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일본 간사이는 한반도 선조들의 동네였다
미국 학자들이 고대 한일교류사 정리
최근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관광지 중 한 곳이 오사카가 있는 일본 간사이 지방이다. 일본 최대 규모의 코리아타운으로도 유명한 이 지역을 두고 많은 한국인들은 20세기 초 식민지 조국을 떠난 동포들 다수가 생계를 위해 정착하기 시작한 곳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진실은 간사이에 새겨진 고대 선조들의 놀라운 발자취를 전해준다. ‘속일본기’의 8세기 초 인구조사 기록을 보면, 1300년 전 간사이 지역의 핵심이던 남부 나라 분지에 살던 사람의 80~90%가 백제계 이주민이었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간사이 지역에 5세기 후반부터 등장하는 백제 특유의 무덤양식인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인데, 6세기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해 타카야스 등의 지역에 ‘천개의 무덤’이란 뜻인 천총(千塚,센즈카)이란 무덤떼가 우후죽순 등장한다. 일부 엘리트 무덤은 왕릉급으로 두드러지게 큰데다 구리거울(동경), 철제단검, 칼, 금귀걸이, 옥·유리제품 등이 나와 백제와 마한 계통의 주민과 지배자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무덤만 수백기에 이르러 간사이 지역에만 최소 1000기가 넘는 백제계 무덤군이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고고학자인 이사와타리 신이치로는 “천총으로 불리우는 거대한 묘지의 주인공이 한반도 서남부 출신 도래인과 그 후손임을 고려하면, 기원후 475년부터 600년까지 125년 동안 적어도 100만명이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런 사실들은 미국에서 연구중인 고고인류학자 3명이 한국·일본에서 간행된 방대한 고고학·역사학 간행물의 서지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정리한 학술서 ‘도래인의 고고학과 역사’(주류성)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송래 미국 오레곤대 고고학 명예교수, 멜빈 에이켄스 오레곤대 인류학(고고학) 명예교수, 지나 반즈 영국 더럼대 일본학명예교수가 공동집필하고 김경택 한국전통대학교 융합고고학과교수가 번역해 내놓은 이 책은 기원전 1000년 이전의 무문토기시대부터 기원후 7세기에 이르는 삼국시대까지 한반도 출신 일본열도 이주민들의 경로와 이들이 일본 문화·사회 발전에 기여한 부분을 한반도 ‘도래인’의 활동상을 통해 집중 탐구한다.
이 책은 과거 한반도 도래인의 이야기를 7개 질문을 통해 풀어간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그들의 역사적·사회문화적 배경은 무엇이며, 왜 떠났으며, 일본 열도의 어디에 정착했고 무엇을 했는지, 그들을 일본열도 사람들은 어떻게 대우했으며, 그들은 일본사회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를 최근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일목요연하게 풀어간다. 시대별로 쌀농사 전래, 청동기문명 전파, 철기 전파, 종교·문화적 문물의 대규모 전파 등으로 구분되는 고대 한반도 선조들의 일본열도 이주문화사는 끊임없이 흐르는 ‘하천과 같은 것’이었으며 도래인 이야기는 일본의 시작이라는 미스터리가 담긴 상자를 여는 중요한 열쇠라는 통찰로 정리된다. 저자들은 “일본이 5~6세기 고대 국가의 기반을 마련한 혁명적 변화는 기술과 기능을 지닌 사람들이 들어와 기술적 문화적 혁명을 이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도래인은 고대 일본의 국가기반을 만든 필수적인 요소였다고 짚는다.
올해 상반기 나온 중견고고학자 박천수 경북대 교수의 역저인 ‘고대한일교류사’(경북대 출판부) 역시 가야·백제·신라의 문화 전파가 4~6세기 일본 고대국가 성립의 기틀이 됐음을 고고학적 발굴 성과로 논증한 대작이다. 3~5세기 일본 열도와 인접한 한반도 남부 가야권 문화가 대일본 교류의 주축이었다가 금관가야, 대가야의 차례로 교섭 주체가 옮겨지고 이후 신라의 가야 흡수에 따라 백제로 교류의 중심이 옮겨지는 과정을 그만이 섭렵한 일본 각지의 상세한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통해 논증하면서 펼쳐나간다. 일본과는 적대적 관계로만 치부됐던 신라의 대일본 교역과 문물 교류가 통념과 달리 5세기 이래 활발하게 지속됐고 백제 멸망 뒤에는 당에 대응하는 양국의 외교적 필요에 의해 더욱 심화됐다는 사실을 일본 각지의 신라계 고분 유적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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