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배터리 순애보 시장님의 하소연
최근 지방에서 행사가 있어 한 지방자치단체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해당 시장은 기자를 만나자 대뜸 앓는 소리부터 쏟아냈다. 장황한 얘기였는데 압축하자면 빠르게 성장하는 배터리 기업을 지역에 유치하고 싶은데 너무 어렵다는 말이었다.
그 시장은 "기업을 유치하고 싶어도 지자체가 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중앙정부가 권한을 틀어쥐고 있으니 세금 감면도, 대학 인재 유치도, 임금마저도 특화가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1년에 발표하는 투자 규모만 수십조 원에 달하는 배터리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해외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인센티브만큼은 무슨 수를 짜내도 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자는 그 시장에게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돈을 뿌리는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요"라고 묻자 시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시장은 "미국과 우리나라의 중앙정부끼리 차이도 있지만 미국 지자체와 우리 지자체 간 재량권에서 차이가 너무나 극심하다"고 했다. 미국·캐나다는 공장 유치를 위해 주지사나 시장까지 발 벗고 뛴다. 그들이 뛸 수 있는 이유는 재량권이 있어서다. 도로, 용수, 전력망뿐만 아니라 세율을 포함해 주 정부에 많은 권한이 있으니 '○년간 법인세 면제' 같은 세제 혜택까지 적극 활용해 기업을 유치할 수 있다.
그 결과 미국과 캐나다에는 한국 배터리 기업이 수십조 원의 현금 보따리를 싸들고 공장을 짓기 위해 줄을 섰다. 임금과 공장 건설비용 등 투자비가 비싸도 더 경제성 있는 투자가 되게끔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그 시장도 기획재정부를 찾아 예산이나 세금 감면을 요청해보고, 행정안전부를 찾아가 산업 육성을 위한 조직을, 교육부를 찾아가 교육과정과 대학 개편 권한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죄다 '중앙정부에서 결정하겠다'는 회신뿐이었다고 한다.
지방 소멸이 화두로 떠오른 지 이미 몇 년이 지났고, 우리 사회는 답을 이미 알고 있다. 기업을 유치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젊은이가 찾아올 만한 대학을 만들면 된다. 이를 가로막는 건 지방 무능이 아니라 어쩌면 중앙정부의 독단일지도 모른다.
[송민근 산업부 stargazer@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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