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교육수준 높아져도 여전한 유리천장 원인 밝혀내
美 200년 노동시장 분석 결과
女 가사·양육 부담 때문에
고소득 일자리 기회 놓쳐
근무 유연화로 격차 줄여야
여성 첫 경제학상 단독수상
남편은 13세 연하 동료교수
202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한마디로 '이제 경제 효율성을 높이려면 세상의 절반인 여성 인력 활용이 절실해졌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인구 충격으로 저성장 구조가 굳어지는 상태에서 남녀 임금차별의 벽을 깨고 여성 경제활동력을 키우지 않으면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는 여성과 남성의 노동시장 참여와 임금 수준이 차이 나는 이유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노동경제학의 대가로, 그동안 노벨상 단골 후보로 손꼽혔다.
골딘 교수는 그동안 여성들이 꾸준히 노동시장에 진입했지만 좀처럼 성별 간 임금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이유를 규명하며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야코브 스벤손 경제과학상 위원회 의장은 "골딘 교수는 200년 이상 축적된 미국 노동시장 자료를 분석해 성별에 따른 소득과 고용률 격차의 시대별 패턴을 알아내고 그 원인을 규명했다"고 수상 배경을 밝혔다.
스벤손 의장은 "노동 시장에서 여성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여성이 남성과 같은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여성의 노동 기술과 재능은 낭비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골딘 교수 연구에 따르면 19세기 초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한때 감소했다가 20세기 이후 서비스 부문의 성장에 힘입어 재차 늘었다. 교육 수준도 지속적으로 향상돼 현재는 고소득 국가 대다수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수준이 크게 높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은 세계 노동시장에서 얻는 수입이 남성보다 적다. 골딘 교수는 여성이 가정을 돌보기 위해 고소득에 높은 노동강도를 요구하는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job)' 대신 유연한 일자리를 선택하면서 남성과 임금 격차가 벌어진다고 봤다. 그는 고소득·고강도 근무 문화를 유연하게 만들되 유연한 일자리 생산성은 높이는 방식으로 임금 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대안을 내놨다. 그는 생물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경제학자로 손꼽힌다. 코넬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다가 경제학에 매력을 느껴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0년 하버드대 경제학과 최초의 여성 종신 교수가 됐다. 이 같은 학문적 배경은 경구피임약이 여성의 커리어와 결혼에 미친 영향을 비롯해 여성 노동시장에 대한 연구의 폭을 크게 넓혀준 것으로 평가된다.
하버드대 수학 시절 골딘 교수와 친분을 쌓았던 이종화 고려대 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연구소에서도 보통 새벽 3~4시까지 연구하는 열정적인 학자"라며 "여전히 여성의 노동시장에 유리천장이 있는 현실에서 많은 여성들이 경제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골딘 교수는 하버드대 경제학부에서 나란히 교편을 잡던 래리 카츠 교수와 결혼한 노동경제학자 부부다.
카츠 교수는 1993~1994년 미국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노동부에서 수석 경제학자를 지내 실전 정책에 대한 경험도 풍부하다. 1946년생인 골딘 교수(77)가 1959년생인 카츠 교수(64)보다 13세 더 많지만 부부 금슬은 좋다.
카츠 교수는 골딘 교수를 "개인적, 학문적인 파트너"라고 스스럼없이 평가한다. 두 사람이 2008년 함께 출간한 '교육과 기술의 경주'는 기술 진보의 중요성을 예민하게 간파한 노동경제학계의 교본으로 손꼽힌다.
두 사람은 기술도 중요하지만 불평등이 심화하는 현상에 비춰볼 때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증 분석을 통해 증명했다. 즉, 경제가 성장하려면 신기술 도입뿐만 아니라 교육을 통해 생산성과 숙련 프리미엄을 개선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화 교수는 "기술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빠르지만 이에 비해 교육이나 인력 양성은 부족하며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며 "교육의 차이가 경제 성장은 물론 소득 격차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역작"이라고 말했다.
골딘 교수를 지도교수로 뒀던 황지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하버드대를 졸업할 때 가르침을 받은 것에 이어져 서울대에서도 한국 데이터를 이용해 저출산이나 경력단절 등에 대해 연구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환 기자 / 이희조 기자 / 한상헌 기자 /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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