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보다 실력' 金빛 항해 연출한 '선장' 류중일의 뚝심+신뢰 리더십 [항저우포커스]

[항저우(중국)=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지금 당장의 실력을 중요시했다. 한번 믿으면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9년만에 다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류중일 감독의 머릿속에는 7일간 치러지는 단기전 뿐이었다.

KBO리그를 떠난지 3년. 류 감독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4년 연속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일선 감독 시절 돋보였던 선수 보는 눈과 뚝심이 다시한번 그 가치를 입증했다.

다시 '우승 사령탑'이 된 그의 표정은 밝았다. 8일 항저우 샤오산 공항에서 만난 류 감독은 전날 승전의 밤을 한껏 즐긴 모습이었다. 그는 "어제 애들하고 소리지르느라 목이 다 쉬었다"며 웃었다.

우승 직후 첫 마디가 "선수 선발하는 게 힘들었다. 금메달을 따는 과정도 어려웠다"였다. 말 그대로 '진심'이었다.

대회 기간 내내 고달팠던 그다. 선수 선발 과정부터 잡음이 많았다. 역대 대표팀 최초로 나이(만 25세 이하)와 연차(입단 4년차 이하)에 따른 선발 기준을 두고 선수를 뽑았다.

그나마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3장뿐인 와일드카드 또한 만 29세 이하로 제한됐다. 말 그대로 역대 사령탑 중 가장 좁은 선수풀이었다. 그나마도 구창모의 이탈과 최원준의 부상으로 제 역할을 한 와일드카드도 박세웅 한 명 뿐이다.

그 결과 평균연령 23세, 엔트리 24명 중 미필이 19명이나 되는 대표팀이 탄생했다. 류 감독 자신보다 40살 가량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야했다.

고민은 길고 결단은 과감했다. 그리고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다.

가장 어려운 상대인 대만 상대로 경험많은 박세웅이나 원태인 대신 20세 문동주를 택했다. 조별리그 4이닝 2실점 뒤에도 "공은 좋았다"며 결승전 선발로 다시 택했다. 또 좌완 선발투수가 없음에도 과감하게 이의리를 부상으로 제외하고 윤동희를 뽑았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4시즌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할 당시처럼 클래스를 보고 무한 신뢰하는 야구가 제대로 통했다. 문동주는 결승전에서 160㎞를 넘나드는 광속구로 6이닝 무실점 호투하며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윤동희도 타율 4할3푼5리(23타수 10안타)의 맹타를 휘두르며 사령탑의 기대에 보답했다.

그 결과 허구연 총재가 취임사에서 밝혔던 세대교체와 국제대회 호성적,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도쿄올림픽과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의 연이은 부진으로 위기에 처했던 한국 야구의 위상도 살려냈다.

1998년 방콕 대회(22명) 이후 최다 병역 혜택을 이뤄내며 KBO리그의 미래도 밝혔다. 향후 리그를 이끌어갈 젊은 슈퍼스타의 재목들도 여럿 찾고 홍보하는 기회가 됐다.

2일 중국 항저우 샤오싱 야구장에서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 야구 조별리그 B조 대만과 2차전. 2회 팀의 첫 안타 2루타를 날린 윤동희. 항저우(중국)=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3.10.02/

류 감독은 "시즌은 길게 보고 치르면 되는데, 단기전은 참 어렵다. 지면 안되니까"라며 "6경기 하고 난 기분이 100경기 치른 거 같다. 우승하고 나니 마음이 참 편안하고 너무 좋다"며 활짝 웃었다.

한국 야구의 중흥기였던 2000년대 후반은 2006 WBC-2008 베이징올림픽-2009 WBC로 이어지는 국제대회 역대 최고 성적에 힘입은 바 컸다..

이날 공항에는 많은 팬들이 모여들었다. 프로야구 유니폼을 입은 팬들도 많았다. 선수들 뿐만 아니라 류 감독도 사인과 사진 촬영 요청에 친절하게 응했다. 금메달 감독의 여유와 자부심이 엿보였다. 한국 야구의 또한번의 전환기를 이끈 대표팀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항저우(중국)=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