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파워 인터뷰 | 월스트리트저널(WSJ) 부고 전문 기자 제임스 R. 해거티] “자신의 부고를 자신보다 잘 쓸 사람 없다… 치욕과 영광 겸허히 맞아라”

김지수 2023. 10. 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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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전기적 관점으로 인터뷰를 쓴다는 점에서 나는 부고 전문 기자에게 깊은 동지애를 느껴왔다. 40년 커리어의 관록의 언론인 제임스 R. 해거티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유일의 부고 전문 기자다. 그는 지금까지 1000여 명의 죽음을 발굴해서 알렸다. 21세에 사고로 죽은 그의 친구부터 69명의 아이를 키운 여성, 감동적인 부고 기사 후 성 추문이 밝혀진 자선사업가까지⋯.

타인의 부고를 쓰는 것 혹은 읽는 것은 ‘애도’라는 여비를 지불하고 한 인간의 인생 터널을 관람하는 ‘가성비 높은’ 체험이다. 수많은 죽음을 접한 그가 살아있는 이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당신의 부고는 당신이 직접 쓰라’다.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or)전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위대한 대화’ 저자

만약 부모가 병석에 누워 돌아가실 날을 기다리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부모를 인터뷰해서 그들이 인생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을 기록하라고 권유한다. 가족의 인생 이야기조차 쓰기 전까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해거티가 쓴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에는 망자를 묘사하는 신랄하고 유머러스한 수많은 부고가 샘플로 등장한다.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형을 향해 ‘다정한 사람’이자 ‘어쩌면 동부에서 가장 지독한 짠돌이였을지도 모른다’고 묘사하는 동생, 시아버지의 놀라운 업적과 함께 ‘잼병에 든 싸구려 와인을 즐겼다’고 쓴 며느리, ‘1년의 애도 동안 꽃 대신 모두가 검은 완장을 차고 공공장소에서 통곡해 주기를 요청했다’고 자기 부고의 첫 문장을 웃기며 시작한 기자, ‘모든 아이를 사랑했으나 얼마나 깨끗하게 면도했는지에 비례해 사랑했다’고 어머니의 위트를 표현한 아들….

죽기 전에 내 인생, 가족의 인생을 ‘이야기’로 보존하는 모든 방법(예컨대 녹취 시간은 30분씩 끊어야 좋다)을 알려주는 친절한 부고 가이드 해거티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제임스 R. 해거티 월스트리트저널(WSJ) 부고 전문 기자노스다코타대 경제학·언론학, 전 월스트리트저널 런던 지국장 사진 제임스 R. 해거티

매일 아침, 죽은 자를 찾고 탐색하는 게 당신 일의 시작인가.
“그렇다. 아침 6시쯤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죽은 사람을 찾아다닌다. 우리 집 주방이나 뒷마당은 아니고 인터넷으로. 주로 유명하진 않지만 매력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찾는다. 특히 우리들 대부분을 좌절하게 했던 장애물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낸 사람들을 좋아한다. 보통 하루 종일 그리고 저녁까지 일하는 편이다. 대신 중간에 낮잠을 자거나 소프트볼을 하고 반려견 닥스훈트를 산책시키며 짧은 휴식을 취한다. 취침 전에 맥주 한 병을 마시면서 노래를 듣거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토머스 맬런(Thomas Mallon)의 ‘Yours Ever: People and Their Letters’다.”

부고 전문 기자로서 당신의 일을 사랑하나.
“사랑한다. 잊힐 뻔했던 특별한 인생을 찾아내고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하는 작업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왜 내 부고를 내가 직접 쓰라고 한 건가.
“부고 기자의 경험으로 보면, 유가족은 고인을 사랑하면서도 고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놀라울 때가 많다. 당신 인생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내 부고를 나보다 잘 쓸 수는 없다. 자신의 전기 작가가 되면 오로지 나만이 알고 있던 치욕도 영광도 겸허하게 직면할 수 있다.”

부고를 쓰기 전에 당신이 던지는 세 가지 질문이 있다고.
“나는 항상 질문한다. 첫째, 이 사람이 본인의 인생을 살면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둘째, 왜 그걸 목표로 삼았을까. 셋째, 성공했을까. 이 질문은 내가 고인에 대해 쓰려고 했던 이야기의 핵심을 찾도록 도와준다.”

1000여 개의 부고를 쓰면서 공통으로 발견한 것이 있나.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낙관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부고를 쓰다 보면 인생의 긍정적인 요소에 더 많이 집중하고 스스로를 훈련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거꾸로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고 세상이 내일 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누군들 위험을 감수하고 열심히 일하겠나.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죽음만 기다리겠지.”

타인의 부고 기사를 읽는 것이 왜 자신에게 도움이 되나.
“다른 이의 성공과 실패, 처음과 끝을 보면 배우는 게 많다. 어떤 이는 당신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겪었음에도 연약한 이웃을 도우며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다 갔다. 왠지 안심되지 않나. 물론 그 반대도 있다. 최고의 반면교사다.”

당신이 쓴 가장 마음에 드는 부고 기사의 첫 문장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온갖 뉴스와 논평으로 사람들이 시달리고 있는 이런 시대에 아이리스 웨스느먼(Iris Westman)은 소셜미디어(SNS)에 접속하지 않으며 텔레비전도 거의 보지 않았다’이다. 아마 이것이 그녀가 115세까지 놀랍도록 평온하게 살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 아닐까 싶다.”

