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7조 수상한 외화송금' 철퇴 벼르더니···변죽만 울린 금감원
11개 지점 외환업무 정지 통보
사실상 체면치레 수준 징계 그쳐
李 금감원장 취임 후 검사 급증
무리한 금융사 징계 추진 논란
은행권의 17조 원 규모 ‘불법 외환 송금’ 사건이 사실상 ‘경징계’로 가닥이 잡혔다. 금감원은 지난해 7월부터 6차례나 보도 자료를 배포하고 이례적으로 연루된 은행의 실명을 공개하며 중징계 방침을 굽히지 않았지만 실제 은행권에 통보한 제재는 6억 원대의 과징금과 11개 지점의 영업정지 처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서울경제신문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17조 원 규모 이상 외화 송금 제재안에 따르면 당시 은행권에서 이상 외화 송금 규모가 가장 컸던 4개 은행이 받은 제재는 6억 6100만 원 상당의 과징금과 11개 지점 외국환업무 2~3개월 정지 처분에 그쳤다. 분류는 중징계에 해당했지만 은행권에서는 ‘체면치레’ 수준의 징계라고 해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4대 은행의 국내 지점 수가 2459개임을 고려하면 영업정지를 당한 지점 비율은 0.45%에 불과하고 과징금 역시 금감원이 발표한 4개 은행 이상 외화 송금 규모(약 7조 8000억 원)의 0.008% 수준이다. 금감원이 검사에 최초로 착수했을 당시 연루됐던 지점이 우리·신한은행 2곳에서만 16개였음을 고려하면 실제 징계 대상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금융 업계의 한 관계자는 “법인 대상 과징금, 지점의 외국환 업무 일정 기간 정지는 은행에 대한 실질적인 중징계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이 사건 초기부터 확인되지 않은 사안을 두고 무리하게 판을 벌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은 지난해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외환 송금이 대부분 가상자산거래소를 거친 자금으로 국내 가상자산 시세가 해외보다 비싼 ‘김치 프리미엄’ 차익을 노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연루 혐의를 받는 은행들의 실명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제재 배경은 인보이스(송장) 서명 확인 의무 소홀과 같은 서류의 형식상 하자를 드는 데 그쳤다. 가장 높은 수위의 처벌을 받은 B 은행의 경우 증빙서류 확인의무·서류 보관 소홀이 제재 원인이었다.
금감원은 “본점이든 임원이든 포함되는 고위 임원에 대해 엄중 조치하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은행권에서는 애초에 이상 외화 송금을 실행한 업체가 아닌 이를 중개한 은행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국제상공회의소의 UCP600(신용장통일규칙)에 따라 인보이스에는 서명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며 “금융위원회에 관련해 소명 중”이라고 말했다. 또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처럼 내부 통제 소홀은 최고경영자(CEO) 제재로 결론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건에서는 개인에 대한 신분 제재가 전무했다. 윤 의원은 “이상 외화 송금에 대한 금감원의 정의도 없는 상황에서 은행 실명을 적시한 자료를 공개한 것은 피의사실 공표가 의심될 만한 상황”이라며 “일반투자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라도 검사로 확인되지 않는 사안의 공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복현 금감원장 취임 이후 금감원이 실적 압박에 무리하게 ‘검사권’을 휘두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이 원장이 취임한 2022년 금감원의 금융사에 대한 검사 횟수는 총 579건으로 사모펀드 사태가 터졌던 2020년(631건) 이후 최다를 기록했다. 올해 총 검사 목표치는 602건인 가운데 보험과 금융투자업권은 올 상반기에 이미 연 목표치를 각각 84.7%, 93.1% 채운 상황이다. 현장 특별검사 기간은 2022년 평균 8.8일로 2020년 7.1일 대비 늘었고 은행·증권사 검사는 투입 인원도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감독과 집행은 예술이라고 할 정도로 종합적이고 정교해야 한다”며 “피검사기관의 피로도도 감안하고 효율과 효과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동희 기자 dwise@sedaily.com조윤진 기자 jo@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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