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칼싸움만 할 거면 정치는 왜 하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치가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미국에서 하원의장이 해임되었다는 데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한국 언론은 ‘개딸(개혁의 딸)’과 ‘태극기’에 견주고 있는데, 우리는 일부가 아닌 정치 전반의 문제란 점을 짚어야 한다. 매끄럽게 되지는 않았지만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이 ‘프리덤 코커스’라는 공화당 강경파들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지원안을 임시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았고, 이에 앞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 지시도 했다. 그런데도 강경파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해선 따로 합의한 게 있다는 취지의 발언 한마디를 했다는 이유로 매카시 전 의장을 배신자로 몰아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궁금한 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게 그렇게까지 싫은 이유가 뭐냐는 거다. 국민적 피로감을 대변하는 거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자기들 이름에 ‘프리덤’까지 붙여 놓을 정도면 우크라이나 국민의 ‘프리덤’을 위해 오히려 미국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은 독재자 푸틴에게만 좋은 일을 하는 셈이다.
의문은 이들이 이전의 ‘티파티’와 정치적 맥락을 같이한다는 걸 알면 해소된다. 이들의 ‘자유’는 세금과 정부로부터의 자유, 즉 ‘나’의 자유이다. 남의 자유는 안중에 없다. 이들은 민주당 정권을 ‘사회주의’라고 규탄하면서 푸틴·시진핑·김정은 등의 독재자들과 묘한 친분을 과시하는 트럼프와 정치적 동맹 관계인데, 당연한 귀결이다. 다른 나라 사정이야 어찌됐든 미국 정부가 돈을 걷지도 쓰지도 않으면 목표 달성인데, 정확히 트럼프식 정치가 그 기준을 충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유’는 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이익! 실제 강경파들은 단기적으로 궐기(?)에 나선 덕을 꽤 볼 것이다.
‘자유’라고 하면, 우리 정치도 꽤 자주 언급하는 편이다. 공정과 상식에 좀 묻히긴 했지만 지난 대선은 마치 자유의 향연이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는데,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가짜뉴스’가 만능열쇠가 된 현실이 그렇다. 무슨 의혹을 제기하면 답은 안 하고 무조건 ‘가짜뉴스’라며 언론을 혼내려 하고 정권만 잡으면 포털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언론 자유 보장에 힘쓰는 게 자유민주주의적 통치자 혹은 정치인으로서 마땅히 보여야 할 모습일 텐데, 관심이 없다. 체면을 구기고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버티고 우기는 게 먼저다. 최근의 인사청문회를 떠올려보라. 면전에 영상을 틀어줘도 왜곡이라 하고 ‘가짜뉴스’만 얘기하다 줄행랑을 친다.
왜 이럴까? 정치가 게임이라면 이게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신사적으로 도리를 다 하면 지지하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지지하겠는가? 그 사람들은 어차피 뭘 해도 반대한다. 무리이더라도, 말이 되든 안 되든 우리 편에 방어 논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먼저이다. 협치? 어차피 뒤로 협잡질 할 것을 국민들도 다 아는데 뭐 하러 하는가? 그냥 밀어붙이는 게 답이다. 설득보다 권한행사이고, 토론보다 표 대결이며, 협상보다 고소고발이다. 정치는 아름다움을 겨루는 경연이 아니라 힘의 대결이다. 그러니 우리 편을 최대한 많이 동원해 힘으로 싸워 이기는 것이 왕도이다. 이러한 정치관이 표준이 된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오직 어떤 진검승부만이 본질이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나는 이런 정치관을 ‘진검승부주의’라고 부르기로 했다.
검술가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정치는 왜 하느냐는 것이다. 오직 권력을 쥐기 위해서라면 진검승부만으로 족할 수 있다. 하지만 공동체를 위한 정의를 찾고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공감해야 할 때도 있고 뜻을 바꾸도록 설득해야 할 때도 있다. 칼싸움만으로 될까? 한 번 생각해 보시라. 그래도 미국은 435명 중 8명만 문제라는 것 아닌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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