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LPGA투어 한류 골프 맥 되살린 김효주
[골프한국] LPGA투어에서 한류 골프의 시원(始原)은 1998년이다. 고 구옥희(1965~2013) 선수가 한국 골프선수로는 최초로 LPGA투어에 도전, 스탠더드 레지스터 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안았다. 구옥희 선수가 어렵게 첫 테이프를 끊었으나 이후 10년간 뒤를 잇지 못하다 1998년 박세리 선수의 등장으로 LPGA투어에서 본격적인 한류의 흐름이 시작되었다. LPGA투어 데뷔 첫해에 4승을 올린 박세리는 이후 동년배 선수는 물론 이른바 박세리 키즈들의 LPGA투어 도전의 물꼬를 열어 LPGA투어에서 한류 골프라는 도도한 흐름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99년엔 김미현 박지은 등이 가세하면서 박세리의 4승과 함께 한국여자 선수들이 6승을 거두면서 미국 선수들이 주도하던 LPGA투어에 한류 바람이 일어났다. 한국 선수들이 LPGA투어에 속속 상륙하면서 한해에 두 자릿수 우승을 거두며 당당히 미국과 함께 주류를 부상했다. 2015, 2017, 2019년의 경우 한국 선수 우승이 15회에 달하기도 했다. 전체 LPGA투어 대회 중 3분의 1을 한국 선수들이 쓸어간 셈이다. 그러나 이런 도도한 흐름은 2019년을 정점으로 급속히 힘을 잃어 한국 여자 골프가 주류에서 밀려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대신 새로운 골프강국 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유럽국가 출신의 선수들이 LPGA투어에 진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2021년 시즌에는 고진영의 5승에 김효주와 박인비가 1승씩을 보태 7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2022년 시즌 고진영 김효주 지은희 전인지가 각각 1승씩을 올려 4승에 머물렀다. 예전 같지 않은 흐름이다.
LPGA투어에서의 한류 퇴조의 원인은 LPGA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번아웃(burnout) 증후군과 새로운 선수 자원의 공급 부족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매년 승수를 보태는 소수의 선수들을 제외하곤 우승 없이 쉴 틈 없는 투어를 이어가는 생활로 극도의 심신 피로와 무능감에 빠지기 쉽다. 여기에 새로운 신진 선수들이 속속 등장하니 경쟁 의욕도 꺾일 수밖에 없다. LPGA투어 진출 초기엔 의욕적으로 활약하다 2~3년이 지나면서 중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번아웃 증후군 탓일 경우가 십상이다.
여기에 KLPGA투어가 미국의 LPGA투어와 일본의 JLPGA투어에 이은 세계 3대 리그로 성장하면서 새로운 선수 자원의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KLPGA투어의 스타급 선수들은 당장 LPGA투어에서 뛰더라도 손색이 없는데도 선뜻 도전에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국내 리그에서도 충분히 즐기며 먹고 살 만한데 굳이 말도 잘 안 통하고 코스도 낯선 데다 장시간 이동해야 하는 LPGA투어에 쉽게 마음이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랭킹 50위 안에 한국 선수가 13명이 들어 있는데 이중 LPGA투어에서 뛰는 선수는 8명. 세계랭킹으로만 보면 박민지, 이예원, 김수지, 박지영 등 5명은 당장 LPGA투어에서 뛰어도 통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고진영이 시즌 2승으로 다승 행진에 시동을 건 가운데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의 유해란에 이어 김효주가 어센던트 LPGA 베네피팅 발런티어즈 오브 아메리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2주 연속 우승행진을 이어간 것은 LPGA투어 한류 골프 부활의 신호탄으로 다가온다.
김효주는 9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더콜로니의 올드 아메리칸GC(파71)에서 열린 어센던트 LPGA 베네피팅 발런티어스 오브 어메리카 최종 4라운드에서 2언더파 69타를 쳐 최종합계 13언더파 271타로 공동 2위 아타야 티띠쿤(태국), 비앙카 파그단가난(필리핀)을 4타 차이로 제치고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4월 롯데 챔피언십 이후 1년 6개월 만의 우승으로 LPGA 통산 6승째다.
김효주는 올 시즌 내내 기복 없는 기량을 보여주어 유일하게 번아웃 증후군을 보이지 않는 선수다. 시즌 2승의 고진영조차 때때로 지친 모습이 역연한 데 김효주는 달랐다.
통계자료가 이를 말해 준다. 올 시즌 19개 대회에서 컷 탈락을 하지 않은 선수는 김효주와 호주동포 이민지 단 2명이다. 톱10에 9차례 들어 우승 경쟁을 벌여 이번에 우승했다.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는 249.20야드로 133위에 불과하지만 드라이브 정확도는 2위, 그린 적중률은 3위, 파온 시 퍼팅은 4위다. 평균 스코어는 69.67타로 1위, 언더파 라운드 수는 50라운드로 1위, 버디 280개로 1위, 60대 타수를 기록한 라운드가 31회로 역시 1위다. 한마디로 기복 없이 꾸준하고 정교한 경기를 펼치는 선수라는 뜻이다. 18홀 평균 최저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수여하는 베어트로피 수상도 기대된다.
오는 19~22일 경기도 파주 서원밸리CC에서 열리는 BMW 챔피언십에도 출전할 예정이어서 다관왕도 기대해볼 만하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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