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는 아이언돔이 다 막는다”...이 착각에 50년전과 똑같이 당했다
작전 조율하려면 수개월 작업 소요
이스라엘, 수많은 정보 속 ‘결정적’ 신호 놓쳐
”바늘 더미 속에서 치명적인 바늘 찾기”
7일 가자 지구(Gaza Strip)의 팔레스타인 무장 테러집단인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오전6시30분 시작한 공격에서 초기에 2200 발 이상의 로켓을 쏟아부었고, 비록 육지와 해상, 공중에서 이스라엘 영토로 쳐들어갔다.
하마스의 불도저는 이스라엘군이 2년 전에 완성한 6m 높이의 철제 콘크리트 벽을 무너뜨렸고, 수백 명의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모터사이클, 픽업 트럭과 패러글라이더를 이용해 이 벽을 넘어서 진격했다. 하마스는 해상에서도 보트로 이스라엘 영토로 침투했다.
9일 이스라엘방위군(IDF) 대변인은 “하마스 세력을 격퇴하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걸려 최소 7~8개 마을에서 전투가 전개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마스의 이번 공격은 꼭 50년 전인 1973년 10월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유대교의 속죄일(贖罪日)인 ‘욤 키푸르’를 맞아 시나이 반도 남쪽과 골란 고원에서 동시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한 욤 키푸르 전쟁(10월 전쟁) 발발 50주년이라는 극적인 효과도 노렸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궁금증은 모사드(해외 첩보기관)와 아만(이스라엘 군 정보기관), 총리 직할의 총보안국인 샤바크(신베트) 등 세계 최고의 첩보 능력을 갖췄다는 이스라엘의 정보기관들이 어떻게 이렇게 허를 찔릴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영토와 가자 지구의 경계선 65㎞에 세워진 높이 6m의 벽만 해도, 이스라엘 정부가 14만 톤 분량의 철을 투입해서 3년 반 만에 완공한 것이다.
2021년 12월 이 벽의 완공을 설치하면서, 이스라엘 정부는 이 벽을 팔레스타인 테러집단과 이스라엘 남부 주민을 가르는 ‘아이언 벽(iron wall)’이라고 했다. 이 벽에는 감시 카메라와 레이더 장치, 각종 센서가 부착돼 있어서 ‘스마트 펜스(smart fence)’ ‘스마트 월’이라고 불렸다.
이스라엘 정보 당국은 또 하마스에 수많은 정보원을 심어 놓고 전통적으로 인적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물론, 서울의 절반을 웃도는 가자 지구(365㎢)를 위성으로 감시하고 요주의 인물은 얼굴 인식 프로그램과 폰ㆍ컴퓨터의 스파이웨어를 통해 계속 모니터하며 통신 내용을 해킹한다. 한마디로, 가자를 다중(多重) 감시하고 있다.
반면에, 하마스의 이번 공격과 같은 것은 결코 하룻밤에 후다닥 계획이 수립돼 집행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수천 발의 카삼 로켓을 제조하고 미사일과 육지, 해상 공격을 이렇게 고도(高度)로 조율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이 개입되고 수 개월의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기간에, 이스라엘 정보기관에도 하마스에 대한 수많은 ‘공격 정보’가 쌓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6개월간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은 하마스와 상당한 규모의 무력 분쟁이 발생해 확전(擴戰)될 수 있다는 경고를 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들 기관은 수많은 ‘잡음(雜音)’ 속에서 분명한 ‘신호’를 포착하는데는 실패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전(前) 국가안보부(副)보좌관이었던 척 프레일리치는 “돌이켜 보면 늘 정보는 있었다”며 “모든 정보 참사(慘事)는 충분히 그 정보를 고려하지 못하고 잘못 읽어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같은 안보 환경에 있는 나라에선 마치 소방 호스에서 뿜어내는 것과 같은 방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선별해 해석하는 작업이 오히려 더 큰 도전이라는 것이다.
미 국가안보국의 전(前)요원 제이크 윌리엄스는 미 매체 와이어드(Wired)에 “이스라엘에게는 ‘건초 더미 속에서 바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바늘 더미 속에서 진짜 치명적인 바늘을 찾아내는 것이 도전”이라고 말했다. 지나친 감시 정보량이 오히려 하마스의 공격을 막지 못하는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지난달 안보 브리핑에서 가자 지구를 “안정적인 불안정성(stable instability)”이라고 특징지었다. 실제로 하마스는 그간 수십, 수백 발의 로켓 공격이 이스라엘의 방공(防空)시스템인 ‘아이언 돔(Iron Dome)’에 막히고 이스라엘의 막대한 보복 공격을 받은 뒤 최근 수 개월 간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삼갔다.
하마스는 가자와 이집트 사이 국경 땅 속에 미로(迷路)와 같은 땅굴을 뚫고 드론이나 로켓 제조에 필요한 재료를 몰래 들여왔다. 그러나 그동안 이렇게 제조해 발사한 하마스의 로켓들은 아이언 돔에 무력화(無力化)됐다.
이스라엘 군과 정보기관들은 따라서 하마스를 ‘통제 가능한’ 적으로 간주했고, 이스라엘에 대한 최대 위협 세력으로 남쪽의 하마스가 아니라, 북쪽 레바논의 무장 정파(政派)로서 이란의 직접적인 조종을 받는 헤즈볼라(’알라의 당’이란 뜻)에 주목했다. 9ㆍ11테러 이후에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국무부 부(副)장관인 리처드 아미티지가 “알 카에다가 테러리스트 B팀이라면, 헤즈볼라는 A팀”이라고 했던 그 헤즈볼라였다.
이스라엘 군이 봤을 때에, 국경을 뚫고 육ㆍ해ㆍ공 다양한 루트로 전면 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주변 적대 세력은 헤즈볼라였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2006년 7월부터 유엔이 휴전 중재하기까지 34일 간 전쟁을 치렀고,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로 진격했다.
레바논과 이스라엘에서 각각 1200~1300명과 165명이 사망했고, 100만 명과 30만~50만 명의 난민이 양측에서 발생했다.
50년 전 욤 키푸르 전쟁을 앞두고,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이집트는 제공권(制空權)을 확보하지 못해 결코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오판했다. 그리고 이집트와 시리아로부터 기습 공격을 받아 큰 곤욕을 치렀다.
반 세기 후에, 이스라엘 정보기관에서 하마스가 7일 보여준 것과 같은 전면적인 공격 능력을 갖출 수 있으리라고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스라엘 언론이 ‘2차 욤 키푸르’라고 부르는 이번 전쟁은 이렇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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