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커스터마이징' 시대…인류 미래 바꿀 합성생물학 [강경주의 IT카페]
세포 프로그래밍으로 5차 산업 혁명 촉발
암 치료 등 인류 난제 해결할 '꿈의 기술' 불려
"합성생물학 경제효과 30조달러(4경원) 이를 것"
빌 게이츠, 캐시우드 등 투자자도 앞다퉈 투자
미국 앞서가는 가운데 중국 추격 거세
대한민국은 합성생물학 육성 걸음마 단계
"국가 명운 걸고 바이오 파운드리 만들어야"
"미국 따라가기보다 한국 잘하는 분야 특화해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릿지 켄달스퀘어 중심에 위치한 매사추세츠공대(MIT) 뮤지엄 2층 전시실.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핑크색 털을 두른 핑크닭이 나타나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인류가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낼 새 지질시대, 즉 '인류세'를 비판하고자 전시된 조형물이다. 닭을 지나치게 많이 소비하는 인류의 식습관 때문에 닭뼈와 깃털을 핑크색으로 만들면 훗날 인류가 존재한 현시대의 지질층이 핑크 무늬를 띌 것이라고 풍자한 작품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 핑크닭을 실제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합성생물학을 적용한다면 말이다.
합성생물학 창시자 제임스 콜린스 MIT 교수 연구실을 가다
MIT에는 미래를 바꿀 기술로 불리는 합성생물학의 창시자 제임스 콜린스 교수의 연구실이 있다. IMES(MIT 의료공학 및 과학연구소)라는 소박한 명패가 붙어 있지만 이곳은 미국의 '바이오 안보'를 굳건히 하기 위한 최전선이다. 겉으로 봤을 때 여느 실험실과 다를 바 없지만 내부 분위기는 삼엄했다. 랩마다 수십 명의 연구원들이 최첨단 기기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쉴 새 없이 시뮬레이션하고, 이를 바탕으로 화학 약품 앞에서 실험과 기록을 반복하는 모습은 취재진이 합성생물학의 최전선에 와있음을 실감케 했다.
자신의 연구실을 언론에 처음 공개한 콜린스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합성생물학은 유전자를 자유롭게 융합하는 '편집 공학'"이라며 "유전자 일부를 수정하는 유전학을 뛰어넘는 개념"이라고 입을 열었다. 합성생물학이란 인공적으로 생명체의 세포를 설계·제작·합성하는 기술로, 합성생물학은 유전학에 정보기술(IT)을 결합해 DNA 단백질 같은 생명체 분자를 전자처럼 비트(bit) 단위로 읽고 쓰는 '공학(engineering)'이다.
20년 전 인간의 DNA 염기서열을 모두 파악한 게놈 프로젝트가 생명 정보를 '읽는' 기술이었다면 합성생물학은 생명 정보인 DNA를 컴퓨터 코딩처럼 연구자 뜻대로 편집하거나 새로 창작하는 '쓰기' 기술이다. 미국에선 합성생물학을 두고 '세포를 프로그래밍한다'는 표현을 쓴다. DNA를 프로그래밍 언어로 바라보고 IT의 코딩 개념으로 접근한 것이다.
콜린스 교수는 "공학 원리가 도입된 합성생물학은 그간의 생명공학 연구개발(R&D)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다"며 "과거 유전자 조작으로 생명체의 기능을 단순히 변경하는데 그쳤다면 이제는 유전자 및 구성요소의 설계·제작·조립으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활용하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라고 강조했다. 생명을 미지의 영역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알고리즘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더더욱 공학 개념과 가깝다.
콜린스 교수는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우리 몸의 세포를 컴퓨터의 바이트(byte)처럼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생물학이 공학 개념으로 진화하면서 암 치료 등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난제를 곧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로는 신약이 꼽힌다. 합성생물학을 바탕으로 생물학적 다양성을 활용한 커스터마이징(개인 맞춤형) 치료제 및 신약 개발이 현재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의학 분야에도 적용돼 질병 치료에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 질병에 있어 합성생물학은 DNA를 구성하는 아데닌(A), 티아민(T), 구아닌(G), 시토신(C) 외에 인공염기를 추가해 질병에 훨씬 더 강한 환경을 만들거나 유전자 편집을 통해 질병을 미리 막고 치료할 수도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질병 관련 유전자를 제거하고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유전자를 개발, 확대하는 것도 가능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 화학, 농업, 환경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이다. 조장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합성생물학이 여러 의학 분야에 적용돼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만큼 생물학적 다양성을 활용한 치료제 분야가 앞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합성생물학은 활용 영역이 무한대에 가깝다"고 말했다. 사실상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마법의 기술'이란 평가까지 나온다.
