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와 숙녀’ 박인환은 역사·현실 의식 강한 시인이었죠”

강성만 2023. 10. 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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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박인환 전집 5권 완간 안양대 맹문재 교수

안양대 국문과 교수인 맹문재(60·사진) 시인은 이른바 참여시인이다.

그는 20대 후반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기 앞서 포스코에서 7년 동안 철판을 옮기고 뒤틀린 것을 바로잡는 노동을 했다. 1991년 시인으로 등단해 전태일문학상(1993)과 윤상원문학상(1996)을 받았다. 농부이자 광부의 아들인 그는 3년 전에는 광산촌을 다룬 시를 한데 모아 사북항쟁 40주년 기념시집 ‘사북 골목에서’를 펴냈다.

그가 간행을 주도하는 ‘푸른사상 시선’은 그간 181권을 냈는데 선정 시인 다수가 노동자이다. 2019년에는 민족문학연구회 창립을 이끌어 그간 220여명 회원과 친일문학상 폐지운동도 해왔다.

한국작가회의 기관지 ‘내일을 여는 작가’ 편집위원장도 맡고 있는 그가 최근, 지난 15년 이상 열정을 들인 과업 하나를 마무리했다.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과 같은 시로 한국인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시인 박인환(1926~56) 전집(푸른사상, 전 5권)을 마무리한 것이다.

지난 6일 서울 충무로역 근처 푸른사상 사무실에서 맹 교수를 만나 참여 문학자인 그가 어떻게 언어나 형식, 이미지를 중시하는 모더니즘 계열 시인 박인환에게 빠졌는지 사연을 들었다.

박인환 전집 5권 표지에 만 서른에 별세한 시인의 각기 다른 모습이 보인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로 시작하는 ‘목마와 숙녀’는 1970~80년대 신곡 테이프의 감초였다. 가수 박인희가 낭송한 이 시는 테이프의 마지막 트랙에 의무적으로 ‘건전 가요’를 1곡씩 끼워 넣어야 하는 군부독재의 음악통제 정책을 채우는 역할을 했다. 그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박인환을 두고 해방 뒤 모더니즘 문학 운동을 했고 한국전쟁 뒤에는 ‘목마와 숙녀’ 등 감상적인 시풍으로 도시문명의 우울과 불안을 노래한 시를 썼으며 서른에 심장마비로 별세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2008년 실천문학사에서 단행본 ‘박인환 전집’을 낸 맹 교수는 그 뒤로도 꾸준히 박인환 작품 발굴에 나서 2019년부터 매년 1권씩 번역, 시, 영화평론, 평론, 산문을 엮어 모두 5권의 전집을 완성했다. 1956년 ‘국도신문’에 발표한 시 ‘대하’를 비롯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50편 이상의 박인환 글을 새로 찾아 전집에 담았다. “전집에 실린 영화 관련 글 60편 중 대다수가 알려지지 않은 글입니다. 1954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만든 박인환의 영화에 대한 애정과 식견이 느껴지는 글들이죠. 박인환은 ‘그들은 왜 밀항하였나?’(1952)라는 글에서 전쟁 중 촬영한 필름을 가지고 현상, 편집을 위해 일본에 밀항한 한국 영화인을 감쌌어요. 한국에선 현상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서 당시 외교 관계가 단절된 나라로 몰래 가 영화를 만들려고 한 의지를 높이 산 거죠.”

그는 이번 전집을 위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마이크로필름이나 한국전쟁 때 나온 신문 축쇄판과 각종 잡지를 넘기며 글을 찾았고 오랜 시간 박인환 글을 발굴해온 문승묵 선생의 자료도 건네받아 활용했다.

그런데 왜 박인환일까? “제가 15년 전 실천문학사에서 전집을 내기 전만 해도 박인환은 문학계에서 ‘명동의 댄디보이’ 정도 취급을 받았어요. 현실 의식은 없고 겉멋만 들었다는 거죠.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보는 연구자는 없어요. 오히려 박인환의 역사의식을 구체적으로 파고드는 논문들이 나오고 있죠.”

