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차세대 배터리가 승패 결정···소재 기술력 높이고 전기차 수요 키워야”

김능현 논설위원 2023. 10. 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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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한국전지학회 회장
2030년까지 글로벌 배터리 시장 3배 이상 급성장
리튬이온배터리 에너지밀도 30년간 2배 증가 그쳐
밀도 높이고 소재 원가 낮추는 차세대 배터리가 관건
美·한중일 각축전, 규제 혁파·초격차 기술이 승부수
[서울경제]

주요국들이 2차전지(배터리) 공급망 확보와 차세대 배터리 기술 선점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미국·유럽 등은 중국 중심의 공급망에서 벗어나 자국에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 지급 등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주요 배터리 기업들은 에너지밀도와 안정성이 높은 전고체 배터리나 가격 경쟁력이 좋은 소듐이온 배터리 등을 생산하기 위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성수 한국전지학회 회장은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리튬이온 배터리의 에너지밀도 확대가 한계에 이른 만큼 차세대 배터리 상용화의 성공 여부가 미래 시장에서 승패를 가를 것”이라며 “기업들이 연구개발(R&D)과 시설 확대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배터리 수요를 확대하는 한편 배터리 소재 생산을 해외에 빼앗기지 않도록 투자 유인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배터리 산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주로 휴대용 전자기기에만 활용되던 리튬 배터리의 적용 분야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기후 변화로 탄소 배출 감축 압박이 커지는 가운데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전기차 붐을 촉발시키면서 시장 규모가 커졌다. 올해 약 160조 원으로 추정되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 규모가 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2025년에는 270조 원, 2030년에는 53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 세계에서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수많은 스타트업이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리튬 배터리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군사 목적으로 개발된 후 민간에 확산돼 스마트 기기,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등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앞으로는 드론·로봇·개인이동장치 등에서 엄청난 수요가 발생할 것이다.

-배터리 시장을 놓고 한국·중국·일본의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다.

△현재는 한중일이 배터리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생산 원가에서 공정의 비중이 큰 반도체와 다르게 배터리는 소재의 비중이 높다. 소재가 전체 원가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배터리 원가에서 공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만 섬세한 작업이 요구되는 부분이 있다. 젓가락 문화를 가진 3개국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3분하는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주요국들이 배터리 공급망 확보를 위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약 7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최대 생산국이다. 중국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2025년까지 생산량을 현재의 2배로 늘리고 2030년까지 세계 시장점유율을 8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은 최근 전기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2025년까지 배터리 생산량을 현재의 10배로 늘리고 2030년까지 세계 시장점유율을 30%까지 확대하는 한편 신차의 50%를 전기차로 판매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미중 패권 경쟁 차원에서 중국 의존도가 큰 배터리 공급망을 자국과 동맹국 위주로 재편하려는 것이다. 유럽연합(EU) 역시 2021년 7월 ‘리튬 이니셔티브’를 발표하고 2025년까지 배터리 생산량을 현재의 2배로 늘리고 2030년까지 세계 시장점유율을 2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EU는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리튬·코발트·니켈 등의 생산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은 어떤 수준인가.

△기술력을 보면 한국과 일본이 유사한 수준이고 중국은 5년 정도 뒤처진 것으로 본다. 다만 일본은 연구개발부터 인프라 조성까지 축적된 기술력과 연구진이 우리보다 두텁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자원이 풍부한 중국은 국가 주도로 막대한 연구비와 연구 인력을 투입하면서 기술 격차를 급속히 좁히고 있다. 우리나라는 점유율 2~3위권을 차지하는 주요 생산국이고 핵심 소재인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액·전지셀·전지팩 등 모든 밸류체인에서 고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최근 차세대 배터리가 주목받고 있는데.

