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생명 구하는 파주의 AI 교통 시스템
노약자엔 보행신호 자동 연장
지하도 돌발사고 AI로 감지해
주변차에 우회로 찾으라 안내
경기도 파주는 인구(49만명)가 서울의 20분의 1이지만 면적은 더 넓다. 화재나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소방차나 구급차가 먼 거리를 달려야 한다. 그러다 보니 생명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2021년 소방차의 골든타임 확보율이 39%에 그쳐 전국 평균 66%에 크게 못 미쳤다. 파주시는 사람 목숨이 달린 이런 상황을 방치할 수 없었다. 아이디어를 짜냈다. 긴급차량이 적색 신호등에 막혀 정차하는 일만 없어도 골든타임 확보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는 863곳의 교차로를 온라인으로 연결했다. 긴급차량이 교차로를 지날 때면 자동으로 녹색 신호등이 뜨도록 했다. 운전자는 차에 설치된 단말기에 출발점과 도착점만 표시하면 됐다. 교통센터 전문가들이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신호를 척척 바꿔주었다.
그 효과는 놀라웠다. 출퇴근 시간에 긴급차량이 4.9㎞를 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11분29초에서 6분35초로 급감했다. 몇 분 일찍 도착한 덕분에 중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성과였다. 다만 파주시 혼자만 해서는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파주에는 대형병원이 없어 응급환자의 90%를 고양으로 이송한다. 이웃 고양이 함께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고양은 파주의 손을 잡았다. 무릇 좋은 건 같이 해야 한다.
파주는 횡단보도 사고도 줄였다. 노약자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채 건너기도 전에 신호등이 적색으로 바뀌면 무단횡단이 돼 사고 확률이 높아진다. 보행 사고 사망자 10명 중 6명은 65세 이상 노인일 정도다. 그러나 파주시의 '스마트 횡단보도'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달 26일 파주시 금촌 KT 사거리에 갔을 때였다. 휠체어를 탄 남성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그가 건너기 전에 신호등이 적색으로 바뀌면 어쩌나 했다. 녹색 신호등 밑에 숫자가 7, 6, 5로 줄어드는 걸 보니 절로 불안해졌다. 그런데 숫자가 1에서 멈추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이곳 신호등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마저 건너지 못하면 최대 10초간 보행 신호가 자동 연장된다. 이 덕분에 무단횡단이 50%나 감소했다.
KT 사거리에서 300m 떨어진 금촌로터리 한가운데에는 높은 장대가 있다. 그 끝에 달린 AI 카메라는 로터리를 빠져나가는 우회전 차량을 빠짐없이 감지한다. 차가 우회전하는 상황에서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있으면 '보행자 횡단 중'이라는 경고를 운전자에게 보낸다. 보행자를 보지 못해 사고를 내는 일이 없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노력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횡단보도 보행 신호가 길어지면 차량은 그만큼 오래 신호 대기를 해야 한다. 운행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목숨이 걸린 일에 속도를 너무 따져선 안 된다. AI를 활용하면 속도는 다른 방법으로 높일 수 있다. 스마트 교차로가 그런 경우다. 교차로를 지나는 차량의 종류와 대기열을 AI가 분석해 최적의 신호주기를 계산한다. 그에 맞춰 차량에 직진·좌회전 신호를 준다. 이 덕분에 차량 속도가 22초 빨라졌다.
AI로 안전과 속도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도 있다. 파주 한길지하차도를 빠져나오는데 길 한복판에 오토바이가 서 있었다. 이런 위험한 행동이 이곳 지하차도에서는 AI 카메라에 잡힌다. 역주행·정차 같은 돌발 상황은 주변 전광판을 통해 운전자에게 전달된다. 차량이 사고 현장에 몰려들어 더 큰 사고로 비화하거나 운행이 지연되는 것을 막는다.
파주시는 스마트 교통 시스템에 국비 120억원과 시비 80억원을 투입했다. 기초 자치단체가 예산을 많이 썼다는 비판도 있으나 옳지 않다. 서울 강남 같은 부유한 자치단체만 AI 시스템으로 더 많은 생명을 구한다면 너무나 불공정한 일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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