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예쁨 알게 된 뒤 욕설·비속어 안 쓰게 됐어요”

한겨레 2023. 10. 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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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한글사랑 이끎학교’ 온양한올중
온양한올중학교 한글사랑 동아리 회원들은 매월 첫째 주마다 피켓 캠페인을 통해 친구들에게 한글 사랑을 일깨운다. 이경아 교사 제공

지난 4일 아침 8시 등교시간에 찾아간 온양한올중학교 입구에서는 ‘한글 사랑’ 캠페인이 한창이었다. 이 학교 한글사랑 동아리 회원들이 ‘올바른 한글사랑 품격 있는 언어문화’ ‘한글사랑 실천은 한올인의 자부심’ ‘바른생각 고운마음 올바른 언어사랑’ 등의 손팻말을 들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등교를 하는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이 장면이 아주 익숙한 듯 그들에게 인사하며 교실로 입장했다. 한글사랑 동아리는 매월 첫째 주마다 피켓 캠페인을 통해 친구들에게 한글 사랑을 일깨운다.

중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에서는 ‘한글사랑 표어 만들기’ 공모함이 눈에 띄었다. ‘한글사랑’과 ‘한글날’ 등을 주제로 표어를 만들어 공모함에 제출하면 우수자를 뽑아 매점 이용권과 상점(3점)을 준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투명한 공모함에는 학생들이 제출한 표어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학교 한편에는 한글사랑 작품 전시장도 마련돼 있었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이나 동아리 시간에 만든 애니메이션, 캘리그라피, 엽서, 포스터, 그림 등이 전시돼 있었다. 축제 기간에 아이들이 제작·판매했던 한글사랑 티셔츠와 텀블러도 눈길을 끌었다. 훈민정음 독후감 공모대회에서 줄줄이 입상한 학생들의 상장도 자리를 빛내고 있었다.

온양한올중학교가 이렇게 한글 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21년 ‘올바른 한글사랑 이끎학교’로 선정되면서부터다. ‘올바른 한글사랑 이끎학교’는 충청남도교육청이 학교, 도서관 등을 대상으로 올바른 한글 사용과 한글 교육의 내실화를 목표로 추진 중인 사업이다. 온양한올중 이경아 국어교사는 “인생에서 가장 예쁠 중학생 나이에 학생들이 비속어와 욕설을 너무 자주 사용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이 사업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온양한올중 학생들은 한글의 다양한 글씨체를 써보며 한글의 아름다움을 체험한다. 이경아 교사 제공

한글의 아름다움 느끼고 체험하는 프로그램 다양

학교는 교과 수업과 동아리 활동, 방과후 수업 등을 한글 교육과 연계해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한글영상교육’ ‘우리말 엽서 만들기’ ‘한글 포스터 및 만화 그리기’ ‘우리말 으뜸이 활동’ 등이다.

한글영상교육은 국립 한글박물관이 제작한 영상을 감상하면서 한글의 다양한 글씨체를 체험하는 교육이다. 학생들은 판본체, 궁서체, 민체 등 다양한 서체를 따라 쓰면서 ‘한글이 참 예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예쁘다는 걸 느끼게 된 아이들은 ‘한글 엽서 만들기 활동’을 통해 자신의 미감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표현해 본다.

국립국어원과 연계한 청소년 언어문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국립국어원에서 파견된 강사가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타인과의 대화, 온라인 대화를 주제로 말의 중요성과 말에 담긴 소중한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미술 시간에는 한글 관련 단어, 문장 이미지를 조사하고 모둠별 토론 활동 후 한글 포스터를 제작하는 활동을 한다. 만화 그리기 동아리는 친숙한 한글 만화 작품을 그리며 올바른 한글 사용과 잘못된 언어 사용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다. 독서토론 동아리 학생들은 우리말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글쓰기를 하고, 훈민정음 관련 도서를 읽고 독후감을 쓴다. 방과후 수업에서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조사하고 아직도 존재하는 일본 어휘를 찾아 우리말로 고쳐보는 활동을 벌인다.

