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한국, 1960년대가 아니라 1860년대로 가고 있다”[여성학자 묻고 경제학자 답하다]

임아영 기자 2023. 10. 9. 15:5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노동시간 늘릴까, 어떻게 하면 그나마 일궈온 성평등을 뒤로 돌릴까, 어떻게 하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 데려와 3등 시민으로 만들어서 착취할까 생각하는 건 19세기에나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장하준)
장하준 런던대 교수가 지난 6일(현지시간) 신경아 한림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한국은 1960년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1860년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통계를 작성해 온 이래 회원국 중 가장 큰 성별 임금격차를 가진 국가다. 신경아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이 문제에 대응해온 곳은 여성 운동 이외에는 찾아보기 어렵고 한국의 경제학자들 중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내놓은 학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올해 출간한 <경제학 레시피>에서 여성의 일과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저평가를 다뤘다. 두 사람은 노동시장에서의 젠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적인 진단이 중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루며 지난달 28일 줌을 통해 만나고 지난 6일(현지시간) 장 교수의 런던대 연구실에서 본격 대담을 진행했다.

장 교수는 정부의 성평등 정책의 후퇴가 단순히 여성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에서 왜 중요한지 설명했다. 그는 ‘외국인 가사 도우미 수입’ 논란에 대해서 “50명 중 꼴등(한국)하는데 49등(홍콩, 싱가포르)하는 아이 공부법 따라하겠다는 것”이라며 “기왕 따라하려면 1등 하는 아이(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 공부법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성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와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한 중요한 고리라고 강조하며 “한국의 젠더 문제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됐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여성의 경력단절, 유리천장, 성별 임금격차는 여성에게만 문제인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오랫동안 여성 노동 문제와 노동시장의 성별 불평등에 관한 연구를 해왔고 스웨덴 성평등 정책의 핵심인 ‘평등한 노동’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연구년에 스웨덴을 찾았다. 장 교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약자들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온 거시경제학자로 1990년 한국인 최초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임용되어 경제학과 교수로 근무했으며, 2022년부터 런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3년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군나르 뮈르달 상을, 2005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바실리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로 수상했다. 대담 전문을 정리했다.
장하준 런던대 교수(오른쪽)와 신경아 한림대 교수가 지난 6일(현지시간) 장 교수의 런던대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경아 교수 제공

신경아 한림대 교수(이하 신) : 한국 노동시장에서는 성별 임금격차와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30%가 넘는 성별 임금격차는 OECD 회원국 중 1위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요. 한국의 경제학자들 중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내놓은 분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올해 발간하신 <경제학 레시피>에서 여성의 노동, 돌봄노동 문제를 다루고 계신데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되신 배경은 무엇인가요?

장하준 런던대 교수(이하 장) : 사실 제 처가 쓰라고 시켜서 쓴 건데요.(웃음) 저도 23세였던 1986년에 영국에 유학을 왔는데 그때까지는 한국의 가부장제를 당연시 여기고 살았죠. 영국도 옛날에는 성차별이 엄청났고 지금도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하면 평균 이하인 나라긴 하지만 그 당시 한국에 비해서는 평등했기 때문에 문화적 충격이 있었어요. 제 처는 한국에서 동시 통역사로 훈련을 받았는데 1996년 결혼 이후 영국에 오니까 할 일이 없었죠. 제 처가 훈련받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장도 없는 나라에 데려와서 말하자면 제가 커리어를 망쳐버린 거죠. 같이 살면서 싸우기도 하고 얘기도 많이 하면서 가부장적인 제도 속에서 여성들이 너무나 구조적으로 차별받고 억압받고 있구나를 느끼게 됐죠.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세탁기가 인터넷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는 얘기를 썼는데 사실 이 얘기를 처음 한 사람은 제 처였어요. 집에 세탁기가 고장 나서 빨래를 욕조에 넣고 같이 발로 밟으면서 빨래를 하다 처가 얘기를 했고 제가 그를 뒷받침하는 경제이론과 통계들을 집어넣은 것이지요.(웃음) <경제학 레시피>를 쓰고 있을 때는 처가 맨날 말로만 젠더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지 말고 경제학적 시각에서 꼭 쓰라고 얘기를 해줬어요.

: 여성운동사에서 존 스튜어트 밀 부부가 생각납니다.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청년이던 시절 정신병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해리에트라는 여성을 만나 안정을 찾고 지적인 작업을 해나갈 수 있었는데요. 후에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는데, 밀은 책 서문에 자기 작업의 많은 부분은 난롯가에서 둘이 함께한 토론의 결과라고 썼지요. 남성들은 돌봄노동이나 젠더 문제에 대해 직접 경험하기보다는 가까운 여성들의 삶을 지켜보고 경험을 공유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것 같습니다.

