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세종의 얼 아로새기다
아름답고 정겨운 이름 정말 많네요!!
도담, 어진, 아름, 범지기, 가재, 가락, 새뜸, 나릿재, 해들, 수루배, 호려울, 새나루…….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신도시의 동과 아파트단지 이름이다.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봄직한 정겨운 낱말들이다. 가게 이름도 안다미로, 온기, 신통치킨, 밥상차려주는집, 백년마루, 참착한부동산, 뚜뚜전동차 등 우리말을 사용한 게 유달리 많다.
세종시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묘호(廟號)를 본 따서 도시의 이름으로 삼았다. 한자를 풀이하면 '세상(世)의 으뜸(宗)'이라는 뜻도 있다. 세종이라는 도시 명칭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이었던 세종대왕을 기리는 동시에 도시의 정체성을 세우는 길잡이가 되었다.
◇ 마을, 다리, 학교 이름 대부분 순우리말 사용
대한민국에서 특정 인물을 도시 이름으로 정한 것은 유례가 없다. 2006년 12월 행정도시건설추진위원회는 행정도시의 명칭을 '세종'으로 확정했다. 국민 공모와 선호도 조사를 통해 선정한 세종, 금강, 한울 3개 후보 가운데 하나를 뽑은 것이다.
이처럼 세종시는 세종대왕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을 안고 출발했다. 백성을 위한 위민정치를 펼쳤던 세종대왕처럼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이 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실질적인 수도인 것이다.
세종시에서 세종대왕의 '기운'을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는 게 각종 이름이다. 앞서 언급한 동과 마을은 물론 도로, 학교, 다리, 공원 등 1000여 개의 이름을 우리말로 지었다. 행정도시건설청과 세종시가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원칙을 정한 덕분이다. 이런 흐름이 민간으로 퍼져 건물이나 가게 이름을 순 우리말로 내거는 사례도 많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게 법정 동명과 마을 이름이다. 공식적인 주소는 도로명을 쓰지만 동 이름은 한솔, 도담, 어진, 아름, 고운, 소담, 새롬, 보람동 등 순 우리말 명칭이 많다.
정부청사가 위치한 동의 이름이 어진동으로 '어질다'에서 따온 명칭이다. 너그럽고 착하고 슬기롭게 나라를 운영하라는 바람이 담겼다. 고운은 곱다에서 나온 말로 산뜻하고 아름답다는 뜻이고, 도담은 야무지고 탐스럽다는 의미이다. 새롬은 새롭다, 새뜸은 새로 닦은 터, 가람은 강에서 나온 말이다. 순 우리말 이름과 함께 부분적으로 반곡, 종촌, 대평동처럼 옛 지명을 살려 역사성과 전통성도 보전하고 있다.
◇ 숲바람, 물빛광장, 깁가람, 모개뜰 등 공원이름 아름다워
아파트 단지 이름도 가락, 범지기, 가재, 도램, 한뜰, 가온, 첫마을, 나릿재, 호려울, 새샘, 수루배, 새나루마을 등 순 우리말이다.
가락마을은 갈림길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고, 범지기마을은 마을이 범이 누워있는 모습과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한뜰은 큰 뜰이라는 뜻이고, 가온마을은 옛 지명인 '가운데 말(마을)'에서 나왔다. 나릿재는 냇가에 있는 성(城), 새샘은 새로 만든 샘에서 유래했고, 해들마을은 해가 따스하게 드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학교 이름도 순 우리말이 대부분이다. 참샘, 한솔, 도담, 미르, 가온, 양지, 고운, 두루, 슬기, 온빛, 보람, 새샘, 소담, 늘봄, 여울, 글벗, 한빛, 보람, 새뜸, 가득, 다빛 등을 유치원과 초중고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참샘은 참샘이라는 우물에서 따온 이름이고, 미르는 용(龍)을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두루는 빠짐 없이 골고루라는 의미이고, 가득은 사람이나 물건 등이 꽉 찬 모양을 가리킨다.