자유학기 캘리그라피 시간에는 순우리말을 자기만의 글자체로 써보는 활동을 하고, 시를 감상하며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도 갖는다. 한글 사랑 시 창작 활동과 표어 만들기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우리말 으뜸이 활동은 학급별로 한달에 한명씩 바르고 고운 언어를 사용하는 학생을 우리말 으뜸이로 선정해 발표하고 상점과 매점 이용권을 선물로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활동들은 이경아 교사가 동료 교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것도 있고 교장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낸 것도 있고, 학생들과 의논해서 만들어진 프로그램들도 있다. 이렇게 적극적이고 활발한 교육 덕분에 온양한올중학교는 ‘한글사랑 이끎학교’ 운영 첫해인 2021년부터 3년 연속 ‘올바른 한글사용 유공기관 표창’을 받았고, 올해까지 3년째 올바른 한글사용 이끎학교로 선정되어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온양한올중학교에 마련된 한글사랑 작품 전시장에는 학생들이 만든 다양한 한글 예술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경아 교사 제공

‘한글사랑 전도사’로 친구들 변화시키는 학생들

이 학교에서 한글사랑 동아리 학생들은 가장 열정적인 한글 전도사들이다. 이들은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나와서 한글에 관한 책을 읽고 토론을 벌이거나 글도 쓰고 탐방을 하고 한글사랑 캠페인을 모색한다. 당연히 동아리 회원들은 비속어와 욕설을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말습관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3년째 한글사랑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최가연 학생은 “우리 동아리는 우리가 자주 쓰는 욕설의 어원이나 의미를 공부해 그 뜻을 알고 있기 때문에 친구들이 그런 욕설을 쓸 때마다 ‘그건 이런 뜻이니까 쓰면 안 된다’고 일러준다”고 말했다. 그는 또 “꿈이 작가여서 이 동아리에 들어왔는데 다양한 활동과 체험을 많이 하니까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다른 친구들에게도 가입하라고 많이 권유한다”며 “가장 재미있었던 활동은 김유정, 황순원, 한용운 등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남긴 작가들의 문학관을 탐방한 것”이라고 꼽았다.

류정희 학생은 “요즘에 워낙 한글을 제대로 쓰는 친구들이 적기 때문에 한글 사랑 활동을 통해 친구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걸 보면 보람을 느낀다”며 “친구들에게 가장 효과 있는 활동은 매달 학급에서 우리말 으뜸이를 뽑는 행사인 것 같다”고 전했다. 해마다 학기 초에는 한글사랑 동아리 회원들이 우리말 으뜸이로 뽑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친구들이 우리말 으뜸이로 뽑히기 시작한단다.

온양한올중 학생들이 한글사랑을 담은 티셔츠를 만들고 있다. 이경아 교사 제공

배아현 학생은 “특히 욕설을 많이 하던 친구가 매점 상품권을 받으려고 고운 말을 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활동에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학교가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교과 시간과 동아리 시간에 한글 관련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다른 학교보다 확실히 한글에 대한 관심이 높고 한글 관련 대회에 많이 출전해 상을 많이 받으니까 자랑스럽다”며 “우리 학교의 이런 활동이 다른 학교들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기대된다”고 말했다. 배아현 학생은 한글사랑을 담은 스토리로 ‘나라사랑 스피치 대회’에 출전해 대통령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경아 교사는 “처음에는 그저 학생들이 좀 더 바른 언어 사용을 했으면 하고 시작한 일인데 활동을 하다 보니 이것저것 연계가 되어 더 다양한 활동들이 이뤄지고 여기저기 입소문이 나면서 활동에 대한 문의도 온다”며 “전교생이 모두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언어순화가 되어 가고 있으며 학생들이 한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은 확실히 느껴 우리말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려는 마음은 어느 정도 자리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여다감 미술 교사는 “한글 사랑을 주제로 미술 활동을 하면서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한글에 대해서 많이 찾아보게 되니까 아이들이 한글에 대한 생각이 많이 깊어지고, 또 미술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끼리 ‘우리가 한글사랑 포스터를 만드는 동안만이라도 예쁜 말을 써야 되지 않겠냐’며 서로의 말습관을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고 귀띔했다.

온양한올중학교의 한글사랑 교육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박성병 교장은 “한글사랑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정서적 안정과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키우고 우리말과 문화에 자긍심을 길러줄 수 있어서 기뻤다”며 “앞으로도 고운 말과 바른말을 통해 정서와 인성을 함양하고 사회적으로 성숙한 언어와 태도를 갖추도록 한글 교육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산/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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