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이어 부산 입성한 유선희 “韓 문화 담은 소주 장면 보여줄 수 있어 기뻐” [인터뷰]
난니 모레티 ‘찬란한 내일로’ 로 데뷔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탈리아 거장 난니 모레티의 영화 ‘찬란한 내일로’엔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국면 전환’엔 소주만한 것이 없다. 거장 감독 역시 이를 간파했다. 영화에선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는 이 장면은 한국인 통역사로 출연하는 배우 유선희가 주도한다.
“촬영을 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서와 친근함을 담은 이 모습이 유럽에서도 알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가 부산에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 장면을 모국에서 보여줄 수 있어 너무나 기뻐요.”
유선희(40)는 ‘늦깎이’ 신인 배우다. 본업은 피아니스트. 생애 처음으로 출연한 영화로 그는 올 한 해 세계적인 영화제의 ‘단골 손님’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에 거주하고 있는 유선희는 8일 전화 인터뷰에서 “칸 영화제는 얼떨떨한 상태로 방문해 꿈만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부산은 아무래도 모국이어서 그런지 기대와 설렘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제엔 당초 유선희가 영화의 대표로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이 기간 동안 음반 녹음이 결정돼 한국을 찾지 못했다. 모레티 감독은 차주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작업하는 연극 무대가 개막 예정이라 불가피하게 한국에 오지 못했다.
모레티 감독의 신작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와 당대 정치사가 촘촘히 얽힌 작품이다. 1950년대 러시아가 헝가리를 침공한 당시를 배경으로, 영화감독 조반니(난니 모레티)가 자신의 ‘역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는다. 유선희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키를 쥔 인물”로 출연한다. ‘칸 영화제’ 상영 당시 반응이 뜨거웠다.
그는 “칸에 갔을 때 유명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12분 넘게 박수를 받아 함께 참석한 배우, 스태프 모두 울었다”며 “감독님도 약간 눈물을 글썽일 만큼 감동적이고 가슴 벅찬 경험을 해서 이번 부산에서의 반응이 너무나 궁금하고 기대된다”고 말했다.
올 한 해 유선희의 삶을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세 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예원학교에 다니다 열네 살에 이탈리아 산차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난 이후 유럽에서 피아니스트로의 삶을 살아왔다. 영화배우로 데뷔한 것은 팬데믹 시기를 보내며 마주한 삶의 변화 때문이었다.
“어쩌면 몇 년 전 이런 권유가 왔다면 전 음악을 하는 사람이니 할 수 없다며 거절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팬데믹이 당도하고 예술계는 아무 것도 못하는 전멸 상태가 이어졌어요. 그러다 에이전시의 영입 권유를 받아들였고, 2021년에 오디션을 본 뒤 2022년 초부터 모레티 감독의 영화 촬영을 하게 됐어요.”
모레티 감독과의 촬영을 마친 이후, 그는 신인 배우 답지 않은 ‘광폭 행보’가 이어졌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장편, 단편 영화를 한 편씩 촬영했고, 미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의 촬영도 끝내 올 연말 모두 공개된다.
유선희는 “우연한 기회에 하게 된 도전이 이렇게 큰 일로 이어질 지는 몰랐다.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흥미로움이 있다”면서도 “그런데 사실 음악과 연기를 병행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고 두 분야가 서로 다른 에너지와 시간을 필요한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다림의 연속”인 배우라는 직업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음악가로의 활동을 동시에 하는 일이 수월하진 않았다. 배우 유선희의 강점은 음악가로서 오랜 시간 자신의 감정과 해석을 다뤄왔다는 점이다. 그는 “연기와 음악 모두 표현의 예술이라는 점이 닮았다”며 “감정적으로 빠져들고, 감정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것이 어릴 때부터 음악을 통해 얻어져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고 했다. 다양한 지휘자들과의 협연 경험은 영화 현장을 지휘하는 감독의 지시와 요구에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간 솔리스트로 활동하다 보니 혼자 준비하고 연주하는 것이 익숙했어요. 세트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일이 생소했는데, 다 함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팀워크를 다지며 공동체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제겐 큰 배움이었어요.”
신인 배우로 정신없는 한 해를 보내온 유선희는 이제 본업으로 돌아간다. 영화 개봉과 드라마 공개를 앞두고 그는 음반 녹음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제럴드 핀지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연곡’ 녹음이 시작이다. 이 곡은 이탈리아 지휘자 플라비오 에밀리오 스코그나(Flavio Emilio Scogna)와 함께 녹음한다. 유선희는 “내 연주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연주 스타일과 프레이징(선율을 악구 단위로 구분해 연주하는 기법)이 마음에 든다며 함께 해보자고 권유해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 1월에도 또 다른 음반 작업이 예정돼있다.
“지난 일 년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어요. 사람의 일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하루하루가 언제나 즐겁기만 한 것도, 그렇다고 힘들기만 한 것도 아니더라고요. 영화 ‘찬란한 내일로’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해요. 각자의 삶을 살면서 많은 어려움을 만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은 찬란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는 내용이에요. 모국의 관객들과 내일은 무언가 새로운 하루가 될 거라는 기대와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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