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배려와 배제 사이
비 오는 날, 남대문이 있는 회현역에서 서울시청역까지 걸었다. 빗물에 쓸려 넘어질까 위태로운 내 처지를 닮은 목발의 고삐를 쥐는 것만으로 양손이 꽉 찼다. 어느 신호등 앞에 선 순간, 목발과 나의 처절한 관계를 비집고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까지 가세요? 우산 씌워드릴까요?”
민폐일까 죄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고, 상대는 용기 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신호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그 횡단보도 앞에 녹색불이 켜지는 순간까지 함께 머물렀고, 이내 그는 나와 방향이 맞지 않아 각자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흩어졌다. 헤어진 뒤로 잠깐 비를 더 맞기는 했지만, 우산 그늘 아래서 만끽한 휴식시간 덕분에 목발도 나도 다시는 위태롭지 않았다.
며칠 뒤 <장애시민 불복종> 북토크를 진행하는 서점에서 한 시민이 물었다. 평소 장애인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혹여나 나의 친절이 동정으로 오해될까 두렵다 걱정했다. 그의 질문 앞에 나는 비 오는 날 우산을 함께 쓴 인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이름 모를 장애 시민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게 배려의 마음으로 비추어질까 배제의 동정으로 비추어질까 걱정하는 것은 숱한 비장애 시민이 고민하는 물음이다.
나는 그 질문에 나를 떠올리며 답했다. 기꺼이 곁을 주시라고. 낯선 타인의 어려움에 동하는 마음은 언제나 좋은 것이기에 숨기거나 부정할 필요 없다고. 그중에서도 가장 나은 접근 방법은 행동을 실천하기 전, 마음을 담은 질문이 먼저 오가면 더없이 좋을 것이라 말했다.
배려와 배제는 묘하게도 닮은 구석이 있다. 타인의 취약함을 마주할 때 떠오르는 동기라는 점은 비슷하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다. 나란히 서 기꺼이 물어볼 용기는 배려의 온기가, 틈을 주지 않는 냉소는 배제의 냉기가 된다. 배려의 온기는 이웃이 머무를 구들방을 덥히는 연료로 쓰이지만, 배제의 냉기는 고독한 서리 요새를 구축하고야 만다.
질문 사이에 배려와 배제의 강이 흐른다. 머뭇거림 끝에 기어코 얼굴을 마주 보며 물어보고야 마는 단호한 질문은 타인에 대한 배려로 이어지고, 질문 없이 이루어지는 구별 짓기 행동은 타인에 대한 배제가 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저마다 배려하는 방법은 따로 있지 않고 모든 것은 용기 있게 마주 섬으로써 시작되는 망설이는 질문으로부터 비롯된다.
물으며 살아가자. 물으며 사랑하자. 낯선 이를 마주할 때 피어나는 마음속 망설임이 따돌림의 결과를 낳고 말 의무의 강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질문하기에 마음을 두자. 마주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건, 배려한다는 건 직접 묻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비 맞는 이에게 우산을 씌워줄지 당연하게 물었던 감사한 그 인연처럼.
불확실한 타인에 대해 망설임을 안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낯선 존재를 배제하고 속단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길 꿈꾼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여성과 남성, 노인과 어린이,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 무수히 흐르는 긴장 속에서 서로의 필요를 묻는 질문이 약한 우리를 단단하게 이어주길 바라며.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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