공원 이름도 대부분 순 우리말이다. 숲바람, 호려울뜰, 물빛광장, 깁가람, 모개뜰, 한글공원, 여울목, 물빛찬, 부엉뜰, 아침뜰, 한솔뜰, 참샘, 가득뜰, 해든뜰, 오가낭뜰 등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뜰'은 집 근처에 있는 빈터로 꽃과 나무, 푸성귀 따위를 심고 가꾸는 곳을 의미하는 우리말이다. 호려울이나 참샘, 오가낭 등은 옛 동네 이름에서 연유한 것이다. 깁가람수변공원의 '깁'은 가공하지 않은 누에고치 실로 짠 다소 거친 비단을, '가람'은 강을 의미하는 순수한 우리말로 '깁가람'은 비단강, 즉 금강이라는 뜻이다.
◇ 한글사랑거리 조성… '세종꽃글체'도 개발 보급
세종시 신도시 금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학나래, 한두리, 햇무리, 아람찬, 금빛노을, 보롬교 등 대부분 한글 이름이다. 디자인 공모를 통하여 아름답고 독특한 다리를 건설하고, 이름도 순 우리말로 붙였다. 한두리대교의 '한'은 크다는 뜻이고, '두리'는 둥그런 둘레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다리의 주탑 기둥이 커다란 원 모양을 한데서 연유했다. 보롬교의 '보롬'은 보름의 옛말이다.
교량 중에 '이응다리'도 있다. 금강 남쪽 세종시청에서 북쪽의 중앙공원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차량이 다니지 못하는 보행자 전용 다리이다. 다리의 모습이 한글의 자음 'ㅇ'(이응)처럼 둥글게 생긴 것에 착안하여 이름을 지은 것이다. 길이도 1446m로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1446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았다.
세종시에는 '한글사랑거리'도 있다. 2-3생활권 초롱꽃어린이공원 인근에 조성된 이 거리는 한글 조형물을 설치하고 한글로 디자인한 보도블럭을 깔았다. 주변의 가게들도 온정, 김송정머리터, 네일먼저, 다워라 카페, 용용상회, 사랑채, 국수파는집, 을지로 골뱅이, 큰집 뼈대 있는 짬뽕, 족발명가, 룰루랄라(문구점). 유쾌한상(삼겹살), 설기지음(떡케이크) 등 한글 간판을 달았다.
세종시는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2021년 한글진흥을 담당하는 조직(팀)을 설치했고, 한글 및 국어 전문가가 참여하는 한글사랑위원회를 만들어 한글 관련 정책과 사업을 자문 심의하도록 했다. 시민과 대학생이 참여하는 한글사랑동아리와 한글지킴이를 통해 아름다운 간판 선정, 공공언어 실태조사 등 한글진흥 활동을 하고 있다.
◇ 가게 이름도 자발적으로 한글 이름 사용
시청 본청 4층에 한글책문화센터를 조성하여 한글 관련 프로그램 운영하고 있으며, 한글날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맞춤법 경연대회를 열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한글 글씨체 공모전을 통해 홍죽표씨의 작품을 뽑고, 이 작품을 토대로 '세종꽃글체'를 개발,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한글사랑조례까지 제정,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한글문화 진흥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세종시의 대표 축제인 세종축제도 매년 10월 9일 한글날을 전후하여 열린다.
민간에서도 자연스럽게 우리말 상호를 내건 점포들이 많아졌다. 한누리정육점, 바로쌈밥, 한아름보리밥, 대나무한소반, 뒤웅박고을, 더올림입시학원, 세움빌딩 등등…
세종시 보람동 박정화씨(47)는 "세종시의 마을이나 다리, 공원 등에 한글이름을 사용하고, 전국 어느 도시보다 널리 한글문화가 퍼져 있다."며 "세종시가 세종대왕의 얼을 잇는 도시라는 점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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