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 명품 재벌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후계자 양성법 | 글로벌 명품 기업 회장 폭탄선언 “자식에게 물려주라는 법 없어”
“내 자녀 중 한 명이 꼭 후계자가 돼야 한다는 의무도, 그럴 필요도 없다.”
세계 최대 명품 기업인 프랑스의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승계 구도와 관련해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최근 내뱉은 말이다. ‘포브스’가 발표한 ‘2023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 따르면 아르노 회장은 재산 2110억달러(약 278조원)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아르노 회장의 다섯 자녀 중 누가 승계자가 될지 세계 투자자 및 기업가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이유다.
“LVMH 후계자, 꼭 가족 아니어도 된다”
아르노 회장은 9월 14일(현지시각) 미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가족 내부에서든 아니면 외부에서든 가장 뛰어난 사람이 언젠가 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르노 회장이 이 같은 발언을 한 이유는 다른 가족 중심 기업들이 자녀들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주면서 기업이 무너지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 쉽게 회사를 상속하면 1~2대가 지난 뒤 회사가 무너진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파티 대신 일을 시켰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르노 회장은 매달 자녀들과 LVMH 본사에서 점심을 먹으며 ‘밥상머리 교육’을 시킨다. 이 자리에선 각종 사업 현안을 논의하고 결정은 아르노 회장이 직접 내린다. 다만 당장 후계자를 선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후계자 선정 시점은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과거에 가족 다툼으로 무너진 유럽 럭셔리 하우스를 인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를 일궈낸 만큼 안전한 승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기업 지배구조도 손봤다. 그는 이사회를 설득해 CEO 및 회장의 정년을 75세에서 80세로 상향 조정했다. 회사 내 주요 직책에 다섯 자녀를 임명한 뒤 그룹의 의사 결정권을 집중시켰다. 이들은 각각 2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늑대, 럭셔리 제국 건설
아르노 회장은 지난 1949년 프랑스 북부 소도시 루베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MIT’로 불리는 명문 공대 에콜 폴리테크닉대를 1971년 졸업하고 아버지 장 아르노가 운영하던 건설 회사 페레 사비넬에서 경영 수업을 받았다. 1978년 29세 나이에 이 회사의 회장직에 오른 이후 6년간 일하던 아르노는 1984년 불현듯 패션 명품 사업가로 변신하는 기회를 포착하게 됐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대표 브랜드는 디올”이라는 한 택시 기사의 말을 듣고 인수하기로 했던 것이다. 당시 크리스찬 디올 브랜드가 포함된 섬유 기업 그룹 부삭(Boussac)은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그는 인수 후 혹독한 구조조정 등을 단행해 2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바꿔놓았다.
1987년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소기업이었지만 성장을 위해 자금이 필요했던 루이비통과 모에헤네시가 합병할 당시, 아르노는 합병법인 소수 주주로 참여했다. 그룹명 LVMH는 핵심 계열사인 루이비통(Louis Vuitton·명품 패션), 모엣샹동(Moët&Chan-don·샴페인), 헤네시(Hennessy·코냑)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모에헤네시는 1971년 샴페인으로 유명한 모엣샹동과 코냑으로 유명한 헤네시가 합병돼 설립된 회사를 말한다. 그러나 합병법인 경영진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했고, 결국 1989년 아르노는 영국 주류 회사인 기네스그룹의 자금 지원을 받아 루이비통 경영진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단숨에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아르노 회장은 크리스찬 디올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수많은 명품 브랜드를 줄줄이 인수하면서 현재의 ‘LVMH 제국’을 일궜다. 아르노 회장은 역사와 전통은 있으나 위기에 빠진 브랜드를 집요하게 사들였다. 늘 깔끔한 고급 정장 차림에 미소 띤 얼굴이지만, 눈여겨보던 기업을 인수할 때는 치밀하고 저돌적으로 밀어붙였다.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늑대’라는 그의 별명도 이때 만들어졌다.
아르노 회장의 다섯 자녀 교육법 화제
아르노 회장은 두 번 결혼해서 모두 4남 1녀를 뒀다. 아르노 회장은 바쁜 스케줄에서도 자녀 교육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 본사 내 개인 식당에서 다섯 자녀와 점심을 먹으며 토론 시간을 갖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로 LVMH 소속 브랜드의 개편 시점 등 사업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아르노 회장은 ‘LVMH 제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자녀 교육에 공을 들였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직접 수학을 가르치거나 출장과 비즈니스 미팅에 자녀를 참석시켰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자신과 오랫동안 일한 시드니 톨레다노 전 크리스찬 디올 CEO, 마이클 버크 전 루이비통 CEO 등 경영진이 자녀의 멘토 역할을 하도록 했다.
아르노 회장은 자기 자녀가 언젠가 LVMH 제국을 인수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경영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맏딸 델핀 아르노는 크리스찬 디올 회장 및 CEO이고, 장남인 앙투안 아르노는 LVMH의 광고와 커뮤니케이션을 거쳐 현재는 그룹 이사회 부회장 겸 벨루티와 로로피아나의 CEO다. 아르노 회장의 둘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세 명의 아들 역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영 일선에 참여했다. 셋째 아들 알렉산더 아르노는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 수석 부사장이다. 넷째 아들 프레데릭 아르노는 명품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의 CEO, 막내 장 아르노는 지난해 루이비통 시계 사업부의 제품 개발과 마케팅 디렉터로 임명됐다.
톨레다노 전 크리스찬 디올 CEO는 WSJ에 “아르노 회장은 경영진과 자녀를 짝을 지어 성과를 내는지 지켜본다”며 “아르노 회장은 자녀의 성격 중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경영진에게) 물어본다”고 말했다. WSJ은 “아르노 회장의 자녀들은 모두 자신을 형제자매로 여기고 서로를 이복형제라고 부르지 않는다”며 “경쟁이나 갈등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고, 테니스나 피아노를 누가 가장 잘하는지에 대한 농담조차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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