요즘 한국에도 소셜미디어에 부모의 사망 소식과 함께 고인의 삶을 짧게 요약해서
리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 쓰면 좋을지 가이드를 줄 수 있나.
“만약 당신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본인의 이야기를 미리 알려주거나 최소한 메모라도 남겨 준다면 최고로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다면, 그들이 아직 대답할 수 있을 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 자리에서 받아적어라. 어떤 삶을 꿈꾸었는지, 언제 가장 눈부셨는지, 살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인지…. 대답을 주저한다면,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또 다른 질문을 계속하면 된다. 젠틀하지만 끈기 있게. 하루에 30분씩 며칠에 걸쳐서. 당신의 관심을 보여 줘라.”

당신은 부고마저 재미없다면 죽는 데 무슨 낙이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농담이나 실수담이 추도사나 부고에 꼭 필요한가.
“필요하다. 유머는 남은 이들이 고인을 생생하게 기억하도록 돕는다. 내가 아버지에 대해 웃긴 이야기를 할 때면 그가 어떤 방식이든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기분도 훨씬 나아진다. 무의식중에 습관이 된 가장 우스꽝스러운 점이 우리 성격을 반영한다. 완벽했던 사람보다 진짜 그 사람 자체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은 자신의 부고를 ‘나는 사망했다’라고 시작할 거라고 했다. 죽었다, 하늘로 돌아갔다, 천국 여행을 떠났다, 고인이 되었다…. 어떤 동사가 적절한가.
“그야말로 ‘개인 취향’이다. 나는 간결하고 직접적인 표현을 좋아하기 때문에 ‘죽었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하지만 완곡한 표현을 사용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 자유롭게 쓰면 된다. 당신을 안심시킬 창의적인 완곡 표현을 수집하는 것도 좋다.”

인터뷰는 ‘느슨한 탐색’이라는 말에 많은 부분 동의했다. ‘무엇이 당신을 웃게 하나요?’ ‘조금만 더 얘기해 주세요’도 내가 좋아하는 단골 질문이다. 묻기 좋은 마지막 질문으로 “더 할 말이 있으신지요?”를 택한 이유는.
“우리는 종종 인터뷰이가 진짜 말하고 싶어 하는 것에 관해 물어보지 않는다. 당신 앞의 상대는 때때로 당신이 전혀 상상도 못 했던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

얼마 전 나는 배우 매슈 매코너헤이가 쓴 회고록 ‘그린 라이트’를 읽고 눈물과 폭소를 터뜨렸다. ‘똥을 밟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온 세상이 공모하고 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 … 어머니, 아버지는 무기는 버렸지만 대결 태세를 유지한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 우리는 껴안고 입 맞추고 씨름하고 다퉜다. 우리는 앙심을 품지는 않았다.’ 솔직할수록 생생해지더라. 당신이 읽은 최고의 회고록은 무엇인가.
“직업상 수많은 회고록을 읽어서 다 기억해 내기 어렵다. 최근에 즐겁게 읽었던 것은 유명한 아동서 작가인 로알드 달의 ‘단독 비행(Going Solo)’과 시인 짐 해리슨의 ‘오프 투더 사이드(Off to the Side)’다. 해리슨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연대순으로 대략 서술한 다음 술·사냥·종교·스트립쇼 등 주제별로 나머지를 구성했다.”

미국 대통령 제임스 뷰캐넌이 사망한 뒤 뉴욕 ‘올버니 이브닝 저널’의 부고는 정말 짓궂더라. ‘그를 위해 슬퍼하는 과부는 없을 것이고, 눈물 흘리는 부상 군인은 없을 것이며… 철저히 이기적으로 살았고 죽은 뒤 홀로 남겨졌다.’ 이렇게 미화하지 않는 부고도 가능한가.
“가능하긴 하지만 나는 항상 모든 사람에 대해 긍정적인 무언가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인생을 살면서 매 순간 악당인 사람은 없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풀어내려는지 찾아내고자 한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최고의 영감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한 명만 꼽을 수는 없지만, 현재 97세에도 여전히 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나의 어머니다. 최악의 진실을 전할 때조차 완곡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신다.”

유언과 부고를 쓰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유언을 남길 때 당신은 당신의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한다. 부고를 쓸 때는 더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려고 한다. 대대로 전해질 내 이야기다. 돈을 잃었다면 언제든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꿈을 꾼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고 죽는다면, 그건 영원히 사라지는 거다.”

최근에 나는 ‘더 웨일’이라는 영화를 보고 충격받았다. 죽음을 앞둔 고도비만 환자(직업은 글쓰기 강사)가 어릴 때 헤어진 10대 딸을 불러 에세이를 완성하는 이야기다. 그 영화를 ‘죽기 전에 최고의 에세이를 쓰는 법’으로 부르고 싶었다. ‘매일매일 더 수정해서 나아지라’고 가르치던 그가 죽기 직전에 전한 진실은 이거였다. ‘개소리일지라도 그냥 지금 가장 솔직하게 쓰라.’ 어떻게 생각하나.
“무언가를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걱정은 하면 안 된다는 당신의 이야기에 동의한다. 우리 인생은 그렇게 하기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거든. 너무 늦기 전에 우리가 경험했던 사소한 것들을 그냥 쓰시라. 혹시 당신이 20세고 죽음이 너무 멀리 있다고 느껴지더라도 지금 시작하라. 쓰기 전까지는 당신의 인생 이야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맞춤법이 틀리거나 디테일을 놓쳐도 괜찮다. 쓸수록 쌓이고 쌓이면서 나아진다.”

유머와 교훈, 의미와 아름다움 중 무엇을 선택할 건가.
“유머·교훈·의미·아름다움 모두를 선택하겠다.”

마지막으로 1000여 명의 인생 이야기를 쓰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내가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본인에게 바라는 모습보다 자기 모습 그대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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