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젊은 꼰대라도 괜찮아
"제가 조금 꼰대가 된 거 같아요. 학생회 일을 하다 보니까 친구나 후배들이 좀 답답할 때가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꼰대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며칠 전 한 남자 대학생에게서 들었다.
스스로를 '꼰대'라고 칭하는 말머리에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하는 신세 한탄인 줄 알았는데 뒤이은 말에 자부심과 긍지 같은 게 느껴졌다. 이렇게 '젊꼰'(젊은 꼰대) 한 명이 추가되나 보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향해 꼰대라고 비아냥거리지만 스스로는 동년배에게 실망하면서 젊은 '꼰대'로 바뀌어간 것은 '역할에 따른 경험' 차이가 쌓인 탓으로 보인다. 나이가 비슷한 학생들을 이끌고 일이 되도록 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혼자 짊어졌던 그는 수십 년을 건너뛰어 꼰대력을 체득해버린 것일까. 어감에서부터 부정적 뉘앙스가 확실한 꼰대라는 말이 새로운 맥락 속에서 '나는 친구들보다 더 일찍 험한 세상을 겪어냈다'는 긍정적 의미를 품게 됐다.
일맥상통하는 한 설문조사를 보자. 지난주에 발간된 중앙노동위원회의 웹진 '조정과 심판' 가을호는 '직장 내 갈등 해결'을 자세하게 다뤘다. 설문 응답자 중 20·30대에서 '문제 발생 시 나는 책임을 따지기보다 해법에 관심이 많다'고 자신을 평가한 비율이 40대보다 높았다. '일이 안 풀리면 먼저 내게 문제가 있는지 생각한다'는 답변도 20·30대가 40대보다 많았다. 젊은 세대가 70% 안팎의 비율로 '꼰대스러운 답변'을 선택했다는 데서 사회적 통념이 사실은 편견에 불과했다는 현실을 보게 된다.
젊은 꼰대를 세상사에 시달리다가 너무 일찍 정신적으로 노화한 사람이라고 단순히 치부하기엔 그 비율이 상당히 많다. 스스로를 '젊꼰'이라고 부르는 속마음을 신세 한탄이나 셀프디스(자기 비하)라고 속단하기보다는 일찌감치 많은 경험을 쌓았고 그 경험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자기암시도 깔려 있는 설문조사 결과로 보인다.
또 어쩌면 진짜 꼰대처럼 사고가 굳어져버리지 않은 젊꼰들이 되레 세대 간 격차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해본다.
"어휴 꼰대" "요새 애들 참나"라고 단정 지으며 서로 이해하고 다가서려는 마음이 희미해져 가는 세태 속에서 이들이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떨까(요)?"라고 말해주면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과 설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분위기도 생겨날 것이다. 힘들게 살아온 젊꼰에게 이런 기대감을 전달하는 몰염치는 조금 더 나이든 후에 생겼으면 좋겠다.
[안두원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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