△리튬이온 배터리가 처음 상용화된 1990년대 초 에너지밀도는 100~120 Wh/㎏ 정도였다. 지금은 200~250 Wh/㎏까지 늘었다. 30년 동안 주요 기업들이 에너지밀도를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지만 겨우 2배 늘리는 데 그친 것이다. 집적도가 매년 2배 늘어나는 반도체와 달리 배터리의 에너지밀도 증가는 소재의 변화가 없는 한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에너지밀도를 더 높이기 위해 신소재를 사용하거나 획기적인 기술을 적용한 다른 차원의 배터리를 개발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결국 더 높은 에너지밀도와 충전 속도·안정성 등을 확보한 고품질의 배터리를 개발하거나 에너지밀도는 높지 않더라도 희귀 광물을 사용하지 않는 낮은 가격의 배터리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는 기업이 배터리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차세대 배터리 개발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가.

△2차전지 시장의 주류인 리튬이온 배터리는 에너지밀도가 낮고 충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의 단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약점을 개선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대안이 전고체 배터리다.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액을 액체가 아닌 고체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에너지밀도가 높고 충전 시간이 짧으며 안전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리튬황 배터리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소재의 고도화다. 리튬·니켈·코발트·망간 등 원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한 기술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비싼 리튬을 대체하는 저가의 소재 개발이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게 쇼듐을 이용한 소듐이온 배터리 등이다. 에너지밀도를 높이거나 소재 원가를 낮추는 방향으로 연구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또 하나는 배터리 재활용 기술이다. 사용 후 배터리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데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재활용 기술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배터리 업체들이 인재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배터리 3사를 중심으로 국내외 인재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현재 정부가 대학과 연계해 배터리 관련 인력 양성 사업을 5개 권역별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주로 석·박사 과정 위주이고 학부생은 여전히 부족하다. 다행히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 배터리 분야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배터리 산업의 승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에너지밀도가 높은 차세대 배터리를 누가 먼저 개발해 상용화하는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배터리 수요가 가장 많은 곳이 전기차인데 여전히 느린 충전 속도와 주행거리가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핵심 원료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는지도 중요하다. 배터리 성능과 가격은 핵심 소재인 리튬·니켈·코발트·망간·탄소 등이 결정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원료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만큼 중국 이외에 인도네시아·아르헨티나 등에서 자원 개발에 적극 나서고 핵심 소재의 국내 생산 확대를 통해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또 전기차 이외에 ESS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는 배터리 개발에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중국·EU 등 주요국들과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국제표준화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배터리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정부가 어떤 부분 지원에 집중해야 하는가.

△우선 배터리 수요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수요가 늘어나야 거기서 올리는 매출로 기업들이 투자와 연구개발에 매진할 수 있다. 중국은 전기차와 전기 자전거 등에 대해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부어 배터리 산업을 단기간에 키웠다. 우리나라는 최근 전기차 수요가 주춤하면서 정부가 보조금 인센티브 제도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기차 등 배터리 수요를 계속 키워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확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재 경쟁력도 높여야 한다. 배터리는 양극재·음극재·분리막 등 소재 의존성이 높은데 다행히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한국에서 생산된 소재를 사용해도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배터리 조립 공장은 미국에 짓더라도 소재만큼은 국내에서 생산하도록 해야 공급망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다. 또 일본은 100년 넘은 소재 기업이 즐비한 반면 우리는 소재 기술 개발에 나선 지 20~30년에 불과하다. 일본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소재 분야 기술 개발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정부도 ‘K-배터리 발전 전략’을 발표하고 배터리 분야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있는데.

△정부도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규제 완화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특히 앞으로 폐배터리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배터리 재활용 및 재사용과 관련한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재활용은 배터리를 분해해 니켈·리튬 등 소재를 추출한 뒤 새 배터리 소재로 활용하는 것이며 재사용은 배터리를 분해하지 않고 ESS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이와 관련된 환경·안전 법규를 하루빨리 정비하고 과도한 규제를 과감히 완화하거나 없애야 한다.

◆He is···

1968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고려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뒤 도쿄공업대 화학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SDI에서 종합연구소 주임연구원과 중앙연구소 수석연구원을 지낸 뒤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로 임용됐다. 기업과 학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2차전지 전극 재료 분야 연구를 주로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한국전지학회장을 맡고 있다.

김능현 논설위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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