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뛰는 유가에 인플레 불안… 韓경제 ‘상저하고’ 유탄 맞나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

이도형 2023. 10. 9. 18:3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동 악재에 세계 경제 ‘안갯속’
WTI 가격 하락 국면서 상승 전환
‘안전자산’ 금·달러화는 동반 강세
韓, 내수 부진 와중 경기 ‘비상등’
“이·팔 非산유국… 단기 영향” 전망
사태 장기화 땐 ‘오일 쇼크’ 우려
세계박람회 유치 중동변수 급부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번 중동발 지정학적 위험 증대로 국제유가 급등 등 세계 경제 및 국제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질 우려가 있어 이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9일 국제금융센터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에 대해 “어떻게 전개될지 매우 유동적인 상황”이라면서 이같이 분석했다. 이·하마스 충돌은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금융시장 특성상 악재일 수밖에 없다. 관건은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느냐다. 중동정세 불안정성 확대로 인한 고(高)유가 장기화는 정부의 국내 경제 ‘상저하고’(상반기 부진, 하반기 반등) 전망을 불투명하게 할 수 있다.
가자지구는 아비규환 9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지구 소방대원과 주민들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린 부상자 등을 구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 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가자지구의 500개 이상 목표물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AFP·연합뉴스
◆진정 국면이던 유가, 충돌에 ↑

이·하마스 사태는 일단 세계 경제에 국제유가 상승이라는 충격을 줬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9일(한국시간) 오후 2시20분 기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4% 상승한 배럴당 86.08달러에 거래됐다. WTI 가격은 최근 일주일 사이에만 9% 가까이 내리며 급속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요동치는 중동 정세가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꿨다.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도 전 거래일보다 3.7% 오른 배럴당 87.68달러에 거래됐다.

유가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변동에 큰 영향을 끼치는 지표다. 다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산유국은 아니라는 점에서 단기간 분쟁에 그칠 경우 유가 상승압력은 더뎌질 수 있다.

관건은 장기화 여부다. 이·하마스 사태가 장기화하거나 이란·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산유국들이 분쟁에 개입할 경우 유가를 자극, ‘100달러’ 선을 다시 위협할 수도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사우디와 러시아의 감산으로 글로벌 원유수급이 타이트하고 미국 전략 비축유가 40년래 최저 수준인 상황에서 중동발 공급충격이 가세하면 최근의 국제유가 강세 기조가 더욱 강화될 소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태가 유대교 명절을 틈탄 아랍 측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1973년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과 닮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욤 키푸르 전쟁이 제1차 오일쇼크를 불러왔듯이 이번 사태가 유가 급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세계 경제 부담”…‘상저하고’ 불투명

시장 불안 심리로 자금은 급속히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이날 금 현물 가격은 온스(1온스=31.1g)당 전 거래일 대비 19.67달러(1.07%) 오른 1852.68달러에 마감했다. 안전자산 선호심리 강화는 국내 금융시장에서 주가 하락,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전문가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에너지 가격 상승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계 경제는 매우 큰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오는 19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로서는 변수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험, 급증하는 가계부채 등을 고려할 때 금리 인상을 쉽게 결정하긴 어렵지만, 거듭된 물가 상승압력은 한은의 고심을 깊게 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경기가 워낙 안 좋으니까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정부가 고수해온 ‘상저하고’ 경기전망의 달성 가능성은 더욱 어려워진다. 유가 급등이 유발한 고물가로 인한 내수 부진에 더해 역대급 세수 감소와 한·미 기준금리 차로 재정·통화정책의 여력마저 고갈된 상황이다. 수출 회복 동력으로 꼽혔던 중국 경제는 부동산 디폴트 위기를 거치며 오히려 중장기적인 위험 요인이 됐다. 그나마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생산이 회복을 시작한 것이 희망적이다. 8월 반도체 생산은 13.4% 늘었고, 9월 반도체 수출은 올해 최저 수준의 감소율(-13.6%)을 기록했다.

이스라엘 현지에 있는 국내 기업들은 사태를 주시하며 대응에 나섰다. 현지에 진출한 삼성전자·LG전자 등은 현지 직원의 안전을 위해 재택근무로 전환하고 현지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피해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리점 전시장이나 차량 파손 등은 아직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충돌로 중동 지역 정세가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2030 세계박람회’ 개최지를 두고 한국과 경쟁하는 사우디의 행보도 주목할 요소다. 사우디가 이번 무력 충돌에 어떤 입장을 밝히느냐에 따라 11월 예정된 개최지 선정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도형·서필웅·김범수 기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