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킬러 문항' 없는 수능
수능시험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당국의 '사교육 경감 대책'이 처음 반영되는 9월 모의평가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연초에 발표한 시행 계획이 이렇게 중간에 수정되는 일은 전에 없던 일이어서 여러 말들이 있었고 9월 모의평가 문제에 대해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을 게다.
대학 입시가 젊은이들의 삶의 전망에 큰 영향을 미치고 또 수능이라는 한 차례의 시험이 그 대입 전형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번과 같은 소동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수능의 출제와 관리에서 최대의 난관은 언제나 형식적 공정성과 실질적 공정성이라는 상충하는 두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수능은 한편으로는 대입 기회를 공정하게 분배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수험생들을 변별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교육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공교육이 숨 쉴 공간을 넓혀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니 수험생들로 하여금 값비싼 사교육에 기대게 만드는 문항들을 출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자체는 박수 받아 마땅한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결정이 제도의 예측 가능성을 크게 훼손하는 시점에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다행스럽게도 이번 모의평가는 킬러 문항들을 배제하면서도 적절한 난이도 조절을 통해 변별력도 갖춘 시험이었다는 평가다. 일부 사교육 기관과 언론에서 최상위권 변별을 우려하는 소리가 있었던 듯하나, 일단 변별력 자체는 걱정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수능의 여러 과목에서 초고난도 문항을 제작하는 방법 중 하나는 아주 어려운 지문 또는 제재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다. 난도 높은 제재들을 골라 놓고 그것을 다듬고 단순화해서 어려움을 줄여 간다. 아마 이번 수능 출제팀은 이런 방법을 사용하기 주저될 것이다. 그러니 수험생 여러분은 너무 흔들리지 마시기 바란다. 이번 수능에서 여러분은 지문을 일별하는 순간 숨 막히게 하는 어려운 문항은 만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비교적 쉬운 지문으로 문항의 난도를 높이기 위해 전보다 더 복잡하고 미묘하게 진술될 답지들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데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연습을 해둔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런 준비를 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좀 있다.
더 좋은 소식은 이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한결같이 연초에 시행 계획이 발표되고 교육 현장이 그에 맞춰 공들여 준비해도 번번이 '물수능' '불수능' 하면서 예상을 뒤엎는 결과들이 있지 않았던가? 이번 수능은 어떤가? 적어도 킬러 문항들이 없으리라는 것은 신뢰할 만하게 예상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일로 오히려 수능의 난도에 관한 불확실성은 꽤 줄어든 셈이다.
이런 정도의 조치로 공교육만 충실히 받으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믿을 사람은 어차피 없겠으나, 이런 변화들을 통하여 공교육에 충실했던 학생들이 불리함을 겪는 일이 조금이나마 줄어가기를 바라본다.
더불어, 현재 준비 중인 2028 개편안에서는 문·이과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 문제에 대하여 좋은 해법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좋은 제도는 안정적인 제도이되 그 안정성이 널리 신뢰되는 제도라는 점을 유념하여 입시 제도의 개혁에 있어서 급한 추진보다는 예측 가능성을 해치지 않는 신중한 걸음을 당부드리는 바이다.
[민찬홍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손주에 집 물려주겠다던 할아버지의 변심…주택증여 최저 왜 - 매일경제
- 오산은 미달났는데 여기는 100대 1?…청약 불붙은 다크호스는 - 매일경제
- “굿샷보다 인증샷” 외치던 골린이들 떠나자…이 골프웨어 뜬다는데 - 매일경제
- 오늘의 운세 2023년 10월 9일 月(음력 8월 25일) - 매일경제
- “이스라엘 피의 보복 두렵다”…팔레스타인 12만명 피란행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 매일경
- “해외에서 날개돋힌듯 팔리는 이 라면”…삼양식품 ‘1조 클럽’ 눈앞 - 매일경제
- 이재용 직접 챙긴 이스라엘…불붙은 화약고에 촉각 곤두세운 기업들 - 매일경제
- 얼굴만큼 마음도 예쁘네…송혜교가 美유명박물관에 한 기특한 행동 - 매일경제
-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증시에 불똥튈까…‘이란 배후’ 여부에 달렸다 - 매일경제
- 첫 남녀 동반 노메달 수모→사령탑 모두 교체 ‘비극’…아시아 3류로 전락한 한국, 앞으로가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