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저출산'에도 임신갑질 여전…"임신하니 업무 몰아줘 결국 유산"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오는 10일 '임산부의 날'을 하루 앞두고 직장 내 임신‧육아 갑질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앞서 정부는 내년 1월부터 육아휴직 급여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침을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육아휴직제도의 남녀 의무화 및 갑질 엄벌 등의 강력한 조치 없이는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동법률지원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2021년 1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신원이 확인된 노동자로부터 제보받은 54건의 임신‧육아 갑질 사례를 9일 공개했다. 갑질의 주요 형태는 해고·권고사직 20건(37%), 부당평가·인사발령 13건(24.1%), 직장 내 괴롭힘 10건(18.5%), 단축근무 등 거부 7건(13%), 연차사용 불허 4건(7.4%)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신 및 육아 상황에 직면한 노동자에 대한 해고 등 인사 문제가 두드러졌다. 한 사업주는 "우리 회사는 출휴(출산휴가), 육휴(육아휴직)가 없으니, 임신한 직원은 자발적으로 퇴사하라"는 위법적인 지시를 노동자에게 내렸고, 한 회사에선 임신 및 육아휴직 사용을 인사평가 '최하' 등급의 사유로 지정했다. 출산휴가 논의 중에, 배우자의 육아휴직 면담 중에, 혹은 복직 후에 등등 임신·출산을 전후로 갑작스럽게 해고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임신한 노동자들은 임산부에게 법적으로 부여되는 권리인 연차 사용 및 단축근무도 법대로 쓰지 못했다. 한 노동자는 "출산으로 단축근무할 경우 업무지장이 있다"며 연차 쓰지 말 것을 강요 받았고, 출산휴가와 연차휴가를 붙여서 신청하자 연차를 아예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상급자를 중심으로 임신한 팀원에 대한 따돌림이 조장되는 경우도 많았다. 한 임신 노동자는 연차 사용은커녕 "오히려 부당한 과다업무지시로 유산을 겪어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외에도 △부서 내 따돌림 △육휴 복직자에 대한 업무 배제 △임출육을 사유로 한 승진 누락 등 다양한 불리 처우 사례가 쏟아져나왔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제3장의 일·가정양립 지원 조항을 통해 사업주 등이 육아휴직을 이유로 노동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단체는 "그러나 일터에서 주먹은 가깝고, 법은 저 멀리 있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상황은 일부 제보사례에서만 확인되는 이야기들이 아니다. 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9월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응답은 전체 응답자의 60% 수준에 머물렀다. 직장인 10명 중 4명이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 셈이다.
특히 출산휴가 등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응답은 비정규직(58.3%),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67.5%), 월 임금 150만 원 미만 노동자(58.1%) 등 '일터의 약자' 계층에서 높게 나타났다. 정규직(27.8%), 공공기관(16.1%), 대기업(23.0%), 월 임금 500만 원 이상 노동자(20.9%) 등과 비교하면 2~4배 이상 높게 나타난 수치다.
같은 조사에서 '육아휴직'으로 분야를 옮겨보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응답은 출산휴가보다 낮은 54.5%에 불과했다. 직장인 절반(45.5%)에 가까운 이들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육아휴직에서의 불리 처우 응답률 또한 비정규직(61.5%)과 정규직(34.8%), 5인 미만(69.9%)과 공공기관(19.5%)·대기업(28.9%), 월 150만 원 미만(65.6%)과 월 500만 원 이상(27.9%) 등 노동자 '계층'에 따라서 2배~3.5배의 차이를 보였다.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은 출산휴가 미부여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육아휴직 미부여 시 5백만 원 이하의 벌금을, 육아휴직을 이유로 한 불리한 처우의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 만 원 이하의 벌금을 각각 사업주에게 처하고 있다. 그러나 법에 따라 실제 처벌되는 사례는 드문 편이다. 직장갑질119 소속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노무사는 "출산, 육아휴직 미부여 또는 휴직 이후 노동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는 노동관계법령상 형사처벌 조항이 있는 명백한 범죄행위임에도 고용노동부는 실효성 있는 제재조치 대신 방관만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임신육아갑질'은 특정 노동자가 아닌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근로감독만 시행하면 바로 불법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단체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노동자 중에 산전후 휴가와 육아휴직 사용 전후 퇴사한 회사를 상대로 특별근로감독을 벌이면 되는 것"이라며 "임신육아갑질을 방치해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유일한 소멸국가가 되었는데도, 정부는 획기적인 제도 개선과 특별감독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 또한 "정부가 초저출산 국가 탈출을 위한 형식적인 출산 장려 정책 대신 일터에서 여성들이 최소한의 제도를 누구나 당연히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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