: 저도 가사노동을 많이 한다고는 하는데 가부장적인 문화와 제도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가사노동에는 인지노동(cognitive labor), 집안일을 계획하는 정신노동이 많잖아요. 여성의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자는 사람들도 그 가치를 추산할 때 가사도우미를 고용했을 경우 얼마가 드는지로 환산하거든요. 인지노동을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소평가된 것입니다. 특히 한국은 명절, 친척들 경조사 등 인지노동의 영역이 큰데 가사도우미들은 그런 일은 맡지 않거든요. 수면 위로 안 떠오르는 빙산처럼 보이지 않는 노동이 많지만 사회 구조가 가부장적으로 돼 있으니 인정받지 못하는 거죠.

장하준 런던대 교수가 지난 6일(현지시간) 장 교수의 런던대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경아 교수 제공
경제학이 성별임금격차 문제를 못 담는 이유

: 경제학에서 여성의 노동, 돌봄 노동 이슈를 잘 다루지 않고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게 된 것은 가부장적인 사회 제도와 문화 때문일까요?

: 두 가지가 섞여 있는데요. 먼저 경제학적으로 보면 시장이 모든 것의 가치를 정해야 한다는 시장주의와 신자유주의, 좀 더 넓게 말하면 신고전파 경제학이 이유입니다. 많은 돌봄노동이 시장에서 거래가 되지 않으니 아예 가치없는 것이 되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돌봄노동도 1원 1표라는 시장의 원리에 따라 그 가치를 제대로 안 쳐주는 거죠. 더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이전,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한때 넘어서보겠다 했던 사회주의에서도 가부장제가 지속됐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거죠.

: 경제학은 사회학 등 다른 사회과학 분야에 비해 여성 학자나 교수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사회학도 학부나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지만, 여성 교수는 30%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국 대학 경제학과의 여성 교수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장 : 제가 있는 곳은 런던대 ‘소아스(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인데 영국이 식민지 관리들을 키우려고 만든 학교입니다. 지금은 반제국주의 사회과학의 중심지가 되었죠. 그래서 이 학교는 상당히 진보적이라 경제학과의 여자 교수 비율이 40%입니다. 그렇지만 옥스퍼드, 캠브리지,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를 보면 20% 안팎이에요. 요즘 주류 경제학이 중세 카톨릭 신학이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체제 정당화 학문이기 때문에 체제 순응적인 거죠. 그런 학문을 해야 잘될 수 있고 저처럼 소위 말하는 비주류 경제학을 하면 싫어하거든요.(웃음) 이런 구조다 보니 지금 체제에서 중요한 기둥 중 하나가 가부장제인데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살아남기가 쉽지 않죠.

최근 논문을 발표했는데 통계를 보니 미국 대학 경제학과의 경우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 비율이 줄어서 박사과정은 30~35% 되는데 조교수는 25~30%, 부교수는 15~20%, 정교수는 10%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주류 경제학의 체제 순응성이 큰 문제이고 여성들은 숫자 다루는 일을 잘 못한다는 문화적인 편견도 여전히 있고요. 문제는 비슷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면 내부 성차별이 심해진다는 거죠. 2009년 엘리노어 오스트롬(Elinor Ostrom)이란 여성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을 때 일인데, 발표 직후 미국의 경제학 박사과정생들이 정보 교환 사이트에서 올린 코멘트를 보면 70~80%가 ‘여자라서 탔잖아’라는 식이었어요.

: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형평성을 고려한 조치들, 할당제나 적극적 조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할당제 필요하죠. 물론 분야에 따라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는 달라지겠죠. 중요한 것은 구조적·역사적으로 여성들이 불이익을 계속 받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소위 이대남(2030 남성)들이 여자들이 군대 안 가는 것에 대해 불만 가지는 것과 장애인에게 엘리베이터 만들어주는 걸 특혜라고 얘기하는 것이 비슷한 거예요. 장애인들에게 세금으로 비싼 엘리베이터를 왜 만들어야 하나, 여자라고 군대도 안 가는데 나보다 왜 더 커리어를 좋게 시작해야 하는가 생각을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만 본 거예요. 구조와 역사를 제대로 알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얘기죠.

