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ARPA-H와 창조적 독점

2023. 10. 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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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노벨상의 계절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6개 부문 수상자를 차례로 발표한다. 한가위 연휴 중에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이 코로나19 백신 생산에 이용된 메신저리보핵산(mRNA) 신기술을 수십 년간 집요하게 연구한 두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는 기사를 보았다. 세계 최고의 인류 공헌상이라 할 노벨상의 명성에 걸맞게 적임자들을 선정한 게 아닌가 싶다.

세계적 감염병에 맞설 백신은 과학자의 연구를 넘어 상용화할 수 있는 기업과 정부의 뒷받침이 있을 때 세상에 나올 수 있다. 불과 1년 만에 성공한 mRNA 백신 개발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획기적 지원이 없었다면 단시간 내 개발은 불가능했다는 게 중론이다. 혁신 기술의 요람으로 불리는 DARPA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지만 반드시 필요한 혁신적 연구를 집중 지원해 인터넷, 위성항법시스템(GPS) 같은 기술을 개발한 곳이다.

세계 각국은 넥스트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혁신적 기술 개발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ARPA-H는 DARPA를 바이오 분야에 접목한 것이다. 지난 6월 미국에서 만난 관계자에 따르면 ARPA-H는 기존 연구 지원과 달리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고, 세계 모든 연구자에게 문호가 열려 있다고 한다. 심지어 지식재산권도 요구하지 않는다.

요즘 경제성장률 하락과 저출산·고령화로 국가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가 경쟁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국민 1인당 생산성을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해선 과학기술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과학기술 경쟁력을 고도화하려면 무엇보다 지원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은 세계적 수준이다. 문제는 주요 경쟁국에 대비해 절대액 규모가 작다는 것인데,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ARPA-H 모델이다. 이제 임무 중심형 연구개발 방식을 도입해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한국형 ARPA-H 도입을 전환점으로 삼아 '추격형 성장'에서 탈피해 '창조형 성장'으로 변화를 꾀해야 한다.

세계적 온라인 결제업체인 페이팔의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은 그의 저서 '제로 투 원(Zero to One)'에서 경쟁하지 말고 독점할 것을 주문했다. 이른바 '창조적 독점'이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확장하는 '수평적 진보'와 달리, 세상에 없던 기술을 창조하는 '수직적 진보'가 0에서 1로 전환하는 '창조적 독점'이라는 것이다. 창조적 독점의 집약체는 '기술'이다. 창조적 독점은 새 제품을 만들어 모두에게 혜택을 주고, 그 제품을 만든 사람에게는 막대한 이윤을 제공한다. mRNA 백신을 개발한 기업들이 인류의 생명을 지킨 동시에 천문학적인 매출을 올린 것이 그 예다.

우리 정부도 최근 한국형 ARPA-H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자들의 도전적 연구를 과감히 지원해 혁신 선도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한국형 ARPA-H가 제약·바이오 분야의 창조적 독점을 이뤄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산업계도 전폭적으로 협력해 성공의 동반자가 되도록 하겠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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