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비싸도 가치·경험 담긴 물건… 수공예 주목한 이유"
국내 대표적 수공예 마켓
아이디어스 2014년 설립
판매 작품수 50만점 넘어
거래액 1조원 돌파 눈앞
텀블벅·스테디오 삼각편대
창작자·고객 소통 채널로
국내작가 해외진출도 지원
지난 9일 오후 서울 강남 소재 백패커 본사. 창업자 김동환 대표의 사무실 책상 한편에 놓여 있던 가죽 가방이 눈길을 끌었다. 다소 빛바랜 황토색 가죽 외관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방 중앙에 위치한 외줄 여닫이 장식은 일반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자인이 아니었다. 이 가방에는 사연이 있다. 2012년 11월 백패커를 설립한 김 대표는 2014년 6월 핸드메이드 마켓 플레이스인 '아이디어스(idus)' 서비스를 선보였다. 사업 초기에 김 대표는 자신만의 가방을 아이디어스를 통해 만들고 싶었다. 아이디어스에 등록된 가죽공예 작가 중 한 명과 연이 닿았다. 원하는 가죽, 전반적인 디자인, 사이즈, 문양까지 자세히 주문을 넣었다. 김 대표의 개성과 가치관이 담긴 가방은 그렇게 탄생됐다. 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애용하고 있다.
이날 매일경제와 만난 김 대표는 "아이디어스에서 판매자를 '작가', 상품을 '작품'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품질이 우수하고, 고객 맞춤형 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핸드메이드의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창작자를 위한 지속가능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같은 목표는 백패커 본사 입구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그리고 목표 아래에는 아이디어스, 텀블벅, 스테디오 등 서비스명이 적혀 있다. 아이디어스는 핸드메이드 작가들의 수공예 작품을 직접 등록하고 판매할 수 있는 온라인 장터로 국내 최대다. 액세서리부터 의류, 식품까지 다양한 카테고리 작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온·오프라인 취미 교육 서비스인 아이디어스 클래스를 비롯해 오프라인 매장인 아이디어스 스토어, 소담상회(브런치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아이디어스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3만6000여 명, 판매 작품 수는 50만점이 넘는다. 2017년 4분기 500억원에 불과했던 누적 거래액은 이달 1조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텀블벅은 2011년 출시된 국내 1세대 대표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다. 백패커가 2020년 인수했다. 9월 말 기준 텀블벅을 통해 이뤄진 누적 후원 건수는 700만건, 후원 금액은 3000억원에 달한다. 패션, 만화, 게임, 리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창작자 2만7000여 명이 수혜를 받았다. 백패커가 2022년 선보인 '스테디오'는 아티스트와 창작자를 위한 월간 멤버십 후원 서비스다. 출시 1년 만에 1000여 명의 창작자가 스테디오에 모였다.
백패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수공예 시장 규모는 10조5000억원이다. 업계 종사자와 사업체는 각각 31만7000명, 10만4000개에 이른다.
김 대표가 아이디어스에서 텀블벅, 스테디오로 이어지는 '삼각편대' 서비스를 구축한 것은 창작자와 고객이 소통하고 후원으로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창작자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모델은 해외에서 성공 사례를 엿볼 수 있다. 미국에서 창작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3대 서비스는 엣시(핸드메이드 마켓 플레이스), 킥스타터(크라우드 펀딩), 패트리온(크리에이터 정기 후원 서비스)이다. 특히 엣시는 아마존, 이베이, 월마트 다음으로 규모가 큰 수공예 전문 전자상거래 업체다. 김 대표는 "창작자들이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판매할 수 있는 장터가 있어야 하고, 대중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 수 있는 지원 채널이 있어야 한다"며 "우리는 크리에이터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들을 하나로 모아 창작 밸류체인을 수직 통합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특히 전자상거래의 트렌드와는 다른 사업 모델로 승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제품보다는 가격과 빠른 배송 등을 무기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지만 우리의 제품은 대량 생산되는 공산품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고 배송도 느리다"며 "하지만 창작가가 정성을 들여 수작업을 통해 만든 '작품'이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객은 자신의 니즈를 창작자에게 주문하며 소통하는데 그 과정에서 가치, 경험, 추억, 감성을 느끼고 나눌 수 있다"며 "창작자 생태계의 에코 시스템은 소비자가 제품·서비스 제작에 참여하는 '프로세스 이코노미(Process economy)'가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국내 창작자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 4월 아이디어스 글로벌 버전을 내놓았다. 국내 서비스와는 분리해 독립 운영한다. 전 세계 50여 개국 소비자들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기존 아이디어스 국내 작가는 별도 가입 없이 글로벌 앱 입점이 가능하며 첫 매출 20만원까지는 판매 수수료를 면제받는다. 특히 아이디어스는 글로벌 마켓 입점 작가들에게 △직접 운영 중인 국내 물류 창고에서 합배송부터 수출입통관 해외배송까지 전 과정 대행 △합리적인 비용에 고품질 번역 지원 △국내 리뷰 무료 번역 후 아이디어스 글로벌 연계 등록 등을 제공한다. 김 대표는 "그동안 미국, 싱가포르, 홍콩, 대만, 일본 등의 고객들이 팔찌, 반지 등 패션 액세서리를 비롯해 홈리빙 상품들의 구매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이들 국가를 중심으로 사업 외연을 넓히고 있다"며 "추후에는 해외 핸드메이드 작가를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이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다양한 지원도 하고 있다. 작품 제작 공간인 크래프트랩(Craft Lab)을 만들었고, 제품 제작에 필요한 원·부자재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기 위해 물류 창고도 운영하고 있다. 또 작가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매년 핸드메이드 어워드를 시상 중이다. 김 대표는 "대중에게 창작자의 작품을 끊임없이 소개하고 일상에 특별함과 새로움, 설렘의 문화를 더하는 지속가능한 시장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전했다.
[김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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