신경아 한림대 교수가 지난 6일(현지시간) 장하준 런던대 교수의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신경아 교수 제공
성별임금격차는 이제 ‘생산성’의 문제다

: 스웨덴에 와보니까 이 사람들은 ‘피프티 피프티(50 대 50)’가 입에 뱄어요. 모든 걸 똑같이 한다는 건데도 스웨덴 여성들이 불만이 있어요. 저는 한국 분들이 다 한번 와서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여성들이 일을 많이 하는데도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30%인데 한국 여성들이 속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 스웨덴은 성별 임금격차가 7.3%, OECD 평균이 11.9%, 한국은 33.1%이나 됩니다. 아주 격차가 작은 나라도 있는데 벨기에 1.2%, 콜롬비아 1.9%, 코스타리카 1.4%예요. 성별 임금격차는 불공평한 것일 뿐 아니라 엄청나게 비생산적인 것이죠. 우리나라 여성들 교육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요. 임금격차는 같은 일을 하는데 남자들에게 돈을 더 많이 주는 요인도 있지만, 여자들이 승진이 안 된다든가, 좋은 직장에서는 안 받아준다든가 등의 요인도 있죠. 그결과 여자들이 많이 교육받은 부분을 낭비하는 거예요. 여자라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보다 못한 일을 주면 지식을 낭비하게 되고 여기에 경력단절까지 되면 여성들이 일하면서 쌓은 암묵지(경험을 통해 쌓이는 지식)가 그냥 공중에서 분해되는 거예요. 이제 여성들을 차별하는 게 불평등하다는 걸 넘어 경제의 생산성에 엄청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는 점을 봐야 합니다.

: 노동시간 문제에 대해 얘기해 보죠. 여성들은 사실 임금도 문제지만 노동시간이 길다보니 아이를 낳았을 경우 육아 문제로 버티기가 어렵죠. 오래 일할 수 있는 남성을 기준으로 노동시간이 짜여져 있기 때문인데요. 한국 고용주들은 우리나라 발전 모델을 봤을 때 독일, 스웨덴처럼 노동시간을 줄이면 추락할 수 있기에 쉽지 않다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생산성은 고용주와 사회 체제가 만드는 거예요. 개인이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서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부분은 비율상 아주 낮습니다.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 일하던 엔지니어들이 독일이나 스웨덴으로 이주하면 생산성이 높아집니다. 일하는 기계, 기술이 좋아지고 노동자 교육, 사회제도 모두 잘 돼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지리아에서 3천불 받다가 스웨덴에서 7만 불 받게 되는 것이 노동자가 갑자기 20배 이상 똑똑해진 건 아니잖아요. 노동자의 생산성은 대부분 기업이 어떤 기계를 사고, 어떤 연구 개발을 하고 어떤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고용주들이 그런 불평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돼요. 노동시간 좀 더 늘려서 생산성이 증가하는 부분은 5%도 안 됩니다.

장하준 런던대 교수가 지난 6일(현지시간) 장 교수의 런던대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경아 교수 제공
아직 먼 다양성…영국 3대 노조 사무총장 ‘여성’

: 스웨덴 고용주들은 다양성(diversity)에 민감합니다. 누구든 능력 있는 사람들을 많이 써서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다양성 개념을 일찍부터 들여왔어요. 대학에서도 어떻게 하면 다양한 학생들을 뽑을까 애를 많이 쓴다고 해요. 한국은 고용주든 정부든 다양성에 대해 관심이 없죠.

: (한국의) 경제 발전 단계와 관계가 있습니다. 똑같은 물건을 빨리 많이 팔아서 돈을 버는 시대에는 티셔츠 몇 장을 파는 게 중요했죠. 군부독재식으로 일사분란하게 다같이 움직이는 게 효과가 어느 정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가 중요하고 급변하는 트렌드에 따라 제품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다양성이 있어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혁신이 잘 될 수 있거든요.

: 한국 사회는 아직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합니다.

: 미국 실리콘밸리에 이민자 출신들이 굉장히 많은 걸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성별, 계급, 인종은 말할 것도 없고 출신 배경과 전공 등이 다른 사람들을 섞어 놓고 의도적으로 자극하고 싸우기도 하다가 생각하지 못했던 걸 찾아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생각이 달라지는데 그 생각이 다양해져야 한다는 뜻이죠.

: 한국은 노동조합도 다양성의 측면에서 갈 길이 멉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 성평등 문제에 소극적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여성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점차 관심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표나 임원 등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위치에는 여성들이 올라가기 어렵습니다. 영국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 영국은 자본주의의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까 노조가 많습니다. 노조의 전국연합체인 TUC (Trades Union Congress)의 사무총장이 여성이고 현재 5대 노조 중 3대 노조의 사무총장이 여성이에요.

