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유족회 “경찰 허위기록으로 피해자 두번 죽이지 마라”

고경태 2023. 10. 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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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진실화해위 1소위서 영천·진도 사건 재심의
9월26일 전체위에서는 “적대세력 부역자”로 규정
지난 9월19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앞에서 열린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집회에 참석했던 김만덕 영천유족회장(왼쪽서 두번째). 그 오른쪽이 윤호상 피학살자전국유족회 회장이다. 고경태 기자

“만약 이것이 (부역자로) 통과되면 영천 뿐만 아니라 전국의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살인자 및 부역 혐의자가 되고 맙니다. 우리 유족은 이것만은 절대 막기 위해 호소드립니다.”

9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영천유족회(회장 김만덕)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제1소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호소문을 발표했다. 10일 오전 10시에 열리는 1소위에서는 지난 9월19일 소위 때 전체위원회 상정을 보류했던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과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을 재심의한다.

두 사건은 담당 조사과에서 보고서 작성을 완료해놓고도 소위 상정과 의결을 5개월 넘게 보류해 논란이 돼왔다. “부역자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이옥남 상임위원(제1소위원장)이 1979년 경찰이 작성한 대공인적위해자조사표 등 사찰자료에 적힌 ‘살인’ ‘암살대원’ 의 문구를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이 처형사유는 아무런 근거가 제시돼 있지 않다. 신문자료나 수사기록, 재판기록은 물론 단 한 줄의 부연설명도 없다. 그럼에도 이 상임위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공적자료는 신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영천유족회는 호소문에서 “(1950년 7~9월 보도연맹 학살 이후) 30년이 지난 1979~81년에 당시 가해자 경찰이 학살을 정당화 책임회피하기 위한 사찰 기록을 허위로 기재하여 (이에 따라 부역자를 판단하는 것은) 피해자를 두번 학살하는 천인공노할 사건이다. 이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만덕 회장(82) 등 영천유족회원 4명은 10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진실화해위 앞에서 열리는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와 과거사단체 집회에 참석해 호소문을 낭독할 예정이다.

추석 직전인 9월26일 오후 열린 진실화해위 제63차 전체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한 9월19일 1소위 결과가 처음 공개되기도 했다. 이날 각 국별 소위 보고에서 황인수 조사1국장은 “9월19일 59차 1소위에서는 의결 안건 17건이 상정되어 원안 의결 14건, 수정 의결 1건, 보류 2건을 의결하였다”며 “(보류 2건은) 적대행위 부역자와 관련된 것으로 보완조사가 필요하거나 희생자 포함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는 영천·진도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 진실규명 신청건수로는 총 40건이다. 이중 문제가 된 경찰 사찰기록이 나온 건수는 10건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국정원 3급 간부 출신 황인수 조사1국장은 ‘적대행위 부역자’라는 단어를 썼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부역자’로 이미 규정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소위 참가자들의 회의 발언록에도 모두 ‘적대행위 부역자’로 통일돼 있었는지, 야당 추천 이상희 위원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때 보류되신 분들이 적대행위 부역자인지 여부도 불분명한 상황인데 (내가) ‘적대행위 부역자’라고 말한 것처럼 돼 있다”는 취지였다. 이 위원은 “‘적대행위 부역자’가 아니라 ‘그날 올라오지 않은 진실규명 대상자’라고 표현해달라”고 요구했다.

10일 1소위에서는 영천·진도 사건에 관해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진실화해위의 한 관계자는 “각하하거나 전체위 상정되거나 둘 중 하나다. 전체위에 상정되어도 여야 추천 위원간 표결에 부쳐져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각하될 경우 ‘조사대상 범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단이기 때문에 유족들로서는 향후 재판 등에서도 더 불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옥남 상임위원이 공적자료로서 신뢰하고 있는 영천경찰서의 ‘대공인적위해자조사표’ 처형자 명부는 1950년 당시 9살이었던 정립분에 대해 ‘10·1 당시 요인 암살·방화 등 행위한 자. 1950. 7. 1 처형’으로 기록해 신뢰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부역자’는 통상 1950년 인민군 점령기에 이들에게 협조한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진실화해위에서 ‘부역 혐의자’는 즉결처분 당한 희생자를, ‘부역자’는 법원 재판을 통해 부역 혐의가 확정된 주민을 가리켜왔다. 부역자 처리지침을 만든다는 건 당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즉결처분 당한 ‘부역 혐의자’ 중 누가 ‘부역자’인지 진실화해위가 판정해 진실규명 여부부터 재검토하겠다는 뜻으로 여겨져 반발을 사왔다.

또한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좌익 전향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관변단체다. 군경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에 동조할 것이라는 막연한 우려 속에 이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19일 1소위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영천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경우 부역혐의 희생이 아닌 사건 중에서 처음으로 희생자를 부역자로 판단하는 사례가 될지 주목된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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