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내성천 물빛이 호소하는 것은
지난 8월 초 찾은 내성천에서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진한 누런 색의 물빛이었다.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회룡포 주변을 포함해 내성천은 흙탕물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십수년간 방문해온 내성천에서 처음 보는 물색깔이었다. 지난 7월 집중호우 당시 산사태 이후 상류에서 떠내려온 흙과 오염물질이 포함된 물을 영주댐이 방류하면서 투명하리만큼 맑았던 내성천이 누렇게 물든 것이었다. 영주댐으로 막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낙동강으로 흘러가고 있었더라도 내성천 물빛이 누렇게 변했을까, 산사태 직후엔 흐려질 수밖에 없었겠지만 도도한 강물의 흐름이 자정작용을 일으켜 어느새 원래 물빛을 되찾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댐 상류로 올라가자 강물의 색깔은 탁하고, 진한 초록으로 바뀌었다. 4대강사업 이후 낙동강·금강 등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녹조라떼’의 색깔이었다. 댐을 기준으로 상하류가 녹조라떼와 흙탕물로 갈라져버린 모습을 보면서 영주댐이 과연 존재해도 되는 댐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애초에 영주댐은 낙동강 수질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으로 지은 댐이다. 하지만 영주댐에 가뒀던 물은 낙동강 물을 깨끗하게 하기는커녕 내성천마저 오염시키고, 수생태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다. 마지막 모래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맑은 물을 자랑했던 내성천에서 적어도 1조수천억원에 달하는 돈을 들인 댐이 심각한 수질 오염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수질, 수량, 수생태 3가지 측면의 목적을 두고 실시한 4대강사업의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수십조원을 들인 4대강사업으로 하천 수질은 악화됐고, 확보한 수량은 아무 쓸모가 없으며, 수생태는 돌이키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훼손됐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사회적으로 검증이 끝난 사실이다. 정부·여당과 곡학아세하는 일부 학자, 황색 언론들만이 빈약한 근거를 들며 애써 부인하고 있을 뿐이다.
내성천의 심각한 녹조 번무는 녹조의 주요 지표가 되는 유해 남조류 개체 수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영주댐이 본격적인 담수를 시작한 2019년부터 올해까지 내성천에서는 극심한 남조류 창궐 현상이 여름철마다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녹조가 줄어드는 가을, 겨울에도 영주댐 인근에서는 조류경보제상 관심 단계에 해당될 정도로 많은 남조류 개체 수가 관찰됐다. 남조류 개체 수가 수십만개에 달하고, 겨울철까지도 조류경보제상 관심 기준을 넘어설 정도로 증가하는 현상은 녹조라떼로 유명한 낙동강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환경부는 4대강 보를 존치하고, 자연성 회복 방침을 폐기한 것에 이어 내성천에서도 정치적·비과학적인 결론을 내렸다. 지난 8월22일 환경부는 극심한 수질 악화와 예산 낭비에도 불구하고, 영주댐 준공 승인을 내줬다. 유치원생도 당연하게 여기는 ‘강은 바다로 흘러가야 한다’는 진리에 눈을 감고 있는 이들이 물 관리를 맡고 있음이 다시 한번 드러난 순간이었다.
영주댐 준공 승인 당일에도 녹조가 번무해 있던 내성천 모습은 4대강 보와 댐을 유지하려는 이들이 끼친 해악을 말없이 호소한다. 환경부를 포함한 정부, 여당과 양심을 버린 과학자, 언론 모두가 4대강과 내성천 죽이기의 공동 정범임을 말이다.
김기범 정책사회부 차장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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