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눈앞까지 온 ‘자율주행 레벨4’ | 급차선 변경도, ‘갑툭튀’ 보행자도 안전 대처
9월 14일 오전 경기도 화성 자동차안전연구원 내 케이시티(K-City). 영화 촬영장처럼 ‘미니 도시’를 형상화한 케이시티의 도로 위로 검은색 G80 차량이 시속 50㎞로 달려왔다. 운전자의 개입 없이 달리는 자율주행 레벨4 시스템을 실증 중인 이 차량 앞으로 우측 차선에서 주행 중이던 회색 K5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차량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급차선 변경’에 G80은 기민하게 대응했다. 감속으로 거리를 조절하며, 혹시 모를 추돌을 피해 옆 차선으로 옮겼다. K5가 좌측 차선으로 비키자, G80은 다시 속도를 올렸다. 이어진 사거리 횡단보도. 주행 신호등은 ‘녹색불’이 켜져 있었지만, 인도에서 갑자기 사람을 대신한 마네킹이 튀어나왔다.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 표현으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였다. 돌발 상황을 감지한 차량은 급정거했다. 거의 부딪힐 것 같은 상황에 참관하던 기자들 사이에선 ‘오오오’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행히 충돌은 없었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면, 오른쪽에서 사람이 튀어나온다는 것을 바로 인지하고 멈출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율주행 상황을 소개하던 최인성 자동차안전연구원 연구원은 “각종 센서가 장착된 자율주행 레벨4 시스템은 사람보다 더 빠르게 상황을 인지한다”면서 “빠른 연산으로 더 안전한 주행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실증 차량에 장착된 센서로는 초등학생 정도 키 높이의 사물이 들어오는 것까지 인식해 회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 연구원은 설명했다.
2016년 기준 어린이 교통사고는 총 1만1264건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71명이 사망했다. 어린이 교통사고 중 27건은 횡단 중 사고다. 과속과 신호 위반, 안전운전 불이행 등 운전자 과실이 80%에 달한다. 사람보다 자율주행 시스템이 사고를 더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케이시티는 자율주행차 기술을 개발하고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한 테스트베드다. 케이시티를 포함해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전체 주행 시험장 면적은 215만㎡(65만 평)에 달한다. 여의도 면적의 30%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현재 이곳에선 현대차·기아와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 카카오, SKT, KT 등 대기업은 물론 모빌리티 스타트업들도 자율주행 실증 시험을 진행 중이다.
자율주행 레벨4를 체험할 수 있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각종 카메라 화면과 센서에 잡힌 신호를 보여주는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 목적지를 지정하고 가속페달을 한 번 밟으면, 이후로는 운전자가 핸들을 만지거나 가속페달, 브레이크를 따로 밟지 않아도 된다. 신호등의 신호에 따라 차량이 스스로 인지하고 멈췄다가 다시 출발한다. 핸들에 손을 대지 않고 알아서 간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운전자는 주행 내내 손을 머리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주행 도중 빨간불이 들어온 신호등을 만났다. 버스는 정지선에 맞춰 정차했다. 자율주행 레벨4 차량의 신호 인식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카메라로 신호등의 색상을 인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통정보 분석용 CITS(차세대 지능형 교통 시스템)의 정보를 통신으로 받는 방식이다. 지금 탄 버스는 신호를 직접 보고 인식하는 센서가 부착돼 있지만, 정부는 CITS 방식을 자율주행 레벨4의 신호 인식 방법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신호 변화를 예측해 감속할 수 있어 급정거 사고 등을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빨간불이 초록 불로 바뀌자,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최초 주행 시작 시에만 액셀을 밟을 뿐, 이처럼 주행하다 완전 정차했다가 다시 출발할 때는 가속페달을 밟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고속 주행로에 들어오자 시속 50㎞까지 속도를 올리던 버스는 주행장 내 톨게이트 진입을 앞두고 서서히 감속했다. 고속도로 나들목(IC)처럼 만들어 둔 도로에 임시로 설치해 둔 고무콘(라버콘)도 인지해 알아서 차선을 변경했다.
5분여의 시험 주행을 마치고 출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정기 자동차안전연구원 자율주행본부장은 “자율주행 레벨4가 상용화하는 순간, 운전자는 사실상 탑승객이 된다”면서 “자율주행 레벨4가 되면 운전자 자격은 기존 운전 면허와 달라질 것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는 주행 시연과 함께 전기차용 배터리의 낙하 충격 시험, 차 대 차 충격 시험을 시연했다. 배터리 낙하 충격 시험은 충격이 가해졌을 때 화재 발생 여부를 점검하는 시험이다. 이날은 포터EV 등 전기트럭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떨어뜨리기로 했다.
“5, 4, 3, 2, 1”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지상 5m 높이에서 400㎏에 달하는 배터리팩이 땅으로 떨어졌다. “쿵” 떨어지는 소리에 참관하던 기자들은 움찔했다. 불이 나거나 파편이 튀진 않았다. 초기에는 열 번 중 한 번은 화재가 발생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거의 화재가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안정성이 좋아졌다고 연구원 관계자는 설명했다.
배터리 충격 시험은 국제 기준에 포함된 시험은 아니다. 현재 배터리 검사와 관련한 국제 기준은 총 10개지만, 국내에서는 낙하 충격과 침수까지 총 12개의 시험을 하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바로 이어 차 대 차 충돌 시험이 진행됐다. 차량 충돌 시 탑승자에게 오는 충격과 각종 안전장비가 제대로 구동되는지 확인하는 시험이다. 이날은 정차돼 있는 카니발 차량에 YF쏘나타가 시속 80㎞로 달려오는 상황에 대한 시험이 진행됐다.
출발한 쏘나타가 카니발과 충돌하기까지는 10여 초가 걸렸다. ‘쾅’ 소리와 함께 두 차에서 에어백이 터졌다. 차에선 연기가 피어 나왔고 기름 냄새가 희미하게 퍼졌다. 통상 충돌 시험은 차 대 차가 아닌 차를 벽에 부딪히는 방식으로 진행하지만, 교통안전공단은 정확한 안전성을 체크하기 위해 차 대 차 시험도 내년부터 안전성 평가 항목에 추가했다. 차량 두 대가 필요한 차 대 차 충돌은 벽면 충돌 방식보다 비용이 더 든다. 제한된 예산을 감안하면 쉬운 결정이 아니다.
권용복 한국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 “차 대 차 충돌을 통해 보다 실제적인 충돌 시험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과거의 방법도 좋지만, 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험을 도입하려고 한다. 이게 국민 안전을 위한 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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