차별의 경로의존성 깨려면 ‘국가 개입’이 핵심

: 그동안 제가 한국에서 인터뷰를 해온 여성들 중에는 좋은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도 경력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많아 늘 안타까웠습니다. 한 매니저급 여성은 새벽에 비행기 타고 뉴욕에 가서 프로젝트 따내고 밤에 돌아오는 식으로 일했지만 2008년 경제위기 때 잘렸습니다. 그때 회사는 다른 매니저들은 모두 남성인데 가장을 어떻게 자르냐고 했다 합니다. 다른 분은 CEO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분인데 임신하게 되자 회사에서 좀 쉬운 자리로 가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합니다. 그 결과 낮은 수준의 업무를 오히려 더 긴 시간 하게 됐죠. 그 회사들은 왜 유능한 여성들을 밀어냈을까요?

: 회사 전체에서 다수는 남성이고 힘을 쥐고 있는 쪽도 남성이죠. 그들의 시각이 가부장적인 문화와 제도 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보니까 그들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남기는 거죠. 숫자로는 다수일지 모르지만 일부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망치는 거라고 봅니다. 미국에는 ‘인종차별하는 회사가 생산성이 낮다’는 연구가 많습니다. 적재적소에 인재 채용을 하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밀턴 프리드먼 같은 극단적 시장주의자들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금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내버려두면 그런 회사는 망할 거라는 건데 그분들이 못 본 게 있어요. 이런 구조는 단순히 개별 기업이나 고용주 개인의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시스템이 그러한 차별을 받쳐주고 있는 거죠. 기업과 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큰 구조를 보지 못하는 겁니다.

장하준 런던대 교수(오른쪽)와 신경아 한림대 교수가 지난 6일(현지시간) 장 교수의 런던대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경아 교수 제공

: 한국 몇몇 기업들이 의지가 있다고 해도 전체적인 사회 구조가 성차별하는 경로의존성이 있어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구조에 균열을 내려면 국가의 노력이 중요해 보입니다.

: 맞습니다. 일시적으로라도 충격을 줘서 경로를 바꾸는 게 필요합니다. 차별은 구조적인 것이라 시장에 맡겨서는 해결이 안 됩니다. 극단적인 예로 코로나19 팬데믹 때 한쪽에서는 수백만명이 약이 없어서 죽어가는데 다른 한쪽에서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 같은 억만장자들은 우주탐험 경쟁을 했잖아요. 이게 시장이기 때문에 차별 문제는 시장에 맡겨서 해결되지 않아요. 국가 개입이 중요할 수밖에 없고 그다음에 노조와 시민단체 등에서 집단행동을 이어가야죠. 정부가 계획을 통해 사회의 관행과 제도를 바꿔가지 않으면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 스웨덴에는 옴부즈만 제도가 있습니다. 정부 기구에 성차별 전문가가 있어서 기업의 문제를 계속 찾아내고 조사하고 고발합니다. 정부가 직접 노동에 관한 차별을 시정하는 거죠. 한국 고용노동부에는 성차별 시정 기능이 거의 없습니다. 정부가 차별을 예방해야 하고 관련 사건이 벌어졌을 때 조사하고 기업을 처벌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변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콜센터 노동자 차별이 ‘국가 책임’인 이유

: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한국 정부는 ‘필수노동자’를 지정했습니다. 간호·간병·요양보호·보육·장애인 지원과 같은 돌봄 노동자와 콜센터 상담 노동자들이 60% 이상을 차지했는데 대부분 여성들이었습니다. 최근 몇몇 금융 기업들이 콜센터 노동자들에게는 성과급을 주지 않아 노동자들이 파업을 선언했는데요.

: 외주화로 임금을 깎고 노동조건을 악화시켜온 게 지난 40년간 신자유주의의 주요 무기였습니다. 한국은 90년대 말 외환위기부터, 미국은 80년대부터 시작했죠. 지금 대부분 국가를 보면 국민소득에서 노동 소득 비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노조가 약화돼 노동자의 협상력이 줄어든 영향도 있고 미국·영국 같은 국가들은 제조업을 등한시해서 질 좋은 일자리들이 없어진 이유도 있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 관행이 바뀐 거죠. 과거에는 경비원부터 조리사까지 포드면 포드, 뱅크 오브 아메리카라면 뱅크 오브 아메리카 직원으로 대접을 받았지만 이제 고용주들이 보기에 중요하지 않은 직업들은 다 외주화하면서 노동 조건이 악화된 겁니다.

