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등 한국사회 구조적 성차별, 시장 아닌 국가가 바꿔야”[창간 77주년 기획 - 신경아 묻고 장하준 답하다]

임아영 기자 2023. 10. 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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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런던대 교수(오른쪽)와 신경아 한림대 교수가 지난 6일(현지시간) 장 교수의 런던대 연구실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신경아 교수 제공

신경아 한림대 교수(이하 신경아) = 한국 노동시장에서는 성별 임금격차와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국의 경제학자들 중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은 분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올해 발간하신 <경제학 레시피>에서 여성의 노동, 돌봄노동 문제를 다루고 계신데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되신 배경은 무엇인가요?

장하준 런던대 교수(이하 장하준) = 사실 제 처가 쓰라고 시켜서 쓴 건데요(웃음). 저도 23세였던 1986년에 영국에 유학을 왔는데 그때까지는 한국 가부장제를 당연시 여기고 살았습니다. 제 처는 한국에서 동시통역사로 훈련을 받았는데 1996년 결혼 이후 영국에 오니까 할 일이 없었죠. 제 처가 훈련받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장도 없는 나라에 데려와서 말하자면 커리어를 제가 망쳐버린 거죠. 살면서 싸우기도 하고 얘기도 많이 하면서 가부장적인 제도 속에서 여성들이 너무나 구조적으로 차별받고 억압받고 있구나 느끼게 됐죠.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세탁기가 인터넷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는 얘기를 썼는데 사실 이 얘기를 처음 한 사람은 제 처였어요. 집에 세탁기가 고장 나서 빨래를 욕조에 넣고 같이 발로 밟으면서 빨다 처가 얘기를 했고 제가 그를 뒷받침하는 경제이론과 통계들을 집어넣은 것이지요(웃음). <경제학 레시피>를 쓰고 있을 때는 처가 맨날 말로만 젠더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지 말고 경제학적 시각에서 꼭 쓰라고 얘기를 해줬어요.

신경아 = 여성운동사에서 존 스튜어트 밀 부부가 생각납니다. 영국 철학자 밀이 청년이던 시절 정신병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해리엇이라는 여성을 만나 안정을 찾고 지적인 작업을 해나갈 수 있었는데요. 후에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는데, 밀은 책 서문에 자기 작업의 많은 부분은 난롯가에서 둘이 함께한 토론의 결과라고 썼지요. 남성들은 돌봄노동이나 젠더 문제에 대해 직접 경험하기보다는 가까운 여성들의 삶을 지켜보고 경험을 공유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것 같습니다.

장하준 = 저도 가사노동을 많이 한다고는 하는데 가부장적인 문화와 제도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가사노동에는 인지노동(cognitive labor), 집안일을 계획하는 정신노동이 많잖아요. 여성의 가사노동 가치를 인정하자는 사람들도 그 가치를 추산할 때 가사도우미를 고용했을 경우 얼마가 드는지로 환산하거든요. 인지노동을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소평가된 것입니다. 특히 한국은 명절, 친척들 경조사 등 인지노동 영역이 큰데 가사도우미는 그런 일은 맡지 않거든요. 수면 위로 안 떠오르는 빙산처럼 보이지 않는 노동이 많지만 사회 구조가 가부장적으로 돼 있으니 인정받지 못하는 거죠.

시장주의·신자유주의 경제학
가부장적 사회 제도·문화 순응
‘시장이 모든 가치 정한다’ 주장
여성 노동 가치 제대로 안 쳐줘

경제학이 ‘성별 임금격차’를 못 담는 이유

신경아 = 경제학에서 여성의 노동, 돌봄노동 이슈를 잘 다루지 않고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게 된 것은 가부장적인 사회 제도와 문화 때문일까요?

장하준 = 2가지가 섞여 있는데요. 먼저 경제학적으로 보면 시장이 모든 것의 가치를 정해야 한다는 시장주의와 신자유주의, 좀 더 넓게 말하면 신고전파 경제학이 이유입니다. 많은 돌봄노동이 시장에서 거래가 되지 않으니 아예 가치 없는 것이 되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돌봄노동도 1원 1표라는 시장 원리에 따라 그 가치를 제대로 안 쳐주는 거죠. 더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이전,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한때 넘어서보겠다 했던 사회주의에서도 가부장제가 지속됐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거죠.

