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중재자’ 자처하던 中도 곤혹... “이·팔, 상황 악화 말아달라”
‘중동의 중재자’를 자처해온 중국은 지난 7일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 세력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중동 영향력 확대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란과의 긴장 완화를 모색해온 미국의 ‘중동 구상’도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 3월 사우디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며 중동 외교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던 중국은 이번 사태에서 하마스의 공격을 규탄하는 대신 양측의 자제를 강조하고, 사태 확산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8일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긴장 고조와 폭력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관련 당사자들은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고, 상황의 악화를 방지할 것을 호소한다”고 했다. 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두 국가 방안(兩國方案)’을 이행하는 것”이란 입장을 냈다. 두 국가 방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별도의 국가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안을 가리킨다. 팔레스타인이 진정한 국가를 세워야만 이스라엘도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 외교부는 9일에도 “반복되는 양국 분쟁의 출구는 협상을 회복하고, 두 국가 방안을 실현하는 것”이라면서 “중국은 분쟁 확대와 지역 안정 파괴 행위를 반대하고 최대한 빨리 휴전하고 평화를 회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중국 입장에선 전선이 중동 전역으로 확대되면 ‘중동 외교’가 전면 중단되고, 올해 들어 어렵게 쌓은 ‘업적’이 훼손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3월)를 중재했고, 4월에는 당시 외교부장(장관)이었던 친강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외무장관과 각각 통화하며 양국 관계에 개입했다. 6월에는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또한 연내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이번 사태로 그의 방중은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가 빠르게 종식될 경우 중국에 유리한 국면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관계 복원에 어려움을 겪으며 중동 내 입지가 약해지면, 중국의 운신의 폭은 훨씬 더 넓어진다는 것이다.
8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계획을 이란이 배후에서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WSJ는 이날 친(親)이란 무장 세력 헤즈볼라 관계자 등을 인용해 “이란 혁명수비대(IRGC) 장교들이 하마스 등과 협력해 지상·해상·공중으로 이스라엘을 급습하는 방안을 계획했다”고 전했다. IRGC는 미국이 지정한 테러 단체다. 하마스 등 무장 단체들 간 회의는 지난 8월부터 최소 격주로 운영됐다고 한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이날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야와 통화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을 칭찬했다”고 하마스 측이 밝혔다.
하마스의 공습에 이란이 개입했다는 사실이 공식 확인될 경우 중동 전체로 확전될 우려가 있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회복을 중재하며 중동에서 영향력을 되찾으려 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구상이 타격을 받게 된다.
블링컨 장관도 이날 CNN·NBC 인터뷰에서 “이란이 이번 공격에 연루됐는지 매우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로서 이란이 이번 공격에 직접적으로 연루됐거나 계획을 세우거나 수행한 사실에 대한 증거는 없다”면서도 “(하마스와 이란이) 오랜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 등은 “미 정부는 하마스의 공격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조만간 이란에 새로운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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