콜센터 노동 문제는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의 질 관점에서도 봐야 해요. 과거에는 은행 지점들이 많았고 지점에 가서 얘기하면 친절하게 응대했지만 요즘은 지점도 줄어들고 물어볼 곳이 없어졌어요. 여러가지 조건들을 붙여서 은행들은 여전히 돈을 벌지만 고객들은 불편해진 거예요. 외주화를 완전히 없앨 순 없겠지만 최대한 제한해야 하고 외주화를 하더라도 외주 회사 노동자들의 대우를 정부에서 규제해야 합니다.

: 콜센터는 여성들이 주로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외주화의 대표적 직종이 되어 왔어요. 이러한 콜센터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대우는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노동 유연화 전략이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별에 대해서도 국가의 책임을 더 강조해야 합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금융권 콜센터 상담사들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총파업 돌입 결의대회에서 성과급 지급과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1960년대가 아닌 1860년대로 가고 있다”

: 최근 한국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정책 중 하나가 ‘외국인 가사도우미 수입’입니다. 필리핀의 여성 가사노동자 100명을 입국시켜 맞벌이 가정에 파견한다는 내용입니다. 임금이나 노동조건, 세제상의 형평성은 물론, 돌봄노동의 가치평가를 둘러싼 반론이 여성계와 노동계에서 제기되고 있어요.

: 지금 이 정책을 주장하는 측이 가장 많이 드는 예가 홍콩, 싱가포르거든요. 홍콩은 합계출산율이 0.8명, 싱가포르도 1.0명밖에 안 됩니다. 정책 입안자들이 제대로 공부도 안 하는 거예요.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아, 뭐 싱가포르 가보니까, 두바이 가보니까 그러던데?’라는 식이죠. 좋은 정책을 펼치고 싶다면 제대로 공부해서 선진국이면서도 출생률이 높은 나라를 따라 해야죠. 스웨덴, 덴마크는 1.7명이고 네덜란드, 독일은 1.6명 정도잖아요. 자기가 반에서 50명 중 꼴등 하는데 49등하는 아이 공부법을 따라 하겠다는 거거든요. 기왕 따라하려면 1등 하는 아이의 공부법을 따라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나라 정책 입안자들의 시야가 얼마나 좁은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런 점에서 스웨덴 성평등 정책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거리 곳곳에서 유아차를 미는 아빠들의 모습을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정부가 남성의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한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제가 만난 거의 모든 분들이 말하더군요.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7월 31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열리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 사업에 대한 공청회에 참석해 시범 사업 추진을 강행하는 정부를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김창길기자

: 최근 한국 상황에 대해 어떤 분이 ‘1960년대로 돌아가려는 거 아니냐’고 하길래 제가 ‘이건 1960년대가 아니고 1860년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어떻게 하면 노동시간 늘릴까, 어떻게 하면 성평등을 뒤로 돌릴까, 어떻게 하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 3등 시민 만들어서 수입해다가 착취할까? 정말 19세기에나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완전히 병든 사회예요. 이를 바꿔내지 못하면 사회적인 문제도 크겠지만 경제적으로도 점점 더 침체될 수 있어요. 고령화가 문제가 아닙니다. 기술을 개발하고 생산성을 높이면 젊은이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던 것을 이제 0.5명, 0.2명이 할 수도 있거든요. 꼭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닌 거예요. 물론 출생률이 낮다는 것은 성차별 구조, 복지 부재, 교육 문제 등 병리적인 현상들의 증후군인 것이니 고쳐야 하죠.

경제를 창의성과 다양성으로 더 높은 수준으로 끌고 나가는 방향으로 잡아야 합니다. 그게 잘 안되니까 자꾸 1860년대로 돌아가려고 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공장에서 15시간씩 초과수당도 안 받고 일했는데 그러면 나아지지 않을까, 어디서 싼 노동력 들여다가 메꾸면 안 될까 이런 생각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고 시각을 완전히 바꿔야 해요. 성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와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굉장히 중요한 고리입니다. 한국의 젠더 문제가 단순히 사회 정의와 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정치권이 방향을 잘 잡아가지 못해서 걱정이 큰데 그래도 희망을 찾아가야겠죠.

: 그런 말이 있지요? 동이 트기 전에 제일 어둡다고요. 저는 지금 한국이 그런 시기라고 믿고 있어요. 저는 역사의 방향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정부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페미니즘을 억압하지만, 계속 싸워서 바꿔야 된다고 생각해요. 민주화도 그렇게 한 거 아닙니까? 그 시대는 다른 면에서 더 억압이 심하던 시대였잖아요. 그것도 넘겼는데 저는 이 시기도 넘길수 있다고 생각해요.

: 오늘 교수님과의 대화가 동트는 시기를 좀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임아영 젠더데스크 laykn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