그는 박인환 시 폄하에는 김수영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김수영은 박인환이 타계하고 10년쯤 지나 ‘그(박인환)를 요절한 천재라고들 하지만 시인으로서 소양이 없고 경박하고 유행 숭배자다’라고 평했어요. 이런 평가는 문학계에서 김수영의 위상이 올라갈수록 힘을 얻었죠.”

시·번역·영화평론·산문 등 나눠
2008년 단행본 첫 전집 내고 15년만
“박인환은 투철한 현실 인식 토대로
언어나 이미지 관심 가진 모더니스트
전집 나온 뒤 ‘댄디보이’ 취급 안 해”

2015년엔 김남주 산문전집도 출간
“통일 시인 이기형 전집도 생각 중”

그가 보기에 박인환은 “현실과 역사의식이 강한 모더니즘 시인”이다. 그 예로 시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1948)를 들었다. “미군정 때 쓴 시인데요. 2차 대전 뒤 영국이나 프랑스, 네덜란드 등 제국주의 국가들이 전쟁 때 일본에 빼앗긴 동남아 옛 식민지들을 다시 차지하려고 했잖아요. 그러한 상황을 보면서 박인환이 네덜란드에 대한 인도네시아 인민들의 저항을 촉구한 시입니다. 이 시는 해방 직후 소련과 미국이 점령한 조선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해요. 진정한 민족국가를 건설하려면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거죠.” 이런 설명도 덧붙였다. “해방 정국 때 사회주의 계열 문인들은 정치 운동이나 계급 투쟁에 관심이 많았지만, 박인환 같은 모더니스트들은 철저한 현실 인식에 기반하면서도 언어나 형식 등에 관심을 보였지요. 그런데 70년대 이후 한국 문단에서 리얼리즘이 대세가 되면서 모더니즘을 리얼리즘과 대립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때부터 박인환은 한국 시단의 주류에서 밀려나게 되었죠.”

신문에 발표한 박인환의 1차 전향서.
박인환은 단독으로 2차 전향서까지 신문에 냈다.

해방 직후 진보 문인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에 한때 가입했던 박인환은 1949년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고 한국전쟁 전에 두 차례나 신문에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탈퇴했다는 (전향)성명서를 냈다. “박인환은 해방 이후 김수영 시인까지 끌어들이며 조직적으로 모더니즘 문학 운동을 펼쳤어요. 그러다 한국전쟁의 참상으로 인한 충격으로 허무와 절망, 폐허의 감상을 나타낸 시를 많이 쓰게 됩니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회피한 것이 아니라 휴머니즘을 추구하며 항거한 것이지요.” 맹 교수는 박인환이 한국전쟁 때 수만 명의 학살 피해자를 낸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냐는 물음에는 “확실한 자료는 없지만 그랬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답했다.

그는 앞서 2009년에는 한국 근대의 첫 여성 소설가인 김명순의 희곡과 시 전집을 처음 냈고, 2015년에는 민중시인 김남주의 산문 전집도 첫 출간했다. “김명순은 여성에 대한 자의식을 토대로 남녀평등을 추구했고 더 나아가 민족해방 의식을 보여준 작가이죠.” ‘김남주 산문전집’은 그가 외국 대학에서의 연구년 계획을 포기하고 꼬박 1년을 공들인 노고의 결실이었다. “김남주 시인의 부인(박광숙)께서 산문 전집을 내겠다며 저에게 작업을 제안했어요. 제가 사모님께 진 빚이 있어 받아들였죠.” 그가 말한 빚이란 “김남주 시인이 암 투병 때 간병을 돕겠다고 사모님께 약속했는데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소외된 작가의 글을 정확히 정리하는 일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한국 문학의 기초 연구를 위해서다. “김규동 시인의 작품을 많이 모았어요. 평생 통일을 노래한 이기형 시인 전집도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통일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에 두 분의 시는 통일의 필요성을 일러주지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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