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하마스, 두 극단 세력이 빚어낸 비극…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 몫
하마스는 폭정과 경제난으로 민심 잃어
이번 충돌로 내부 결집 등 이득 취해
무고한 시민들은 납치·살해 시달려
이스라엘 극우 정부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사이에 벌어진 참혹한 전쟁은 ‘적대적 공생관계’인 두 극단 세력이 각자의 입지 강화를 위해 켜켜이 쌓아 올린 갈등의 결과물이다. 각종 논란과 실정으로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하마스 모두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내부 결집을 도모하는 등 오히려 이득을 취하게 될 것이란 주장이 제기된다. 이로 인한 정치적 대가는 모두 무고한 시민들의 피로써 치러지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당국은 8일 밤(현지시간) 하마스 공격으로 지금까지 약 7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남부 레임 키부츠 음악 축제 행사장 주변에선 무려 260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스라엘 보복 공습을 받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도 413명이 숨졌다. 양측 사망자를 합하면 1100명이 넘는다. 부상자도 이스라엘에서 2100명, 가자지구에서 2300명으로 각각 집계됐다.
피란민도 속출하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8일 오후 9시 기준 팔레스타인인 12만3538명이 피란 행렬에 올랐다”고 밝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처참한 현장 영상과 사진이 게재되고 있다. 하마스 대원이 납치한 이스라엘인들이 가자지구 시가지에서 알몸으로 강제 행진을 하고, 이들을 향해 사람들이 침을 뱉는 등 잔혹한 장면이 다수 노출됐다. 뉴욕타임스(NYT)는 “폭력적이고 노골적인 이미지가 SNS 플랫폼에 범람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팔레스타인 측 SNS 계정에도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일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상으로 올라오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측이 9일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하겠다고 밝히면서 “전기도, 식량도, 연료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닫힐 것”이라고 선포함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대의 지붕 없는 감옥’이라고 불리며 빈곤에 허덕여온 230만명의 가자지구 주민들은 더 큰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최근 눈에 띄게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한 이스라엘 극우 내각과 하마스가 결국 갈등 임계치를 넘었고,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 몫이 됐다고 지적했다. 우선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12월 재집권한 뒤 유엔 등 국제사회 비판에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촌 확대를 강행해 팔레스타인의 반발을 자초했다. 대표적인 극우 인사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올해에만 세 차례 이슬람 3대 성지로 꼽히는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해 팔레스타인 사회를 도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도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하마스의 치명적인 공격으로 우리는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며 “하마스를 파괴하기 위해 이스라엘군은 모든 물리력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 등 가자지구 무장 세력을 향해 재차 전쟁을 선포한 발언이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유린은 이스라엘에 크나큰 비극으로 남게 되겠지만, 네타냐후 정부에는 오히려 정치적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앞서 네타냐후 정부는 사법부 무력화 시도로 격렬한 시위와 야권의 반발, 지지율 하락에 직면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에서만 7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온 안보 위기가 발생하자 수년간 네타냐후 총리와 손을 잡지 않겠다고 공언하던 야권의 정적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전시 비상정부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며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냉각된 미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는 사법부 무력화 입법, 요르단강 서안 유대인 정착촌 확장 등을 강행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하마스의 공격 직후 이스라엘에 전폭적인 지원을 거듭 약속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중동정책센터 책임자 나탄 삭스은 뉴욕타임스(NYT)에 “네타냐후 총리가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룰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졌다”고 진단했다.
하마스도 이스라엘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지난 8월 가자지구에선 이례적인 하마스 규탄 시위가 열렸다. 하마스는 당시 “이스라엘 협력자들이 조직한 시위”라면서 목소리를 틀어막았지만, 최악의 경제난과 에너지 부족으로 고통받던 주민들이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장과 집권 여당 파타가 무능으로 민심을 잃은 사이 입지를 다졌지만, 45%에 이르는 실업률을 해결하지 못하는 등 대안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탓이 컸다.
하마스의 폭정도 시위를 촉발한 원인으로 꼽혔다. NYT는 “하마스 고위 인사들의 족벌주의와 부패가 심하다”며 “인프라 구축 대신 군사 작전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가자지구 밖에 있는 안전가옥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주민들이 배신감을 느꼈다는 분석도 있다.
게다가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의 가장 큰 지원자였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수교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중동 데탕트’ 분위기가 일고 있는 것도 하마스의 입지를 약화할 수 있는 요인이었다. 결국 하마스는 이스라엘 타격으로 분위기 전환에 나섰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가자지구 내에서조차 하마스의 공격에 충격을 드러내는 반응들이 나왔다. 이스라엘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전쟁을 선포했지만,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지난 70년 동안 매일이 “전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NYT가 이날 홈페이지에 게재한 영상에서 인터뷰에 응한 가자지구 주민들은 기쁨과 환호보다 착잡하고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번 공격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은 “가자지구의 많은 사람은 끊임없는 봉쇄와 반복되는 전쟁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며 “희망 없는 삶에서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내몰리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번 전쟁이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 더 나아가 아랍계 무슬림과 비무슬림 사이의 반목과 증오를 더욱 부채질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동 매체 미들이스트아이는 극우 유대인 민병대가 활개 칠 움직임이 보이면서 이스라엘 내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과 뉴욕 등에서는 하마스 지지 시위가 잇따르자 유대교 공동체들에 대한 주변 경계가 강화됐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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