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 속으로
쐐기문자, 아랍문자 등 55종
유물과 디지털 이미지 감상
훈민정음 해례본 꼭 봐야
한글점자 ‘훈맹정음’도 전시
“한글이 문자가 없어 사라지는 소수민족의 언어를 지킨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스’(NYT) 등 세계 주요 언론들은 그동안 한글이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의 토착어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며 한글의 우수성을 집중 보도해왔다. 세계 곳곳에 퍼지는 한류 인기 속에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도 늘고 있다. 이렇듯 한글은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은 문자이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한글을 중심으로 기원전 2100년 무렵부터 현대까지 폭넓은 시기의 각 나라 문자 자료가 전시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하 세계문자박물관)이 지난 6월29일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문을 열었다. 당시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개관식에서 “창제 원리가 분명하고 고유의 체계를 갖춘 유일한 문자인 한글이 있는 대한민국에 세계문자박물관이 건립된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세계문자박물관은 프랑스·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세계 문자 전문 박물관이다. 총면적 1만5650㎡ 규모로 지하 1층은 상설전시실, 지상 1층은 기획전시실과 어린이체험실, 지상 2층은 야외전시실로 꾸며졌다.
세계문자박물관은 소장품으로 희귀 유물을 비롯한 전 세계 문자 자료 244건, 543점을 확보했다. 상설전시 ‘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에서는 소장품 543점 가운데 136점이 공개됐으며 복제품 44점까지 총 180점을 만날 수 있다. 9개 언어로 전시를 설명하고 복제품 중 25점은 직접 만져보는 촉각 체험도 할 수 있다. 오전 10시~오후 6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한글의 역사를 한눈에 감상
지난달 26일 찾은 세계문자박물관은 10월9일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부터 인류 최초 문자인 쐐기문자, 이집트·마야·라틴·아랍 문자, 한자까지 문자 55종의 다양한 유물과 디지털 이미지를 감상하려는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상설전시실은 연대기 순으로 배치돼 있는데 관람객의 발길이 가장 많이 이어지는 곳은 한글을 소개한 곳이다. 상설전시실 지하와 1층 사이의 중층으로 이동하면 한글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한글을 ‘문자를 만든 인물과 목적, 원리를 알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문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이 문자를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1443년 세종대왕이 창제하고 1446년 반포했다. 현재 사용하는 한글 자모는 모두 24자이다. 창제 당시 자음 17자, 모음 11자로 모두 28자였지만 ‘ㅿ(반치음)’ ‘ㆁ(옛이응)’ ‘ㆆ(여린히읗)’ ‘·(아래아)’가 소실돼 현재는 자음 14자, 모음 10자만 남았다.
한글의 창제 목적과 글자 원리를 밝힌 훈민정음 해례본은 상설전시실에서 꼭 봐야 할 전시물이다.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이 밖에 보물급 고서인 ‘월인석보’ ‘청구영언’ 등도 만날 수 있다. 세계문자박물관 관계자는 “1443년 한글 창제 전후부터 현재까지 한글의 역사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곳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도 볼 수 있다. 조선총독부 산하 제생원 맹아부 교사 박두성은 한글점자의 필요성을 느껴 1926년 자음·모음·숫자 총 63자로 구성된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만들었다. 이곳에는 그의 육필 원고와 함께 훈맹정음 사용법이 전시돼 있다.
구텐베르크 성서 ‘여호수아서’ 소장
상설전시장 지하로 내려가면 여러 희귀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중 대표적인 ‘원형 배 점토판’은 기원전 2000~1600년 점토판 앞뒷면에 쐐기문자로 고대 서아시아의 홍수 신화를 기록한 문서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서양 인쇄술을 대표하는 구텐베르크 42행 성서 초판본 ‘여호수아서’ 원본이다.
유럽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한 가장 오래된 서적으로서 인쇄술 발달로 종교와 지식정보가 대중화되는 길이 열렸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1454년쯤 초판 180부를 찍었다고 알려진 가운데 그중 전 세계에 49부만 전해진다. 세계문자박물관 관계자는 “아시아권에서 구텐베르크 성서를 소장한 기관은 일본 게이오대학을 제외하면 이곳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문자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다. 위대한 발명품을 기반으로 인류는 찬란한 문화와 문명의 길을 열었다. 한번쯤 세계문자박물관에 들러 인류 역사에 어떤 문자들이 있었고 문자라는 씨앗이 어떻게 문화와 문명을 꽃피웠는지 헤아리며 또 하나의 슬기를 익혀보는 것은 어떨까.
나윤정 객원기자
감수: 김형주 상명대 국어문화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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