신경아 = 경제학은 사회학 등 다른 사회과학 분야에 비해서 여성 학자나 교수의 비중이 높지 않아 보입니다. 영국 대학 경제학과의 여성 교수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장하준 = 제가 있는 곳은 런던대 ‘소아스(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인데 영국이 식민지 관리들을 키우려고 만든 학교입니다. 지금은 반제국주의 사회과학의 중심지가 되었죠. 이 학교는 상당히 진보적이라 경제학과의 여성 교수 비율이 40%지만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를 보면 20% 안팎이에요. 요즘 주류 경제학이 중세 가톨릭 신학이 하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체제 정당화 학문이기 때문에 체제 순응적인 거죠. 그런 학문을 해야 잘될 수 있고 저처럼 소위 말하는 비주류 경제학을 하면 싫어하거든요(웃음). 이런 구조다 보니 지금 체제에서 중요한 기둥 중 하나가 가부장제인데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살아남기가 쉽지 않죠. 최근 논문을 발표했는데 통계를 보니 미국 대학 경제학과의 경우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 비율이 줄어서 박사과정은 30~35% 되는데 조교수는 25~30%, 부교수는 15~20%, 정교수는 10%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주류 경제학의 체제 순응성이 큰 요인이고 여성들은 숫자 다루는 일을 잘 못한다는 문화적인 편견도 여전히 있고요. 문제는 비슷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면 내부 성차별이 심해진다는 거죠. 2009년 엘리너 오스트롬이란 여성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을 때 일인데, 발표 직후 미국의 경제학 박사과정생들이 정보 교환 사이트에 올린 코멘트를 보면 70~80%가 ‘여자라서 탔잖아’라는 식이었어요.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 33.1%
OECD 평균 11.9% 크게 웃돌아
고용·승진 차별에 경력단절까지
여성들의 ‘암묵지’ 공중분해돼

성별 임금격차는 이제 ‘생산성’의 문제다

신경아 = 스웨덴에 와보니까 이 사람들은 ‘피프티 피프티’(50 대 50)가 입에 뱄어요. 모든 걸 똑같이 한다는 건데도 스웨덴 여성들은 불만이 있어요. 한국은 여성들이 일을 많이 하는데도 성별 임금격차가 30%인데 원인은 무엇일까요.

장하준 = 스웨덴은 성별 임금격차가 7.3%,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11.9%, 한국은 33.1%나 됩니다. 성별 임금격차는 엄청나게 비생산적인 거예요. 임금격차는 같은 일을 하는데 남성들에게 돈을 더 많이 주는 요인도 있지만, 여성들이 승진이 안 된다든가 좋은 직장에서는 안 받아준다든가 등의 요인도 있죠. 그 결과 여성들이 많이 교육받은 부분을 낭비하는 거예요. 여성이라고 그가 할 수 있는 일보다 못한 일을 주면 지식을 낭비하게 되고 여기에 경력단절까지 되면 여성들이 일하면서 축적한 암묵지(경험을 통해 쌓이는 지식)가 그냥 공중에서 분해되는 거예요. 이제 여성들을 차별하는 게 불평등하다는 걸 넘어 경제 생산성에 엄청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는 점을 봐야 합니다.

신경아 = 노동시간 문제에 대해 얘기해보죠. 한국 고용주들은 우리나라 발전 모델을 봤을 때 독일, 스웨덴처럼 노동시간을 줄이면 추락할 수 있기에 쉽지 않다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장하준 =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생산성은 고용주와 사회 체제가 만드는 거예요. 개인이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서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부분은 비율상 아주 작습니다.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 일하던 엔지니어들이 독일이나 스웨덴으로 이주하면 생산성이 높아집니다. 일하는 기계, 기술이 좋아지고 노동자 교육과 사회제도 모두 잘돼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지리아에서 3000달러 받다가 스웨덴에서 7만달러 받게 되는 것이 노동자가 갑자기 20배 이상 똑똑해졌기 때문은 아니잖아요. 노동자의 생산성은 대부분 기업이 어떤 기계를 사고, 어떤 연구·개발(R&D)을 하고, 어떤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고용주들이 그런 불평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돼요. 노동시간 좀 더 늘려서 생산성이 증가하는 부분은 5%도 안 됩니다.

유능한 여성들 밀어내는 사회
개별 기업·고용주 취향 문제 아닌
차별 시스템 시장에 맡겨선 안 돼
국가 개입해 관행·제도 개선해야

차별 ‘경로의존성’ 깨려면 국가 개입 필요

신경아 = 그동안 제가 한국에서 인터뷰를 해온 여성들 중에는 좋은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도 경력을 유지하는 게 어려운 경우가 많아 늘 안타까웠습니다. 한 매니저급 여성은 새벽에 비행기 타고 뉴욕에 가서 프로젝트 따내고 밤에 돌아오는 식으로 일했지만 2008년 경제위기 때 잘렸습니다. 그때 회사는 다른 매니저들은 모두 남성인데 가장을 어떻게 자르냐고 했다 합니다. 회사들은 왜 유능한 여성들을 밀어냈을까요?

장하준 = 회사 전체에서 다수는 남성이고 힘을 쥐고 있는 쪽도 남성인데 그들의 시각이 가부장적인 문화와 제도하에서 만들어진 것이죠. 숫자로는 다수일지 모르지만 일부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망치는 거라고 봅니다. 미국에는 ‘인종차별적 회사가 생산성이 낮다’는 연구가 많습니다. 적재적소에 인재 채용을 하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밀턴 프리드먼 같은 극단적 시장주의자들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금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내버려두면 그런 회사는 망할 거라는 건데 그분들이 못 본 게 있어요. 이런 구조는 단순히 개별 기업이나 고용주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시스템이 그러한 차별을 받쳐주고 있는 거죠. 기업과 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큰 구조를 보지 못하는 겁니다.

