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고학력 여성 '소득 불평등' 입증···경제학계 유리천장 깬 개척자
200년 넘는 자료 분석···성별간 소득격차 첫 규명
"높은 임금 준다해도 출산 등으로 격차 해결 못해"
여성 역대 세번째 경제학상···단독수상으로는 처음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클로디아 골딘(사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 세계 경제학계에서 성별 불평등 문제와 관련된 논의를 열어젖힌 선구자로 꼽힌다. 노동시장 내 남녀 간 소득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성 학자가 단독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동 수상까지 포함하면 엘리너 오스트롬(2009년)과 에스테르 뒤플로(2019년) 이후 세 번째 여성 수상자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9일(현지 시간) ‘여성의 노동시장 결과와 관련한 우리의 이해를 진전시킨 공로’로 그에게 202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1946년 미국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골딘 교수는 코넬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위스콘신대·프린스턴대·펜실베이니아대를 거쳐 1990년 하버드대 경제학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 학과의 첫 여성 종신교수가 됐다. 노벨위원회는 노벨경제학상 발표문에서 “여성들이 세계 노동시장에서 엄청나게 과소대표돼 있고 일할 때도 남성보다 적게 번다”며 “골딘은 저인망식으로 기록을 뒤져 미국의 200년간 이상의 데이터를 수집해 소득과 고용률의 성별 격차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왜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미국 역사에서 남녀 소득 격차의 변화를 분석하고 피임약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등 뛰어난 성과를 내면서 골딘 교수는 여성 노동경제학을 천착하는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발돋움했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2013년 골딘 교수는 미국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전미경제학회(AEA) 회장직에 올라 앨리스 리블린(1986), 앤 크루거(1996)에 이어 세 번째로 AEA의 여성 회장이 됐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19세기 초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의 전환에 따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한때 감소했다가 20세기 이후 서비스 부문의 성장에 힘입어 다시 증가세를 그려왔다. 교육 수준도 지속적으로 향상돼 현재는 고소득 국가 대다수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크게 높은 상황이라고 노벨위원회는 지적했다.
하지만 아직도 여성은 세계 노동시장에서 과소대표되고 있으며 노동으로 얻는 수입도 남성보다 적다고 노벨위원회는 짚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종신교수에 오른 골딘 교수는 이런 차이가 출산과 육아에 따른 부담과 장시간 고강도로 일할수록 훨씬 더 많은 임금을 얻는 미국의 고용 환경에서 나타난다고 설명해왔다.
대학 졸업과 취업 등으로 사회에 진출한 뒤 남녀는 동일선상에서 출발하지만 10년 정도가 지나면 상당한 임금격차가 생긴다. 같은 직업을 갖더라도 소득에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다.
주요 요인은 아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행위는 거의 언제나 여성의 커리어에 악영향을 미치며 이는 ‘부부 간 공평성’이 깨지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 골딘 교수의 지적이다.
아울러 시간 외 근무와 주말 근무, 야근을 하면 각종 수당으로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미국의 기업 문화 때문에 각 가정은 남자는 일에 집중하고 아내는 아이를 돌보며 유연근무를 하는 식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하게 된다. 특정 업무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등의 노골적 성차별이 사라지고도 미국에서 성별 임금격차가 여전한 이유다.
여성에게 단순히 높은 임금을 제공한다고 해서 노동시장 내 성별 격차를 해결할 수 없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투자은행(IB)이나 로펌처럼 노동 강도가 높은 고소득 일자리를 여성이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까닭에서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대된 덕분에 대졸 워킹맘의 고용 안정성이 크게 개선됐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2021년 초 기준으로 4세 이하의 자녀를 둔 미국 대졸자 여성 중 취업 상태인 경우는 2019년보다 3.7% 늘어났다는 것이 골자다. 이는 부부 양쪽이 모두 재택근무를 하며 양육 부담이 경감된 데다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 중 재택근무에 들어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골딘 교수는 남성 일변도였던 경제학계에서도 ‘여류 개척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1990년 하버드대의 첫 여성 종신교수로 임명됐고 여성 경제학자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2013년 AEA 회장을 맡았다. 하버드대에서 수학했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젠더 경제학적 분석과 노동시장 내 여성의 역할 연구를 최초로 열었다고 할 수 있는 분”이라며 “오래 전부터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사람으로, 여성 경제학자로서 커리어 측면에서는 거의 모든 이슈에서 최초의 기록을 세우셨다”고 설명했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여성의 양육 부담처럼 성별 불평등의 제도적 요인이나 문화적 원인에 대해 연구를 했다는 데 의의를 둬야 한다”며 “시대적으로 불평등이 큰 이슈인데 그중에서도 성별 불평등이 상당히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는 점을 이번 수상이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세종=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세종=이준형 기자 gilso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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