핑크닭처럼 생명체의 색깔을 변형하는 건 매우 기초적인 합성생물학에 속한다. 학계에서는 훨씬 고차원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 인류를 병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인류가 배출하는 각종 오염 물질을 '0'에 가깝게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빌 게이츠와 캐시우드, 존 도어 등 유명 투자자들이 합성생물학 기업에 투자하는 이유다.
바이오 안보 시대…미국은 펜타곤서 바이오 경제 컨트롤
세계 주요국은 합성생물학을 경제 안보를 지켜줄 핵심 신기술로 인지하고 있다.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바뀌는 대전환기에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고 제조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특히 미국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미국은 합성생물학을 '바이오 패권'을 쥐기 위한 무기로 규정하고 법적 근거를 차근차근 마련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9월 국가 바이오 기술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NBBI)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합성생물학을 전면에 내세웠다. NBBI 행정명령 발효 후 백악관 안보 보좌관 주재로 열린 장관급 회의를 통해 주요 예산 프로그램과 주무부처를 공개했다. 주목할 것은 바이오 제조 기반 강화 관련 예산이 국방부에 편성됐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자국 내 바이오 산업 제조 기반 강화에 정부 부처에서 가장 많은 14억달러의 예산을 집행하기로 했다. 국가안보 측면에서 바이오 제조 기반을 미국으로 재편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다.
미국은 2021년 6월 미국혁신경쟁법에서 합성생물학을 10대 혁신기술로 지정했고 2020년 10월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미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에 합성생물학제조연구기관을 신설해 7년간 2억7000만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민간 투자도 늘린 덕분에 현재 미국 내 합성생물학 관련 기업이 800여 개에 이른다.
콜린스 교수는 "합성생물학은 오랫동안 국방부의 지원을 받아온 역사를 갖고 있다"며 "국방부에서 바이오 예산을 집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경제 강화와 연관이 깊다"고 했다. 바이오를 육성하는 것이 미 자주국방의 주요 테마가 된지 오래다. 강한 경제력을 가져야 강한 국가가 될 수 있는 국방적 시각인 셈이다.
실제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2026년 합성생물학의 시장 규모가 288억달러(38조6000억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2040년엔 최대 3조6000억달러(한화 약 48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 정부는 바이오 산업이 합성생물학으로 인해 30조달러(4경(京)원)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합성생물학이 가져올 바이오 대전환을 '5차 산업혁명'으로 칭하고 있다. IT 기술에 초점이 맞춰진 4차 산업혁명을 넘어 인간과 공학 사이의 유기적 결합이 시대를 이끌고, 이는 곧 안보과 직결된다는 예측이다.
조 교수는 "미국은 그동안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제조는 타 지역에 위탁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그러나 팬데믹과 중국 경제 부상으로 공급망의 무기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바이오 제조에 다시 눈을 떴다"고 분석했다. 콜린스 교수 역시 "바이오에서도 아메리칸 팩토리 경향이 점점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진국은 앞서가는데…갈 길 먼 'K-바이오파운드리'
합성생물학이 생명과학과 공학의 융합 학문이라면 바이오파운드리는 이를 구현하기 위한 필수 인프라다. 때문에 합성생물학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바이오파운드리 구축과 투자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오파운드리는 미생물을 공장처럼 사용하는 개념으로, 합성생물학에 AI를 적용해 바이오 R&D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플랫폼이다. 새로운 바이오 시스템 제작을 위한 설계(design)-제작(Build)-시험(Test)-학습(Learn)의 전 과정을 표준화, 자동화, 고속화해 고속·고처리량으로 구동한다. 통상의 반도체 생산이 설계(팹리스)-제조(파운드리)-테스트와 패키징(OSAT) 등으로 세분화된 것과 다르게 바이오파운드리는 한 곳에서 모든 과정이 이뤄진다. R&D에 필요한 반복 노동 업무를 자동화하고 처리량은 극대화해 기존 기술보다 훨씬 큰 규모의 R&D를 현실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선진국은 바이오파운드리 구축에 국력을 쏟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합성생물학 연구가 본격화한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바이오파운드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6년 국립과학재단(NSF), 2013년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DARPA에서 바이오파운드리 지원이 본격화됐다. 그 결과 미국에는 이미 바이오파운드리로 주목받기 시작한 회사가 나타나고 있다. 바로 긴코바이오웍스다.
