여 부정하더니 이제 와선 “인수인계받지 않아 몰랐다”고 한다. 어찌해도 임명될 거라는 오만함 아니면 판단력과 능력의 ‘바닥’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청문회 ‘줄행랑’ 사태는 그가 장관 자리를 감당할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각인시킨 것뿐이다.
사실 인사청문회나 백지신탁 제도 취지 무력화만큼이나 심각하게 봐야 하는 건 그가 공동창업했고 2019년 이후 실질적으로 이끈 위키트리가 여성 2차 가해 기사들의 생산기지 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부끄러운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이란 말로 퉁칠 문제가 아니다. 자신은 ‘작은 언론사’라고 말하지만, ‘유사언론’ 인사이트와 위키트리는 2021년 정부의 여론집중도 조사에서 페이스북 합계 점유율이 12개 방송사를 합한 수치의 두배를 기록했을 정도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으로 체류시간을 늘리는 알고리즘 덕분이다. 위키트리는 2019년부터 3년 연속 언론중재위의 시정권고 횟수 톱10 매체에 들었다. 2019년 세상을 떠난 한 유명 여성 연예인에 관해 나흘간 73건의 기사를 쏟아냈는가 하면, 2022년 한 여성 비제이(BJ)의 죽음의 배경이 된 이른바 ‘사이버렉카’ 유튜브 영상들을 지속적으로 기사화한 매체로 지목받았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밝힌 제보자 증언에 따르면, 김 후보자가 직접 임직원을 면담하며 트래픽 제고 방안을 독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가 청문회 머리발언에선 “(디지털성범죄 등) 5대 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합지원이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 아래 촘촘하게 이뤄지게 하겠다”고 했다.
보수진영에 그보다 나은 여성 인재가 왜 없겠는가.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가 출범 첫 국무위원 명단에 여성을 단 3명 포함시킨 데 이어 이런 여가부 장관 후보까지 내세우니, 이건 여가부에 대한 노골적 무시를 넘어 ‘여성의 능력’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우스개마저 여성들 사이 나오는 것이다. “제가 왜 여기서 모욕을 당해야 되나? 저도 60이 넘었다”던 김 후보자의 말을 되돌려주고 싶다. 기자들 앞에서 ‘언론계 선배’를 내세우고 청문회에선 나이를 내세우며 치열하게 오늘을 사는 언론인들과 여성들을 더이상 모욕하지 말아달라. 지금 그가 할 마지막 봉사는 물러나는 것뿐이다.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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