신경아 = 한국 몇몇 기업들이 의지가 있다고 해도 전체적인 사회 구조가 성차별하는 경로의존성이 있어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구조에 균열을 내려면 국가의 노력이 중요해 보입니다.

장하준 = 맞습니다. 일시적으로라도 충격을 줘서 경로를 바꾸는 게 필요합니다. 차별은 구조적인 것이라 시장에 맡겨서는 해결이 안 됩니다. 극단적인 예로 코로나19 팬데믹 때 한쪽에서는 수백만명이 약이 없어서 죽어가는데 다른 한쪽에서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 같은 억만장자들은 우주탐험 경쟁을 했잖아요. 국가 개입이 중요할 수밖에 없고 그다음 노조와 시민단체 등에서 집단행동을 이어가야죠. 정부가 계획을 통해 사회의 관행과 제도를 바꿔가지 않으면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신경아 = 스웨덴에는 옴부즈맨 제도가 있습니다. 정부 기구에 성차별 전문가가 있어서 기업의 문제를 계속 찾아내고 조사하고 고발합니다. 정부가 직접 노동에 관한 차별을 시정하는 거죠. 한국 고용노동부에는 성차별 시정 기능이 거의 없습니다. 정부가 차별을 예방해야 하고, 관련 사건이 벌어졌을 때 조사하고 기업을 처벌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변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편협한 정책
3등 시민 착취 19세기적인 사고
성차별 해결이 경제 선순환 고리

“1960년대 아닌 1860년대로 가고 있다”

신경아 = 최근 한국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정책 중 하나가 ‘외국인 가사도우미 수입’입니다. 임금, 노동조건, 세제상 형평성은 물론 돌봄노동의 가치 평가를 둘러싼 반론이 여성계와 노동계에서 제기되고 있어요.

장하준 = 지금 많이 드는 예가 홍콩, 싱가포르거든요. 홍콩은 합계출산율이 0.8명, 싱가포르도 1.0명밖에 안 됩니다. 정책 입안자들이 제대로 공부도 안 하는 거예요. 좋은 정책을 펼치고 싶다면 제대로 공부해서 선진국이면서도 출생률이 높은 나라를 따라 해야죠. 스웨덴, 덴마크는 1.7명이고 네덜란드, 독일은 1.6명 정도잖아요. 자기가 반에서 50명 중 꼴등 하는데 49등 하는 아이 공부법을 따라 하겠다는 거거든요. 기왕 따라 하려면 1등 하는 아이의 공부법을 따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책 입안자들 시야가 얼마나 좁은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경아 = 그런 점에서 스웨덴 성평등 정책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거리 곳곳에서 유아차를 미는 아빠들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정부가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한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더군요.

장하준 = 최근 한국 상황에 대해 어떤 분이 ‘1960년대로 돌아가려는 거 아니냐’고 하길래 제가 ‘이건 1960년대가 아니고 1860년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어떻게 하면 노동시간 늘릴까, 어떻게 하면 성평등을 뒤로 돌릴까, 어떻게 하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 데려와 3등 시민 만들어서 착취할까? 19세기에나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완전히 병든 사회예요. 이를 바꿔내지 못하면 사회적인 문제도 크겠지만 경제적으로도 점점 더 침체될 수 있어요. 고령화가 문제가 아닙니다. 기술을 개발하고 생산성을 높이면 젊은이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던 것을 이제 0.5명, 0.2명이 할 수도 있거든요. 꼭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건 아닌 거예요. 물론 출생률이 낮다는 건 성차별 구조, 복지 부재, 교육 문제 등 병리적인 현상들의 증후군인 것이니 고쳐야 하죠. 경제를 창의성과 다양성으로 더 높은 수준으로 끌고 나가는 방향으로 잡아야 합니다.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와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굉장히 중요한 고리입니다. 한국의 젠더 문제가 단순히 사회 정의와 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신경아 = 정치권이 방향을 잘 잡아가지 못해서 걱정이 큰데 그래도 희망을 찾아가야겠죠.

장하준 = 그런 말이 있지요? 동이 트기 전에 제일 어둡다고요. 저는 지금 한국이 그런 시기라고 믿고 있어요. 지금 정부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페미니즘을 억압하지만, 계속 싸워서 바꿔야 된다고 생각해요. 민주화도 그렇게 한 거 아닙니까? 그 시대는 다른 면에서 더 억압이 심하던 시대였잖아요. 그것도 넘겼는데 저는 이 시기도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신경아 = 오늘 교수님과의 대화가 동트는 시기를 좀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임아영 젠더데스크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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