2008년 설립된 이 회사는 생명공학 기업 자이머젠의 바이오파운드리를 인수하면서 이를 토대로 모더나와 함께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나섰다. 모더나의 신속한 백신 개발에는 긴코바이오웍스의 바이오파운드리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부분의 바이오파운드리가 공공 성격인데 비해 긴코바이오웍스는 자체적으로 세계 최대 수준의 민간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했다. 긴코바이오웍스는 "합성생물학이 거의 모든 물리적 재화를 생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합성생물학이 기술의 자급자족을 가능하게 할 핵심 키워드라는 뜻이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국가 합성생물학 로드맵을 수립하고 정부 주도로 2012년 이후 7개의 합성생물학센터와 3개의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했다. 2016년부터는 생물 정보에 AI 기술을 적용해 고도화된 생물 기능을 설계, 활용을 지원하는 '스마트 셀(smart cell)'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일본은 합성생물학을 중심으로 '포스트 제4차 산업혁명'을 발표했다. 덴마크, 캐나다, 싱가포르도 바이오파운드리 마련에 팔을 걷어붙였다.
학계에서는 중국의 행보를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바이오협회가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 보고서를 바탕으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중국은 합성생물학에서 세계 최고 10개 기관 중 9개를 보유했다. 국가별 논문 비중도 52.42%를 차지해 16.75%를 점유한 미국에 비해 3.13배 많았다. 중국은 선전에 7200억원을 들여 세계에서 가장 큰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하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합성생물학 경쟁력은 어떨까. 미국(100%)에 비해 75% 수준으로, 유럽(90%)과 일본(80%)에 비해 낮게 평가되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지만 세계 수준과 격차가 크다는 지적이다. 2021년에서야 '제15차 혁신 성장 빅3(BIG3) 추진회의'에서 바이오파운드리가 보고된 것이 시작이다. 지난해 말엔 '국가 합성생물학 이니셔티브'가 발표됐다. 이니셔티브에는 바이오파운드리 구축 예타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명시됐다. 2024년부터 2028년까지 총 3000억원 규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보스턴을 찾아 "MIT에서 공학, 의학, 디지털이 결합한 디지털 바이오를 수용하고 싶다"며 합성생물학 육성 의지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미국 로런스버클리 국립연구소(LBNL)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공공 바이오파운드리 구축에 협력하기로 했다.
콜린스 교수는 "윤 대통령이 합성생물학에 적극적이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허준렬 하버드 메디컬스쿨 교수는 "대통령께서 보스턴을 방문한 건 좋은 신호"라며 "한국을 먹여살릴 차세대 먹거리가 바이오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에서는 한국이 TSMC 같은 파운드리를 구축하지 못했지만 바이오만큼은 국가 명운을 걸고 초격차 파운드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보스턴 바이오 동맹…"양국 인력 교류 활성화 필수"
전문가들은 한국이 합성생물학 경쟁력을 제대로 확보하려면 인재 육성이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융합형 인재 양성, 국제경연대회 정부지원 등 젊은 인재의 합성생물학 생태계 진입을 위한 다양한 유인책이 아이디어로 나오고 있지만 실행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합성생물학 생태계 구축에 막대한 자금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가 창업 초기부터 자금 회수 중간 단계, 최종 시장 진입 단계까지 체계적인 정책과 시설 지원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와 학계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콜린스 교수는 "한국이 합성생물학을 육성하려면 우선 젊은 과학자부터 육성해야 한다"며 "한미 협력을 증대시켜 양국의 젊은 인재들 간 교류를 늘려 융합을 이뤄야 하는 것이 숙제"라고 꼬집었다.
미국, 한국의 바이오 거점인 보스턴과 인천 송도 간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허 교수는 "한미 양국 간 교류는 한국 인재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배우고 미국에 머무는 단방향 방식"이라며 "미국 인재를 한국에 오게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해 유기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허 교수는 또 인력 양성 방안으로 기초 과학 분야의 꾸준한 투자와 완전한 자율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과학자에 연구비를 지원할 때 조항이나 단서를 일체 달지 않고 완전한 연구의 자유를 주기 때문에 결과물이 좋지 않을 수가 없다"며 "바이오가 신(新)르네상스, 혹은 5차산업 혁명의 도화선이 될 텐데 결국엔 기초 투자를 얼마나 꾸준하게 하느냐가 미래 합성생물학 경쟁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교수는 미국을 따라가기보다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고 특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은 이미 10년 전부터 합성생물학을 육성했다"며 "단지 미국이 하고 있으니 한국도 당연히 해야 한다는 논리는 시대착오적"이라며 했다. 이어 "합성생물학이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도 미국이 놓치고 있는 핵심 분야를 한국이 집중적으로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케임브리지·보스턴=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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